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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Apr 11. 2021

숲 향기가 물씬 나는 책 추천

산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책, <나를 부르는 숲>

 하지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은 저 장관 속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걸어야 할 길에 비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새 발의 피도 안 된다는 것이다.

 ―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리아슨 저 




 빌 브라이슨은 내가 애정하는 작가 중 하나이지만, <나를 부르는 숲>은 김은희 작가님의 추천을 통해서야 조금 읽고 싶어졌다. 그 이유는 그의 다른 저서들이 다뤘던 영국, 사생활, 역사, 몸 등등에 비해 숲에 대한 나의 관심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다소 투박한 만듦새의 종이책의 표지에 그다지 귀엽지 않은 곰과 초록색 산들이 마구 그려져있는 것도 한 몫 했다. 




 <나를 부르는 숲>은 빌 브라이슨이 그의 오랜 친구인 카츠와 함께 세계 최장, 곧 3500km에 달하는 아팔래치아 트레일을 걷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나는 빌 브라이슨과 그의 심술궂은 친구 카츠가 끊임없이 불평하면서 이 험하고 고된 길을 걷는 여정을 내가 시간을 들여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지 매우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매력은, 빌 브라이슨이 그의 다른 책에서도 그랬듯 엄청난 애정을 가지고 아팔래치아 트레일과 그 길을 걷는 일의 기쁨에 대해서 풍부한 역사적 설명을 곁들여 말해준다는 데 있다. 그의 유머감각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그는 알코올 문제가 있는 고등학교 친구 카츠와 함께 두 명이서 이 트레일에 오르는데, 시작부터 만만치 않다. 내가 보기에는 잔뜩 바가지를 써서 어마어마한 금액와 개수의 등산용품을 사고, 말도 안 되게 무거운 배낭을 매고 이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가 매우 상식적이지 않은 친구 카츠를 데리고 다니며 말할 수도 없이 지저분해지고, 추위와 열기로 고생하고, 끔찍한 숙소에서 잠을 청하는 모습을 보는 내내 아, 나는 절대 저 무거운 배낭을 지고 저 험한 길을 걷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왜 어마어마한 돈과 시간을 들여 그 고생을 자처하는가, 그것도 그런 위생과 험한 꼴을 감수하면서?





 그러나 동시에 빌 브라이슨과 함께 숲에서, 그 여정을 나도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 또 '진짜로' 나만의 숲을 체험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솟아올랐다. 마음만은 이미 나도 산사람이었다. 한국판 책의 제목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본래 제목은 <A Walk in the Woods>이다.) 이 책은, 정말로 숲이 우리에게 손짓하는 듯한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표현들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냥 걷고 또 걸었다. 너무나 행복해하면서.
가만히 누워서 기묘하게도 명료하고 분명한 밤 숲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바람과 나뭇잎이 안달하면서 내쉬는 한숨과 나뭇가지의 지루한 신음, 끊임없는 중얼거림과 살랑거림에 마치 전기가 나간 회복기의 환자 병동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면서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들곤 했다.




 나는 빌 브라이슨이 그저 엄청나게 호기심 많고 열심히 연구하는 데다, 유머감각만 갖춘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필시 이 모든 여정을 직접 경험했기에 가능한 섬세한 묘사와 표현력이 내 영혼마저 즐겁게 했다. 또, 그가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여정에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가지고 관찰하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문득 빌 브라이슨이 한국의 명소를 이곳 저곳 방문하여 책을 낸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한국의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도 놀라운 면면을―당연히 나조차도 모르고 있는― 잔뜩 소개해준다면 얼마나 즐거울지.





 <나를 부르는 숲>에서 한 가지 큰 축을 담당하는 것은 미워할 수 없는 구제불능의 친구, 카츠다. 카츠는 이래저래 손도 많이 가고 말썽도 많이 피우지만―유부녀에게 작업을 걸다가 남편에게 쫓기고, 배낭이 무겁다는 핑계로 물통같은 필수품을 마구 던져버리는 등― 존재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친구이다. 비로소 '진짜' 등산에 온 것 같이 만들어주고, 깊은 숲 속에 작가가 혼자 있지 않다고 안심시켜 줄 하나의 존재.





 나는 어디선가 이 카츠가 빌 브라이슨의 어두운 면이라거나, 아니면 상상 속의 친구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읽어서 마치 스릴러 영화를 감상하듯, 그래서 이 친구가 실존하는 인물인지 아닌지에 온통 신경을 기울이며 읽었다. 어느 편이 됐든, 그의 존재는 여정을 함께하는 이―그가 얼마나 어리석든,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든지간에―가 있다는 의미, 그리고 그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실은, 이 책을 통해 숲에 너무도 매혹된 나머지 설악산 케이블카를 타러 다녀왔다. 지금은 가을도 아니고, 꽃이 엄청나게 피어올랐을 봄도 아니어서 약간은 기대가 없는 채로 갔는데 웬걸, 설악산으로 가는 모든 길목이온통 활짝 핀 벚꽃나무가 줄지어 서 있어 마치 애니메이션에나 나올 듯한 풍경이었다. 눈도 아직 녹지 않았고, 여름이 성큼 다가선 서울과 달리 설악산은 아직 목련도 채 지지 않았었다. 옮긴이가 썼듯이 한 사람의 여행기가 다른 사람을 또 여행으로 이끄는 이 바람직한 연쇄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놀랍고도 감사한 일이다. 물론, 큰 수고를 하여 그의 삶 일부를 이 책에 바친 작가에게.





 이 책을 읽고 있자면 자연의 사랑스러움과 경이로움, 그리고 두려움에 몸을 떨게 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상해가는 자연을 지금 이대로 붙잡을수만 있다면, 하고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 모든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고 산 속으로 걸음을 옮기는 이를 동경하게 되고, 그러다가 결국 자기만의 먼 길을 떠나게 하는 이 책을 추천한다. 마음의 풍경을 환기시키고 싶은, 산을 타는 즐거움을 책으로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 <나를 부르는 숲>은 자연으로 향하는 그 첫 걸음이 어려워 망설이는 현대인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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