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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ilet Jun 18. 2019

거의 정반대의 사랑

절대 날 사랑해서는 안 된다, 얘야

20대 초반, 어학연수를 다녀온 직후 꽤 영어 회화가 fluently 할 때쯤, 외국인 교수가 하는 전공 수업이 있었다. 이름은 지미(가명). 영화 사운드에 대한 수업을 맡고 있었다. 나는 꽤 그 수업에 흥미를 느꼈다. 보이지 않는 소리가 보이는 화면에 생동감을 입하는 것은 물론 감정에 이토록 큰 영향을 주다니. 툴을 활용해 여러 가지 사운드를 입히고 영화에 생명력과 호흡을 주는 수업. 그 모든 것들이 지미의 유능함과 왠지 모를 과학자적 인상에 더욱 관심을 갖게 했다. 나는 이 영어 수업에 간단한 통역을 동시에 맡았다. 그러다 보니 지미와 대화하는 시간도 많아지고 나의 영어 프레젠테이션 발표 원고를 간단히 봐주기도 했다. (교수가 교열까지 하면 반칙이니깐.) 그는 진심을 다해 말하면 영어 문법이 틀려도 전달력이 있을 거라는 제법 선생님다운 소리를 하는가 하면, 영화 하는 사람은 왜 다 이토록 쓰레기 인성이냐는 나의 질문에 ‘너도 그렇잖아’라고 툭 던져 말하고는 혼자 뒤에서 웃기도 하는 근사한 품위를 지닌 사람이었다.

종강을 하고 몇 학생들과 지미 그리고 나는 함께 뒤풀이를 갔다. 그날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될 거라 나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모두 술에 만취했고 심지어 누군가는 앞의 간장 종지를 몸에 붓고 있었고 지미는 앞에 학생 손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나도 과음을 했지만 그 순간들이 시트콤 장면처럼 아직 기억이 난다. 나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내가 내가 아니므로 3인칭으로 바라본다.) 동기들에게 연락해 나머지 친구들을 데려가라 했다. 애들은 흥신소 처리반처럼 대자로 너부러진 애들을 끌고 갔다.

 

이제 지미와 나만 남았다. 지미는 자신이 연주하는 바에 가자고 했다. 그가 밴드에서 드럼을 친다는 것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그곳에 따라갔고, 지미의 친구들과도 간단히 인사했다. 거기서 데킬라, 맥주 몇 잔. 그러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지막 기억은 내가 키스하고 싶다고 했고, 그가 오케이라고 했고 내가 지미 앞으로 다가가 서서 앉아있는 그에게 키스를 하고 있었다는 것. 정신이 좀 돌아왔을 땐 이미 지미 집의 새하얀 침대였다. 둘은 엉겨 붙어 서로의 살갗이 최대한 닿고 스치도록 애정을 다해 비볐다. 서로의 허리에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기도, 가슴에 난 털을 쓰다듬기도. 그 시간들은 아직도 나에게 묘하게 남아있다. 보름달을 망원경을 통해 난생처음 가까이에서 바라본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세상에 새벽빛의 가루가 있다면 그 가루를 먹고 세상이 반짝거렸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지구에는 없는 시간이 지나고 새벽 세 네 시쯤, 우리는 서로 다른 눈, 코,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파란 눈동자에 그늘을 드리운 금색 속눈썹을 만지고 그는 나의 일자로 생긴 눈을 치켜세우거나 쌍꺼풀을 만들며 검은 긴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끝없는 몸 장난을 하다 아이팟으로 사운드 교수다운 음악 선곡이 담긴 노래를 들으며, 밥그릇만 한 그릇에 커피를 담아 알몸으로 나눠먹던 중, 그는 갑자기 아, 그 바에 다른 교수들의 지인이 있었어.라며 머리를 쥐어 싸맸다. 끝내 나와의 모든 환영 같은 시간이 끝나고 현실이 뇌를 때린 것이다. 난 미안해요.라고 했다. 나 때문에 교수 생활이 엉망이 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일단 그는 스스로 괜찮을 거라 말하며, 각자의 하루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말했다. 그래야 했다. 내 핸드폰은 벌써 밤새 울렸던 애인의 끝없는 전화로부터 운명한 상태였다. 나는 해가 뜰 무렵 집으로 갔다. 역시 내 애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밤새 어디 갔었어? 난 친구 집에서 잤다고 둘러댔다. 그녀는 연락은 왜 안 되냐고 화를 냈다. 미안해. 술에 좀 많이 취해서...


