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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ilet Jul 09. 2019

화이트 아웃, 사랑이 주는 죗값

애초에 담배를 훔치는 게 아니었어

내가 S를 만난 것은 학교 앞 Getto라는 클럽 겸 바에서였다. 그날은 여자 친구들과 무조건 함께 즐기자는 약속을 하고, (남자 헌팅 금지 데이) 열심히 데킬라를 마셔대던 젊은 날 중의 어느 날이다. 가방을 다 맡기고 몸만 나와 라운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마시기와 춤추기를 반복하던 그때, 나는 담배를 챙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주변 테이블을 두리번거렸다. 담배를 두고 간 팀을 찾기 위해서였다. 나는 이상하게도 어렸을 때부터 물건을 훔치는 것을 좋아했다. 아니 즐겼다. 자주 하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의 펜이나 물건을 보면 훔치고 싶은 맘이 자주 들었고 갓 취학했을 때 몇 번 훔쳤으나 당시 친구들이 별말 없이 그냥 나에게 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길가 매대에 올려놓은 귤 같은 것은 지나가면서 쉽게 손에 넣었던 것 같다. 부모님한테는 뭐 하나 사달라고 말한 적 없지만, 이상하게도 상대방이 모른 채 내가 뭔갈 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이다. 심지어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이외수 작가의 황금비늘이었다.

그날 나는 옆 테이블에 입을 벌리고 있는 말보로 레드의 마지막 한 대에 눈이 갔다. 살짝 주위를 본 후 당당히 뺏어다 피웠다. 몇 모금 빤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나는 그 담배의 주인을 만났다. 누군가 어깨를 두드려 돌아보니 수염이 짙고 반삭발을 친 남자가 빈 담배 껍질을 내 눈앞에 흔들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죄송합니다라고 한 후 당장 달려가 편의점으로 가서 같은 담배를 샀다. 그러고 다시 바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입구에 그가 서 있었다. 그는 내가 건넨 새 담배를 받더니 담배를 훔친 죄로 본인과 놀아달라는 얘기를 했다. 나는 죄송하지만 오늘은 친구들과 있기로 했다고 했다고 거절했다. 그는 갑자기 내 시계를 풀려고 했고 그리고 목걸이도 뺏었다. 지금 올라가서 가방 갖고 오세요. 묘하고 박력 있는 그의 태도에 멍청해진 나는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 후 나왔다. 나는 가방을 들고 나와서 그제야 따져 물었다. 학교 어디 다니세요? 안 다니는데요. 일해요. 무슨 일요? 요리사예요. 몇 살인데요. 25살. 25살이 무슨 요리사를 해요. 보여줄게요. 그는 정말 바로 근처 학교 앞 레스토랑으로 날 데리고 갔다. 그때는 새벽 4시라 잠겨 있던 문을 열고 주방으로 가 컴컴했던 불을 켰다. 그는 가스불을 켜고 주문을 받았다. 까르보나라? 알리오 올리오? 나는 까르보나라라고 했다. 어니언, 머시룸, 베이컨 해가며 능숙하게 팬을 돌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영화에서 본 것처럼 옆 스테인리스 상판대 위에 앉았다. 괜히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남들의 음식이 준비되고 그릇에 담기는 상판대 위 나는 새벽 4시에 엉덩이를 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아무도 없는 테이블은 컴컴했지만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 보이는 화려한 불빛은 여전히 밝았다. 그는 완성된 플레이트를 들고 나를 자리로 안내했고, 가장 좋은 자리라며 테이블 위 무드 등만 켰다. 나는 그때를 생각하면 영화 어바웃 타임의 시간 여행 같은 것이 떠오른다. 혹시 그가 나를 위해 담배를 펼쳐뒀고 나를 데리고 여기까지 오기 위해 몇 번이고 시간을 되돌린 것은 아닐까. 오로지 나를 만나기 위해 말이다. 까르보나라는 내가 평생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생각해봐도 참 설레고 세포의 강한 텐션이 느껴지는 까르보나라였다. 나는 아마 그 음식을 입에 넣고 그의 얼굴을 쳐다볼 때쯤 사랑하게 될 거라 확신했던 것 같다. 자랑스러움은 가득했지만 나를 보는 사랑스러움은 없었던 그의 표정을 그때는 알 수 없었다. 난 어렸고 그땐 그렇게 내 감정만 믿고 서둘러 달아올라 어쩔 줄 몰라했다. 그날 그는 나에게 모텔에 가자고 했다. 예상했던 바라 계획대로 대처했다. 지금 저랑 막 자고 싶으신 거 아니잖아요. 정말 자고 싶을 때 자요. 그제야 그의 눈이 반짝이며, 구미가 당긴다는 기미가 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말이 그렇게 매력적이고 섹시하게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괜찮은 여자라 두고 봐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라고. 그리고 몇 주 뒤 S와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했다. 우리는 영화, 음식, 패션 모든 취향이 같았다. 게다가 전공이 영화과였던 당시 내가 시나리오 작업과 작품 만드는 것이 흥미로워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내 인생에도 재밌고 즐겁고 설레는 연애라는 것을 해보는구나 이러다가 결혼까지 하겠어! 난 쓰레기 양아치 수집가가 아니었어.(이 글을 읽는 사람이 비웃을 거라는 것을 안다.)라고 말하며 삶에 갑자기 들어온 강렬한 햇빛을 온몸을 뻗어 맞이했다.

