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oilet Jun 14. 2019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습니까

세상의 환대를 느껴본 적이 없습니까

오래전, 나는 영화사에 근무하는 친구를 통해 소개팅을 한 적이 있다. 친구는 호들갑을 떨며 키는 좀 작지만 영화 시나리오 작가인데, 잘생겼다며 무턱대고 나에게 번호를 줬다. 천하의 네가 솔로라니, 일단 한번 만나봐! 그 친구의 등 떠밀림 반, 시나리오 작가라는 매력적인 직업 이름에 끌림 반, 우리는 예술의전당 로비에서 만나기로 결정했다. 그날 전시를 같이 보기로 했었다. 그러나 그는 제시간에 나타나지도 않았고, 연락도 없었다. 아 바람을 맞네 내가. 하는 생각과 함께 작품을 꾸역꾸역 눈에 넣고 나왔다. 약속했던 시간보다 2시간이 지나있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며, 지금 로비라고 했다. 나는 로비에 서서 두리번거렸다. 그가 멀리서 검은 코트를 입고 권상우 소라게 짤을 연상시키는 모자를 쓰고 손을 흔들었다. 아. 저 사람이구나.

일단 식사를 해야 했다. 난 그가 어떻게 생겼고를 떠나서 일단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에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삼겹살에 소주나 드시죠. 한 뒤 그에게 고기를 굽게 했다. 그때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고기를 처음 구워보는 모양이 저런 거구나 싶었다. 일단 두 덩이를 불판에 올린 것은 성공이나 아직 피가 흐르는 덩어리를 가위로 자르려 애썼고, 가장 이상한 건 옷소매가 거의 양손의 손가락까지 내려와 무언가를 가리고 있었다. 마치 옷소매에 불이 옮겨 붙을 것처럼. 고기 냄새는 아마 저 소매가 싹 흡수했을 것이다. 난 그와 사귀었다. 참 잘해줬다. 진심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11살 차이가 났고 듬직한 면이 있었지만 과잉보호가 지나쳤다. 피부도 매끄럽고 항상 관리된 모습이라 단정하고 올바른 느낌을 주었다. 유난히 풍선껌을 계속 씹는다는 것과 10년 전 동대문 스타일을 입는다는 것 빼고는. 그렇게 한 달 정도가 지났다.

그는 처음 만난 날처럼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유를 대면 보통 산에 있었다. 기도 중이었다. 이런 묘한 핑계를 대면서 두세 시간은 기본으로 잠수를 탔다. 그리고 밤만 되면 모임이 있다며 또 나가서 연락이 안 됐다. 난 어느 날 그러니깐 한 달 만에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고 당장 헤어지거나 모든 진실을 말하라 했다. 그는 다음 날 새벽 긴 장문의 톡을 남겼다.

자신은 출소한 지 8개월 됐다고 했다. 26살 때 살인죄로 들어갔고 15년 형을 받아 다 채우고 나왔단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새엄마를 만나면서 자신을 버리고 길거리 생활을 하면서 소위 조직에 일찍 들어갔고 사채 빚을 갚으라 협박하러 어느 회장 집에 들어가 몸싸움을 하다가 실수로 회장의 허벅지를 찔렀다고 했다.(그는 담갔다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응급차를 바로 불렀으나 회장은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최근 청송교도소에서 출소해 일반인처럼 생활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다. 세상이 너무 변했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교도소에서 배운 글쓰기 하나로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사에 냈다는 것이다. 그것도 교도소 내부의 비리를 폭로하는 내용이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 이러한 사실을 숨겨서 정말 죄송하다고 하며,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그 글을 보고 일단 출근 준비를 했다. 별로 현실로 느껴지지 않아서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그를 만나고 지금까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는 왜 살인자인 채 내 앞에 나타났는지 미안하게도 그에게 묻고 싶어 졌다. 소년원에서 학대받은 내용과 교도소에서 우수 생활자라 무기징역에서 15년 형으로 줄어든 내용에 대해 상세히 쓰여 있는 편지형 톡을 보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호기심이 더 컸다. 사람을 흥밋거리로 취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리석게도 이 모험 같은 연애에 구미가 당겼다. 나는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 현실감 없던 나의 덤덤했던 감정은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로 쏟아졌다. 명동 세종호텔 앞에서 나는 목놓아 울었다. 막상 그의 웃는 얼굴을 보니 그의 상처와 슬픔이 얼굴에서 돋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가족으로부터의 버림, 자신의 보스로부터의 버림, 교도소에서의 학대 등. 그리고 물론 내 팔자에 대한 한탄이 없었다고는 못 하겠다. 그는 누가 자신을 위해 이토록 울어준 적이 없다며 함께 울다 웃다를 반복했다.


그는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근처 맥도날드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좀 더 자신에 대해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친엄마가 도망간 뒤 아빠는 새엄마를 들였고, 이혼과 동시에 법적 부부로 인정해달라는 재판에서 아빠와 새엄마가 자신을 버리겠다고 판사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때 그 법정에서 초등학생이었던 그가 아는 세상의 모든 상스러운 욕을 뱉어내며 자신도 두 사람을 부모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악을 썼다고 한다. 그 후 부모를 만날 일도 없었고 중학교 때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친구들, 소년원을 이미 다녀온 형들과 어울리면서 나쁜 짓의 기초 단계를 학습했다. 심지어 포경수술 조차 형들이 직접 해줬다고 했다. 조폭 생활을 하면서도 너무나 큰돈을 어렸을 때 만졌고 대포차, 핸드폰 등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생활했지만 자신은 영원히 혼자라는 생각뿐이었고, 양 겨드랑이에 두 여자를 끼고 있지만 그 어떠한 행복도 안정감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날 이후 한동안 그가 회장 허벅지를 담그는 상상을 하긴 했지만, 나는 그의 과거를 묻어두고 계속 교제를 하기로 했다. 아주 행복했다고는 말 못 하겠다. 그러나 그는 정말 따뜻한 사람이었다. 매일 기도를 드리고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허드렛일을 해서라도 돈을 벌었다. 내가 신종 플루에 걸렸을 때 새벽에 나를 업고 응급실로 뛰어가기도 하고 과일 배 중앙에 꿀과 갖가지 한약재를 넣어 직접 약을 짓기도 했다. 이런 것들을 다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보면 ‘청송에서’라고 짧게 대답했다.

당신은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습니까. 혹은 죽여본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나는 두 번째 질문에 네라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 살인자라는 과거 자체가 자신의 낙인으로 남아있는 사람에게 왜 그랬는지라고 물어봐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참 안타깝다. 길거리에 널린 길고양이처럼 세상의 환영 없이 살다 환송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 소수자의 이야기를 보다 귀 기울일 때 이 세상에 저질러지는 범죄와 악행이 줄어들지 모른다는 희망이 살며시 생겨난다.


이전 03화 혼자서 계단을 오르는 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