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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Nov 05. 2020

하루라도 붙잡고 싶은 가을날

 파란 하늘 아래 아무리 걸어도 충분치 않은 날들이 이어진다. 낙엽은 한 장 한 장이 독특하고 개성이 넘쳐서 꼭 집에 가서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해본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색연필화에 빠졌다. 이상하게 아티스트 웨이를 하면서 그림이 자꾸 그리고 싶어졌다. 그 그림이란 게, 자꾸 종이가 벗겨지는 수채화도 아니고 코를 찌르는 유화도 아니고 진하게 색이 묻어나오는 오일파스텔도 아니고, 부드럽게 사각사각 종이에 닿는 기분이 그저 좋은 색연필화라는 걸 시행착오를 통해 알았다. 내 오일파스텔은 몇 번 개시 못하고 구석에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언제까지 얇은 코트를 걸치고 볕을 즐기며 여유롭게 걸을 수 있을까. 하루를 붙잡고 잠깐만 더 있다 가라고 사정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그럴만도 한 게 올해를 누가 가위로 오려낸 다음 가져가버린 것만 같아서 억울하다. 그나마 덜 억울한 건 전세계 사람들이 나와 비슷할 거라는 점. 





 올 설이 끝나고 갑자기 코로나19가 국내에 확산되기 시작해서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게 다음 설이 다가오는 지금까지 더더욱 심화되어 번지고 있을 줄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에도 철이 없어서인지 미래 후손에 대한 책임감 같은 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번 사태로 처음으로 느꼈다. 마스크가 익숙해진 어린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우리는 상대적으로 너무 많은 걸 누리고 자랐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그 일상으로의 복귀가 요원한 요즘은 드라마를 보다가도 저 사람 마스크 안 썼다고 혼자 화들짝 놀란다. 





 어제는 기온이 영하까지 떨어져서 롱패딩을 개시했다. 직장 동료는 11월인데 이렇게 추울 일이냐고 투덜거렸지만 작년을 생각해보면 올해는 그나마 따뜻한 것 같다. 해가 가면 작년 날씨는 까맣게 잊어버리지만 작년 11월즈음에는 집에 돌아오는 밤길에 너무 추어서 오들오들 떨었던 기억이 아직 선명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집에 도착했는데 완전히 깜깜해서 아, 이제 겨울이구나 싶었는데 불이 안 켜졌다. 어이없게도 정전이었고 다행히 스마트폰 손전등이 있어서 깜깜한 와중에 불 켜고 밥은 먹고 일기는 쓸 수 있었다. 엄마가 도착해서야 초와 라이터를 찾아서 불을 켰고 꽤 낭만적인 모녀의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초 하나가(실은 두 개였지만) 얼마나 분위기를 확 바꾸는지 처음 알았다. 




 전기가 없으니 일단 깜깜한 것이 불편하고 무서웠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갑자기 생각이 옆 길로 새기도 했지만, 당장 불편한 게 문제였다. 밥 먹고 따뜻한 물로 몸을 녹이고 유투브를 켜서 운동하는 게 내 저녁 루틴인데, 따뜻한 물은 당연히 안 나오고 TV도 안 켜지고 와이파이도 안 되니 할 수 있는 것이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그동안에는 왜 냉장고에 문 열면 불이 켜지게 만들었을까 궁금했는데 불이 안 켜지면 뭐가 들어있는지도 안 보인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미래에는 환경의 변화로 정전이 잦아진다는데, 그래도 꽤 아날로그인간인 나는 깜깜한 것만 불편했지 손전등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이 꽤 많아서 적응되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변압기의 노후화 때문에 생긴 정전이었고, 자려고 누워서야 전기는 들어왔다. 




 

 내 집은 반드시 분양받아서 신축으로 들어가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새집증후군에 대해서는 아직 아는 바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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