 

내 생의 빛이 여전히 가득하던 어느 날, 나는 301이란 카페 흡연실 안쪽에 앉아 있었고 S에게 10시쯤 가게 마감 중이라고 연락이 왔다. 입이 귀에 걸려 싱글벙글거렸고 함께 장편 준비 중인 절친은 그렇게 좋냐? 아주 아주 신이 나셨어.라며 놀려댔지만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처음 봤다며 기뻐하는 눈치였다. 커피는 내가 살게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그때, 카페 창가 테이블에 앉아 있는 S를 봤다. 심각한 표정으로 셰이크를 빨대로 젓고 있었고, 앞에 앉은 여자는 긴 생머리에 빨간 베레모를 쓰고 팔짱을 낀 채 몸을 뒤로 기대앉았다. 분명히 죄인이 남자 쪽인 상황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계산을 한 후 그들의 옆을 지나 카페를 나왔다. 친구는 나오자마자 맞지 맞지 너네 그 남자 맞지?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난 아 지겹다고 답했다. 사는 게 지겨워 양아치잖아 쓰레기잖아 내가 또 병신 된 거지 지금? 나는 5층이었던 카페에서 내려와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친구가 갖다 주는 포도 주스를 마시며 아 내가 ‘애초에 담배를 훔치는 게 아니었어’ 그 말만 반복했다. 모든 걸 다 알게 되어서 슬퍼졌다. 우리의 행복은 무지해야 완성되는 것이었다. 직접 만나서 묻지 않아도 심각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몇십 분이 지난 후 S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당연히 아무렇지 않게 자기 어디야 만나자는 얘길 했다. 나는 지금 길바닥이고요. 내가 당신을 봤어요. 301. 그는 침묵이 이어졌다. 그래 만나자. 집 앞 바에서 만난 우리는 코로나 한 병씩을 시켰다. 그래 이제 설명해보세요. 그 여자는 같은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는 사람이고 3개월 정도 만나고 있었다고 했고 그 여자와 정식적인 이별 없이 나와 연결해서 만나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임신을 했다고 찾아온 것이다.


