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암이란 질병이 아주 흔한 질병이 되었는데 희한하게 내 부모님이나 남편의 부모님 쪽으로도 암에 걸린 분이 단 한분도 안 계셨다.
그래서 안일하게도 나는 암이 아주 먼 사람들의 일로만 느꼈었는지도 모르겠다.
상황이 이러하니 항암이라는 걸 어떻게 하는지,
암에 걸린 사람들은 얼마나 아파하는지,
암에 걸리면 살 확률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영화나 누군가의 얘기로 전해 들었을 때 암에 걸리면 죽는다라는 공식이 적용이 되어서, 그저 암은 무시무시한 병이다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나마 암의 진행과정을 잘 지켜볼 수 있었던 영화는 성시경의 감미로우면서도 애절한 목소리가 너무 잘 어울렸던 주제곡 '희재'로 더욱 사랑받았던 '국화꽃향기'였다.
이 영화에서 장진영은 위암환자역을 맡았는데 이후 실제로 몇 년 후 영화에서처럼 위암 4기 판정을 받아 1년 정도 항암을 한 후 사망한 걸로 기억한다.
사망할 당시 그녀의 나이는 37세였다.
치료비가 부족하진 않았을 것이다. 나이도 어려서 힘든 항암을 버틸체력과 의지도 충분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래 암이라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그나마 기댈 수 있는 희망이라면 이후로 15년이 흘렀고, 그동안 발전된 치료기술력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는 임신을 했기 때문에 항암을 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 그 모든 통증을 그대로 감내하는 수밖에 없었다.
차로 이동할 때 울렁거림이 심해서 급히 차를 세우고 구토를 할 때 남편으로 출연했던 박해일이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 옆에서 서성거리던 장면이 생각난다.
애절한 음악까지 함께 깔려서 영화에서는 그 장면이 참 가슴 아프게 느껴지던데...
어찌 보면 그런 구토증상은 암환자의 가장 기본적인 일상이다.
사설이 너무 길었네...
그래, 나는 그렇게 미디어로만 접했던 그 무시무시한 암과의 사투를 이제 시작하는 거다.
당연히 무섭고 두렵고 아플 것도 아는데, 일단 하루라도 빨리 이놈과 싸우고 싶은 의지만 충만한 상태다.
암이 나에게 주는 이 무의미한 통증이 싫다.
싸워서 없애는 과정의 유의미한 통증이라면 난 얼마든지 감각하고 견뎌낼 수 있을듯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감정은 집어넣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에 대한 연민과 억울함, 뭐 이런 감정 따위는 좀 제쳐두는 걸로~
나는 항암치료하는 사람들은 병원에 입원해서 모든 일상이 멈춘 채 살아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그저 몇 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채혈하고, 외래진료받고, 항암제투여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항암이란 시간은 대체로 집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열이 많이 오르거나 쇼크로 기절할 경우나 몸이 급격하게 안 좋아질 경우에는 응급실을 가거나 입원치료가 병행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2~3주에 한 번씩 병원에 다녀오는 정도로 항암치료는 진행된다.
몇 년 동안 계속해서 정맥혈관을 찾아 주삿바늘을 찔러야 하는데 혈관이 잘 보이지 않거나 계속된 시술로 혈관이 굳어져서 주삿바늘이 잘 안 들어가는 경우들이 생겨서 요즘 항암치료하시는 분들은 케모포트 시술을 기본적으로 받는다.
케모포트는 500원짜리 동전만 한 포트를 쇄골아래 피부밑에 삽입하는 시술이다.
울산에서 췌장암 4기 진단을 받고 바로 서울의 신촌세브란스로 가서 첫 검진을 받고 1주 후에 케모포트삽입하고 다음날 첫 항암을 진행하기로 예약을 잡았었다.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지기 시작하고 속이 울렁거려 아무것도 먹지 못해 일주일에 몸무게가 7킬로씩 빠지고 그로 인해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어진다는...
그 무서운 항암제의 부작용에 대한 정보를 지나치게 많이 섭렵한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병원을 찾았다.
종양내과 교수님은 첫 검진 때 추가 CT를 찍은 자료를 보시고는 암세포가 너무 빨리 증식하고 있으니 오늘 바로 포트삽입과 항암을 같이 진행하자고 하셨다.
나는 왜 포트삽입을 간단한 시술로만 생각했을까.
피부를 찢어서 그 안에 관을 집어넣는 건데...
아마도 항암의 두려움으로 포트는 걱정도 안 하고 있었나 보다.
