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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ilet Jul 17. 2019

저 애 안 낳을 거예요

부모의 지극한 순리와 당연한 욕심에 대하여

최근 많은 커플들이 결혼 전 자식을 낳지 않는 것을 협의한다. 나 같은 경우 소개팅에 나가 소주를 입에 털어 넣으며 ‘저 애 안 낳을 거예요’라고 먼저 선전 포고처럼 말한다. 서른이 넘어 소개팅에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결혼과 가족에 대해 자신의 가치관이 제법 확립된 사람들이라 자식 이슈에 있어서도 생각이 분명하다. 나의 맥락을 끊을 정도의 갑작스러운 노키드 선언에 상대방의 반응은 다양하다. 그러세요. 생각은 언제든 바뀔 수 있어요.라고 하는가 하면 아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은 전 아직 잘 모르겠지만 부모님들이 원하시지 않을까요. 정도로 나뉜다.

근본적으로 나는 왜 생명을 반드시 나의 몸을 빌려 낳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 나의 몸이 과연 생명을 잉태하기에 적합한지에 대한 확신도 없으면서 무작정 임신을 하고 둘, 셋까지 계획하는 일부 부부를 보면 사실 걱정스럽다. 그러고 기형이나 자폐 아이가 나오면 자신의 몸을 자책하며 아이에게 사과를 한다. 널 만들어내서 미안하다고. 짝을 지어 성관계를 하고 임신을 해서 생명을 배출한다는 이 일련의 과정은 동물과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볼 만하지 않을까.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신체의 자격을 따져봤다면 자신이 부모로서 자격이 갖춰졌는지 판단해야 한다. 부모라는 것도 하나의 직업과 경력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부모는 어떠한 연습도 없이 덜컹 부모로서 최고의 능력을 해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식으로부터 기대되는 일인 동시에 부부 서로 간의 원만한 협의가 이뤄져야 하는 정상 회담 수준의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모도 누군가의 자식이라는 것이다. 그 부모로 받은 역할을 그대로 수행하거나 재량껏 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잘못된 그들의 가르침과 리딩은 자식을 전혀 예상 밖의 행로로 밀어낸다. 구체적으로 다양한 폭력이 있을 수 있는데, 가해자들은 잘 알지 못하는 언어폭력이 가장 흔하고 구타, 성폭력 등이 많은 사례를 차지한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사회에서 부적응자로 자라거나 2차 가공의 범죄를 일으켜 남의 불행을 통해 자신의 삶을 만족시키는 법을 배운다. 태어나서 겪어보지 못한 공감 능력은 완전히 결여된 상태로, 타인에 대한 존중과 인격의 존재에 대한 개념은 이미 무너진 상태로 사회에 큰 사건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내가 지금 애를 낳지 않는다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부 나쁜 사례를 가지고 고집을 부린다 볼 수 있겠지만, 이 사례는 분명한 현실이고, 단순히 일부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들이 자라나 다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끝없는 나비 효과로 이어지는 이 악의 순환. 재미있는 사실은 이 악의 순환을 조금이나마 중성화하는 것이 선의 순환이라는 것이다. 비록 이 부모 일이 처음이지만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엄마, 아빠라는 사람의 정상적인 보통의 사랑이 만들어 낸 평범한 존재들은 악의 순환에 더러움으로 버무려진 온누리의 전쟁을 막기도 한다.

 

김영하 작가는 자신이 자식을 갖지 않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냥 인간이라는 것은 우주의 한 점 먼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휴머니즘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죠. 인간이 무언가를 할 수 있고, 세계도 바꿀 수 있고, 그 밖에 어떤 의미 있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는 반면, 저는 그 반대편에 있어요. 저는 인간들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어리둥절한 채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결국은 죽어 사라지는 존재라고 봐요.” 서로에게 상처 입히다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다 결국 죽어 사라진다는 부분에서 나는 열렬히 동의한다. 인간의 객체 수가 이미 포화된 세상에서 도대체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이유로 대표적으로 두 가지를 손꼽는다. 첫째 아이가 없으면 나이 먹으면 재미없다. 둘째 부모님께 손자 손녀를 안겨야 한다. 그게 효도다. 내가 앞서 말한 신체적 조건 그리고 부모 역할 수행에 대한 능력치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유라는 것이 납득하기 어렵다. 자식을 낳더라도 내 아이지 당신의 아이가 아니다. 부모님은 30년 내 돌아가시겠지만, 앞으로 60년 동안 당사자는 이 자식과 비벼대면서 살아가게 된다. 다시 한번 묻겠다. 무슨 자격으로 내 자식을 부모에게 안겨야 효도인 것인지. 첫째 이유인 재미를 위해서라고 말한다면 반려동물을 키우길 바란다. 사는 것은 애초에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것을 내 몸을 통해 나온 생명을 가지고 재미를 운운하는 것은 어디서 나온 발상인지. 그러면서 골프채로 패거나 성폭행을 하는 것은 무슨 재미라고 생각할 것인가. 아무쪼록 세상이 선의 순환으로 인해 시너지를 내어 부모 자식 간의 평화가 깃들길 바라는 바지만,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것에 대해 당연히, 지극히, 부모의 욕심으로만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어리둥절하게 태어나는 자식의 입장도 있으니깐. 당신의 행복을 위해 그 멍청함을 이용하는 이기적인 인간이 되는 것은 스스로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아이가 갖고 싶다면 입양을 하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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