나는 이건 분명 시간 여행 같은 거라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나를 만나기 위해 온 사람 그리고 나를 죽일 듯한 고통을 주기 위해 온 사람. 담배 하나 때문에 연결된 우주여행. 그는 그녀가 아이를 지울 거고 요리사가 되고 싶은 앤데 도와주고 싶다는 둥 이런 말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간 여행이 존재한다면 나는 다시 어디로 돌아갈 수 있을지. 내가 다시 그 행복을 차라리 몰랐을 그 지점을 찾아야 했다. 나는 그럼 다 해결하고 돌아오세요. 기다리면 되죠. 얼마나 걸리나요?라고 물었다. 삼 개월? 일 년? 얼마나 걸려요? 그는 좀 난감하고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그도 이제 시간 여행을 무를 수가 없다는 것을 몰랐나 보다. 그는 내 등을 두드리며 기다리지 마라고 하고 떠났다. 난 그 바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모든 상황을 보던 바텐더 언니들은 나를 토닥거렸다. 나는 약속했던 대로 S를 기다렸다. 그렇지만 얌전히 기다리겠다고는 안 했다. 나는 그 후 몇 달 동안 소주를 병나발로 마시기 시작했고, 자해를 밥 먹듯이 했으며 응급차도 밥 먹듯이 우리 집을 들락거렸다. 냉장고를 발로 차다가 바닥에서 잠이 들었고 밥은 먹으면 토했다. 그래도 술은 잘도 들어갔다. 나는 수업 중 갑자기 뛰쳐나가 사라지기도 했고 학교 식당에서 밥 좀 먹으라는 친구의 얘기가 듣기 싫자 간질 비슷한 증세로 쓰러져 양호실을 가기도 했다. S가 절대 쉽게 나를 잊지 않도록 끊임없이 나를 버렸다. 그렇게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그는 나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우린 서울로 올라와 3년을 함께 살았다. 그럼 해피 엔딩이냐고? 우리는 3년간 서로에게 시달렸다. 나는 그를 쟁취했다는 기쁨 따위 없었다. 이미 나는 내가 없었다. 나는 틈만 나면 바람을 피웠고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에 대한 신뢰가 다시 생겨나지 않은 것이다. 눈 뜨면 다른 남자와 모텔에 있었고 술을 너무 많이 먹어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다. 혹시 S가 나에게 상처를 주기 전에 나는 끊임없이 S에게 먼저 상처를 주었다. 내가 계획하고 일부러 그랬다기보다는 난 이미 그런 사람이 되어 있어서 스스로 제어가 되지 않았다. 한편 S는 나에게 돌아와 사랑을 한다기보다는 나에 대한 죄책감과 자아를 잃어버린 나를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강했다. 게다가 폭력적인 기질 때문에 물건을 부수는 일이 잦았고,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아빠에게 맞았던 엄마 생각을 했다. 우리는 꾸역꾸역 서로에게 의무를 다했다. 물론 워낙 코드와 취향이 잘 맞아 즐거웠던 기억도 많지만, 실제 사랑의 뿌리는 더럽고 약해져 상처에 겨우 겨우 붙어 있는 때 묻은 대일밴드 같았다. 우리가 만나고 3년쯤 되었을 때 나의 끊이지 않는 외도에 그는 결국 집을 나갔다. 차에서 숙식을 하면서 새집을 알아봤고, 완전히 별거를 하게 되었다. 나는 몇 개월 후 혼자 그 집을 나가면서 그에게 전체 보증금의 절반인 500만 원을 계좌로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는 벌써 26살이 되어 있었다. 그때 나에게 남았던 건 그와 열광했던 말보로 레드, 최동훈 감독, 김영하 작가, Earth, Wind & Fire, Paris, Kasina, 페레로 로쉐, 까르보나라, 알랭 드 보통, 살바도르 달리, 앙리 마티스, 미드 LOST, 앵무새 그리고 고양이다.

어느 날 학교 동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S로부터 편지 한 통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회사 앞에서 동기를 만나 사정을 물었다. 본인도 당황했다고 했다. (그 동기의 번호는 S가 알고 있었다. 내가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 전화하는 번호였다.) 미안하지만 자신의 레스토랑으로 좀 와달라고 해서 갔더니 두툼한 편지 봉투를 주며, 나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나는 회사 화장실로 돌아와 그 편지를 읽었다. 네가 원망스럽고 밉지만, 서로에게 진정한 소울메이트였던 것은 맞지 않을까. 너처럼 예쁘지도 않은 애를 내가 왜 그렇게 좋아했을까. 너를 못 잊는 내가 싫다. 그리고 마지막 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안녕이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정말로 끝인 것 같으니깐. 그 후로도 그는 유럽 여행을 가면 엽서를 보내왔다. 언젠가 이곳에서 너와 함께한다면 어떨까. 식의 인사들을 첨가해서.

우리가 정말 사랑을 했었는지 헤어진 직후에도, 시간이 지나도 나는 정말 알 수가 없다. 사랑이라고 부를만한 것인지 혹은 인간과 인간의 다른 어떠한 관계인지 나는 살면서 여전히 이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 정의를 내려 보려 하지만, 몇 번이나 실패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감정의 왜곡이 사람을 어디까지 망칠 수 있는지, 착하고 풍요로운 사랑보다 피가 난무하는 지독한 사랑이 얼마나 상대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지 알 수는 있었다. 또 이 관계 이후 나는 남자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고 사랑의 허망함부터 생각해 관계를 망치기 일쑤였다. 첫 만남이 주는 맑은 아침 창가의 커튼을 열어젖히는 화이트 아웃의 설렘이 얼마나 부질없는 한 줌의 모래알 같은 것인지 그리고 그 죗값은 얼마나 지독한지 그때 알게된 것이다.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를 이 만남의 죗값은 아직도 나를 잠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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