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지 않는 우주명차 푸조308을 밀어보며

만나게 된 내 미래

by 안과장


출근시간에 타야 할 차를 막고 있는 평행주차차량이 밀리지 않는다면 평정심을 가질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순간 고인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데 김수환 추기경님? 이건희 회장님? 정도일까. 7시 10분이면 주차장이 만차 되는 회사에 다니는 일개 노예인 나는, 알람소리를 듣고 왜 이불을 더 빨리 걷어차지 못했을까라며 내 자신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저 멀리 걸어오는 차주를 보며 우사인볼트 저리 가라 뛰어와도 모자랄 판에 이 와중에 잠옷도 갈아입고 머리도 만지고 오셨나? 하는 마음이 앞서는 옹졸한 사람이다. 6시 45분, 47분, 52분. 시간이 지날수록 7분 동안 차 안에서 별 생각이라도 해야 화가 조금이라도 누그러진달까.


약 900세대가 살고 있는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 그녀가 내 앞길을 가로막은 것은 두 번, 출근길 똥줄 타이밍에만 두 번이다. 전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띄운 머리의 나보다 열 살은 족히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 두 번의 만남 동안 본인의 차량이 가로주차가 안 되는 외제차라 미안하다고 하시길래 상대적으로 늦게 차는 지상주차장이나 퇴근을 늦게 해도 자리가 많이 남아있는 구역을 이 꽉 깨물고 안내를 해 드렸고 심지어 알겠다고 하셨다. 거기에 더하여 앞으로 빈칸에 주차를 잘할 테니 가로주차 하는 거 어디 한 번 보라고 으름장까지 놓으신 그녀. 그 이후 나는 퇴근길에 포켓몬 하듯 여전히 평행주차로 남의 차를 가로막고 있는 그 차를 볼 때마다 사진으로 기록을 해 둔 게 몇 장인지.


그런데 25년 마지막 주말, 선물같이 그녀를 마주치게 되었다. 토요일 출근했다가 점심 먹고 느지막이 퇴근하여 주차장으로 가는 길 발견하고 지켜보기로 했다. 그 시간 아파트 주차장에 빈칸이 없을 리 없을 텐데 그녀는 또 누군가의 차 앞을 가로막고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녀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다 :


“지금 빈자리가 많은데요,,,,”


주차를 하고 집으로 가는 길 날 기다렸던 그녀가 이번엔 차가 아닌 몸으로 내 앞을 막아세웠다. 아니~ 로 시작하며 그전에 보여주셨던 미안함과 호언장담했던 기개는 사라진 채 반말을 토해내며 머 머 머! 왜 왜 왜! 를 스타카토로 내뱉기 시작했다. 세 번째 마주쳐서 친숙하다는 생각이라도 들었던 걸까? 하여 그녀에게 자꾸 반말하시면 나도 반말하겠다고 허락을 구하고 그녀는 그러라고 하여 나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녀는 심지어 지금 니 차 앞에 댄 것도 아닌데 니가 무슨 상관이냐는 말을 이어가셨다. 그래서 나는 본인만 생각하며 이기적으로 살아서 너무 부럽다고, 본인만 생각해서 살아서 참 속편하겠다고 진심 그녀를 부러워했다. 그랬더니 뒤이어 그녀는 나의 세끼를 걱정해 주었고(뭘 처먹고 다니길래 나한테 이러냐), ‘젊은것들이 말이야’라는 안 나오면 서운했을 말도 잊지 않으셨다. 어른들은 다 똑같은 말 어디서 배우나 보라고 했더니 너는 안 늙을 거 같냐는, 역시나 예상한 문장들이 연이어 나올 때 난 참지 못하고 질러버렸다 : 그렇게 늙어서 너무 부럽다고…


이어 그녀는 부러워하기만 하는 나에게 지랄한다며 내 최애 단어라 아껴둔 그 단어를 내뱉으셨는데 드디어 봉인해제구나 하여 나 역시 아껴둔 여러 단어들을 하나씩 풀어드렸다. 그녀가 내 앞에 삿대질을 하며 가까이 다가올수록 한대치고 싶은 마음이 너무 들었는데 애써 튜닝하신 얼굴에 더 큰돈을 쓰시게 될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랫배에 힘주고 소리지름의 티키타카가 오가서 그런가 갑자기 눈치 없이 화장실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바지에 하는 한이 있더라도 먼저 내뺄 수 없다는 생각에 닿았을 때쯤 그녀도 그랬는지 먼저 자기네 동 쪽으로 가길래 나도 쫓아갈 마음도 없어 우린 드디어 헤어지게 되었다. 물론 헤어지면서도 서로에게 얼마나 잘 사나 보자며 덕담도 잊지 않았다.


똥타임을 잘 보내고 나니, 현자 타임도 같이 온 걸까. 그 아줌마 내 차 다 봤을 텐데 차 부시는 건 아닐까 그렇다고 차박을 할 수도 없고. 그래, 그나저나 그 아줌마 말처럼 내 차를 막은 것도 아닌데 난 왜 나댔을까.


그녀가 타고 다닌 그 차가 궁금하실 듯하여 몇 자 더 넣는다. 그 차는 푸조 308이다. 그 모델은 신기하게도 한 때 내가 갖고 싶었던 차였다. 이 차에 왜 꽂히게 되었는진 기억나진 않지만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를 프랑스어를 선택했던 것과 같은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그녀도 그런 연유로 저 차를 타게 된 걸까. 그녀와 나의 선호도가 비슷하다면 그녀가 나에게 해준 덕담대로 내가 그녀의 나이가 되었을 때 그녀처럼 누군가의 차를 막고도 뻔뻔하게 서있게 될까. 연말이라 그런 걸까. 마흔을 앞둬서 그런 걸까. 생각이 많아진 25년의 마지막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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