그녀와 교제한 진 6개월 정도 됐다. 학과에서 대부분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레즈비언 커플이었다. 나는 연출 전공, 그는 촬영 전공이라 함께 작품을 하다 눈이 맞았다고 해야 하나. 어느 날 우리 집에서 그녀가 나에게 키스를 하고 우린 서로 체액을 나눈 사이가 되었고 나도 그녀를 좋아했다. 그때쯤 나는 내가 양성애자인가에 대해 생각해봤지만 그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가 맘에 들었다. 어딘가 반항적인 얼굴도 좋았고, 키스를 잘했고, 적당한 가슴 사이즈의 보드라움이 폭신했다. 그날 밤 사건 이후 나는 다시 지미를 개인적으로 만났다. 그가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바에 앉은 나와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지미는 가끔 의미심장한 미소만 짓다가 보드카를 한 모금씩 마셨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그날 친구들이 너와 나를 봤다더구나. 그 말 이후로도 계속 정적만 흘렀다. 난 생각했다. 당신이 나로 인해 교수직을 잘리게 된다면 나 역시 학교 생활을 해나갈 순 없겠지. 나 역시 얼음 조각이 들어간 보드카를 살살 돌리며, 다음 대화의 각오를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의 말은 예상과 달랐다. 너는 나를 사랑하니.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왜요?라고 물었다. 절대 날 사랑해서는 안 된다, 얘야.(Don’t fall in love with me, sweety.) 영문 번역기를 그대로 옮긴 것처럼 어색하지만, 그는 그렇게 말했다. 사랑하지 마라. 사랑하지 마라.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알겠다고 했다. 그는 큰 한숨과 함께 한 손에 보드카를 쥔 채 엎드려 말했다. 넌 너무 어려서 사랑에 빠지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를 거다. 아니 조절이 안 될 거다. 나와 사랑에 빠지면 넌 상처 받을 거다. 나는 너보다 20살이나 많아. 네가 40살이면 난 60살이라고. 난 다시 알겠다고 했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날 보드카, 라임, 물의 비율 1:1:1로 섞으면 정말 맛있다는 것을 알았고, 20살 넘은 남자는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22살이었다.

 

그 후, 지미는 친구들과 술을 먹고 나면 연락을 해왔다. 보고 싶다거나 함께 있고 싶다거나 섹스 없이 함께 밤을 보내고 싶다거나. 나는 연락을 받고 자주 그의 집에 갔었다. 꼭 섹스를 하지 않더라도, 음악을 들으며 대화를 나눴고 소파에 함께 누워 있거나 침대에서 장난을 쳤다. 나는 10년이 지난 지금 그게 서로를 사랑하지 않은 두 사람이 가능한 것인지 생각해본다. 그날 바에서 엎드려 자신을 사랑하지 말라던 그의 말을 다시 돌이켜본다. 그리고 그 몇 개월간 나눴던 교감이 사랑인가 판단해보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이것 역시 중요하지 않다. 당시 내가 밤에 자주 나가자 여자 친구는 의심과 확신을 동시에 하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화가 났던 그녀는 남자가 그렇게 좋냐며 그 새끼 꺼가 큰가 봐?라고 막말을 해댔다. 난 또 아무 말하지 않았다. 너 교수랑 그러고 다니는 거 또 누가 알아? 아무도 몰랐다. 너 그 사람 사랑해? 사랑하지 말래서 안 사랑하고 있다. 너 나는 사랑하니? 바보같이 난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결국 아무도 사랑하지 못했다. 한 명은 사랑을 원했지만 내가 사랑해주지 못했고, 한 명은 사랑하지 말래서 사랑하지 않았다.

하루는 지미 집에서 엘튼 존 노래를 들었다. Thank you for all your loving이라는 곡이었다. 나는 그의 무릎에 앉아 그의 어깨를 감싸고 고개를 그의 머리에 기댄 채 말했다. 엘튼 존은 과학자 같아요. 왜?라고 그가 물었다. 천재들은 원래 과학적 인상을 품고 있어요. 연구실에서 작곡을 연구하는 그런 상상이 돼요. 마치 Scientistic이라는 단어가 어울려요. 과학과 아트를 합쳐 내가 만든 단어였다. 그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런 시답잖은 소리를 할 때 나를 보는 그의 눈빛이 가장 따뜻했다. 그게 우리 만남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취업계를 내고 서울로 올라왔고, 그는 한동안 한국에 머물다 다른 아시아 권으로 떠났던 걸로 기억한다. 현재는 가끔 그와 페이스북으로 연락하거나 서로의 포스팅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것이 다다.

 

작년 겨울, 페이스북에 그가 중환자실에 누워 카메라를 보고 있는 사진이 올라왔다. 깜짝 놀라 글을 재빨리 읽어보니 그는 췌장암이었고, 현재 중국에 발이 묶여 있어 보험도 되지 않고 현금까지 없어 펀딩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기분이 묘했다. 나와 한 때의 비밀스러운 기억을 가진 사람이 현재 죽을 위기에 처했고 게다가 살기 위해 펀딩을 받고 있다는 것이 실제 상황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그를 도와주기 위해 기부 버튼을 눌렀다. 그리 높지 않은 금액을 썼다. 마지막 칸에서 ‘당신은 지미와 어떤 관계입니까’ 이 항목에서 잠시 멈췄다. 사랑해서는 안 되는 관계입니다.라고 쓰려다 지웠다. 나는 기부를 진행하던 인터넷 창을 껐다. 혹자는 지미가 널 사랑한 것이 아니냐 물을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면서 함께하고 싶어 했다. 그땐 그것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아 심각하게 이해하려고 한 적도 없지만 지금 돌아보면 나는 지미 덕분에 섹스하면서 사랑하지 않는 법도 배웠던 것 같다. 사랑의 정반대가 섹스하지 않는다가 아니라는 것. 함께하고 싶지만, 서로를 만지고 싶지만 사랑하진 않는 감정. 그것은 친구도 연인도 아니었다. 같은 행성에서 만난 동지애라고 해야 할까. 인간의 성적 욕구는 그대로 분출되지만 서로의 연애에 질투하지 않는 어쩌면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관계. 나는 그 기부 항목에 이 관계에 대한 내용을 쓰지 못했다. 최근 다행히 그는 회복되었고, 그가 어젯밤 영화 버닝을 봤다는 것을 페이스북을 통해 나는 알고 있다. 과연 그는 나를 아직도 정반대의 사랑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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