먼저 수술실에 들어가 국소마취 후 포트삽입술이 진행되었다.
20분 정도의 짧은 시술이 끝나고 엑스레이로 자리를 잘 잡았는지 확인 후 바로 항암제투여를 위해 주사실로 이동했다.
시술직후 사진과 3주후 핀제거후 사진
그때만 해도 너무 정신없이 진행되는 일정에 아픈지 아닌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주 독하다는 세 개의 항암제를 같이 투여받았다.
부작용이 심한 사람은 주사를 꽂고 항암제가 들어가면서부터 바로 구토를 하는 분들도 있다고 했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 나는 이미 3회를 받았는데 그런 분들이 의외로 많다.) 8개~10개 정도의 침대로 이루어진 각 호실의 여러 군데서 구토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나마 요동치지 않고 고요한 나의 위장에 감사하며 조용히 이어폰을 꽂는다.
다행히 항암제를 맞는 동안 우려하던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다.
단지 하루 만에 다 진행해야 해서 항암제를 다 투여받고 나니 시간이 저녁 7시가 넘어있었다.
의외로 아무렇지 않고 배만 너무 고픈 상황이어서 예약한 호텔로 이동해 짐을 풀고 호텔 앞에 있는 숯불갈비집에서 맛있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너무 피곤해서 잠을 자야 하는데 항암제의 부작용이 문제가 아니고 케모포트를 삽입한 피부가 찢어지는듯한 통증과 불편함으로 누울 수가 없는 거다.
시술하셨던 분이 하루정도는 불편할 수 있으니 시술한 오른쪽으로는 눕지 말라하셨는데 이건 의도적으로 조심해야 하는 게 아니라 아예 그쪽으로는 몸을 틀 수도 없으니 거의 앉은 채로 순간순간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아침을 맞았다.
그리고는 바로 울산으로 돌아왔다.
남편도 나만큼 피곤했겠지만 계속 낑낑거리는 내 모습에 얼른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5시간을 내리 운전해서 도착했다.
역시 피곤만 한 수면제도 없는지 그 아픈 와중에서 왼쪽으로 누워서 잠을 좀 자긴 했다.
그렇게 도착한 후로 며칠 동안 나는 아주 예민하게 나의 몸의 상태를 관찰했다.
구내염이 잘 생기고 심해지면 식사하기도 힘들다 해서 먹은 즉시 양치를 하고 가글을 했고, 울렁거림이 심하지 않은지를 잘 체크하고 열도 수시로 체크했다.
희한하게도 조금의 울렁거림은 있으나 먹으면 또 잘 들어가고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3일, 4일, 5일이 흘러가고...
아... 이렇게 특별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도 있구나.
안도했다.
주변에서도 다들 감사하다. 다행이다. 하는데 나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으면 항암효과가 있는 건가 의심이 되기도 했다.
교수님의 말을 빌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작용의 유무와 항암효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부작용이 없으면 항암치료기간 동안 잘 지낼 수 있으니까 좋은 거라 하신다.
그러고 보니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직장생활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 하니 나보다 더 멀쩡하신 분들도 많다는 거다.
모든 항암제가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항암제를 맞기 전에 굳이 너무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그리고 요즘은 예전처럼 부작용이 심하지 않은 치료약들이기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의견 또한 병원에서 안내해 주시던 분의 말씀과 일치했다.
보경 씨와 통화를 하며 내가 쓰는 약이 젬시타빈과 시스플라틴이라는 얘기를 건네었을 때 아는 지인이 유방암이 간으로 전이되어서 예전에 이 항암제를 썼을 때 아무것도 못 먹고 진짜 힘들게 항암 했었는데 전이된 게 다 없어졌다고 좋은 약이라고 희망찬 얘기를 건네준다. 근데 그렇게 센 약이 들어가고도 부작용이 없는 거면 진짜 운 좋은 거라고.
물론 가끔 열이 오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컨디션이 너무 쳐져서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만 있기도 하지만 컨디션이 괜찮은 날은 사이클도 타고 집안일도 조금씩 하고 음식도 하고 일상생활을 하려 노력하고 있다.
2주 동안은 포트를 이틀에 한번 소독해야 하고, 샤워할 때마다 방수밴드를 붙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원래 약한 피부라 너무 더운 여름에 밴드를 붙인 곳이 살짝 짓무르기도 한다.
여느 때 같았으면 번거롭고 불평불만 투성이었겠지만... 뭐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는 대범함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다. 그 어떤 상황도 그러려니 넘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