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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ilet May 31. 2019

혼자서 계단을 오르는 일

끝내 화장실의 쓰임을 깨닫다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낼 때 10년 간은 사하구에 위치한 H 아파트에서 살았다. 우리 집은 12층이었고, 총 25층 높이의 중간이라 골든 층이라고들 불렀다. 난 그 12층을 계단으로 올라가는 일이 많았다.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교복이 다 젖어가면서 멀쩡한 엘리베이터를 둔 채 천천히 걸어 올랐다. 단지 집에 최대한 늦게 도착하기 위해서다. 집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신발을 벗은 현관 그리고 거실이 보일 것이다. 현관에 놓인 엄마의 사물놀이 도구들이 다 부서져 있고 주방 찬장이 다 깨져있거나 방에서 혼자 엄마가 울고 있거나 거실에 혼자 아빠가 소파에 앉아 심각하게 TV를 보고 있는 모습을 나는 마주하기 싫었다. 차라리 이 계단에 끝이 없었으면, 아니 새로이 도망갈 곳이 생겼으면, 참 많은 것을 바라면서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집이 25층이었으면 더 늦게 갈 수 있었을 텐데.

그날은 좀 유별났다. 비가 오는 밤인 데다 습도가 높아 땀이 많이 났고, 비상구 계단에 자동 센서 조명이 작동하지 않는 층도 많았다. 1209호 회색 문 앞까지 다다르는 순간 싸함은 어서 문을 열라 재촉했다. 본능적으로 오늘이 그날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처럼. 결국 문을 열었을 때 예상처럼 아빠가 소파 중간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엄마는 집에 없었다. 시간은 밤 11시 30분. 나는 엄마에게 전화했다. 어디야 빨리 와, 아빠 있어. 엄마는 술에 조금 취한 듯 괜찮아, 금방 가.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서늘한 기분을 억지로 삼키고 교복을 입은 그대로 화장실로 갔다. 옷을 자유롭게 갈아입을 수 없는 강한 텐션이 나의 세포를 팽팽하게 만들었다. 행동 하나하나를 예민하게 느꼈다. 꼬리 털이 곤두선 고양이처럼 조심스럽게, 하지만 철저하게 닥쳐올 감정에 대비했다. 화장실에서 교복 단추 하나하나를 정성 들여 천천히 풀었다. 내가 느리게 행동하는 것과 반대로 긴장감은 풍선처럼 빠르게 커지는 것을 느꼈다. 풍선은 오늘 터져야만 한다는 듯이 계속 팽창해 나를 짓눌렀다.


12시 30분쯤 난 목욕을 끝내고 다시 땀냄새나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남에 집에서 샤워하듯 불편을 감수하고 있었다. 그때쯤 엄마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아빠의 고함. 사람을 때리는 둔탁한 소리들이 빠르게 귀로 날아와 웅웅거렸다. 엄마는 살려줘!라고 소리치며, 내가 있던 화장실로 도망 왔다. 엄마는 갈비뼈를 움켜잡고 씨발 씨발 사람을 때려? 하며 욕조에 웅크렸다. 난 재빨리 화장실 문을 잠갔다. 화가 머리 끝까지 쳐 오른 그 남자는 엄마와 내가 있는 화장실 문이 부서질 때까지 두드렸다. 그리고 열쇠를 찾아 열려고 했지만 나도 손잡이를 만만치 않게 붙들고 견뎠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지독하게 손잡이를 잡았다. 아빠는 미친년들을 다 죽이겠다며 소리를 질렀고 거실을 모두 엉망으로 만든 뒤에야 옷방으로 가 잠들었다. 잠잠해진 후에도 엄마와 나는 계속 화장실에 앉아있었다. 엄마는 욕조에, 나는 변기 뚜껑에. 핸드폰을 가지고 들어올 걸 그랬어. 내가 먼저 입을 뗐다. 왜? 엄마는 술기운과 맞은 곳의 아픔을 동시에 느끼는지 게슴츠레한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경찰서에 신고하게. 미쳤니? 동네 시끄럽게 할 생각도 하지 마. 그렇게 엄마와 나는 가만히 새벽이 되길 기다렸다.


화장실의 쓰임은 다양하다. 땀에 젖은 교복을 벗고 다시 입는 곳이기도 하며, 누군가에게 맞아 도망치는 곳이기도 하다. 집의 편안함을 살펴보려면 인테리어 디자인 이전에 각 방의 쓰임을 유심히 살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거실에서 온갖 서랍을 다 꺼내 집어던지거나 옷방에서 쇠 프레임으로 된 행거 대를 꺼내와 사람을 협박하고 뺨을 휘갈기는 장면이 보인다면 그곳은 집과 거리가 멀다고 보면 된다. 집에서의 1순위 필요 요소는 편안함이다. 방의 쓰임이 잘못되면 집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지금의 나는 화장실의 쓰임이 씻고 싸는 곳에 머물 때 가장 편안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흥미롭게도 그날 내가 죽을까 봐 사력을 다해 붙잡았던 화장실 문의 강력한 방어는 시간이 지나자 다시 새로운 버전으로 태어났다. 20살부터 혼자 살아온 나는 어느 날이면 누군가 현관을 미친 듯이 두드리면서 손잡이를 빠르게 돌리고 잡아당기는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밖에는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나의 기괴한 기억 재생 능력이 신기해 감탄하기도 했다. 사실 그날 아빠가 칼로 문을 쑤셨는지는 정확하진 않지만 내 기억은 그렇게 재설계를 거쳤고 오랫동안 동봉되었다. 그래도 한 가지 그 기억 속에서 나를 안심시키는 것은 그날조차도 평안했던 새벽녘 내 방이었다. 어쩐지 방 안이 점점 좁아져 숨을 죄어오는 기분을 느꼈지만, 내 작은 방만은 나를 내버려두다 잠들게 해 주었다.


그 사건 직후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이상한 망상에 시달렸다. 누군가 다가와 내 등에 칼을 꽂는 순간이 나의 그나마 남은 잔잔한 일상에 침입해 싸워야만 했다. 무서워하면 실제로 일어날까 봐 항상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학교에서도 가장 잘 놀라는 학생, 직장에서도 너무 놀라 이상한 직원 이렇게 인식되었다. 15년이 흘러간 지금 나는 뒤에서 ‘잠시만요’ 하고 불러도 미친 사람처럼 놀라 상대방에게 의도치 않게 죄책감을 준다. 상대방이 어우 뭐야?! 하면서 놀란 날 보고 같이 놀랄 때, 나는 고개 숙여 죄송하다고 하지만 난 늘 웃고 있었다. 이번엔 내가 한참을 싸워온 그 침입자가 되어 남을 놀라게 하고 겁주는 쾌감이 느껴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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