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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May 16. 2021

달리는 즐거움

요즘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 - 8. 달리기

 나는 학창시절에 체육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학생이었다. 내 스스로의 움직임이 그렇게 민망하고 남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내가 동작하는 걸 누군가 지켜본다는 것 자체가 견디기 어려웠다. 그런 내가 성인이 되고서야 요가, 필라테스, 발레 등의 새로운 운동들을 하나씩 몸에 익히기 시작했을 때 나는 맨몸 운동이 가장 잘 맞고, 꽤 즐기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늘 운동에 소질이 없다는 소리만 들어온 내가 20년이나 뒤늦게 알게 된 거다. 내게도 잘 맞는 운동이 있다는 걸. 중고등학교 체육시간에 배운 발야구나 피구, 배드민턴이 체육의 전부는 아니란 걸.




 

 내가 유난히 오만 종류의 운동을 모조리 못 한다고 자괴감을 느끼게 된 데는 나의 아빠 탓도 있다. 오만 운동을 다 잘하는 사람. (그러나 이것도 최근에야 알게 된 건데, 내가 잘하는 운동―이를테면 유연성을 요하는 운동―은 아빠도 굉장히 취약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누구든 너무 섣불리 자기 한계를 스스로 만들어버리고 그 안에 웅크리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특히나 난 그런 아빠의 유일한 자식이라 늘 아빠가 원하던, 운동도 잘하고 활달해서 같이 곧잘 다닐 수 있는 그런 아들이 아니었다는 데 부채감을 느껴왔다. 꼭 오래 기다려온 크리스마스 선물이랍시고 도착한 내가 실은 아무도 바란적 없던 그런 선물인 걸 깨닫고는 이 집에 계속 남아있는 게 민망하고 너무 미안해진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운동이 그 자체로 벌써 싫고, 누구누구(주로 내 친구 아니면 아빠 친구의 자녀)가 운동을 잘하더라고 아빠가 칭찬하거나, 아빠 친구들이 내 어설픈 동작을 보고 넌 어떻게 아빠를 하나도 안 닮았냐고 뭐라고 하는 걸 들으면 그냥 속이 상하는 게 아니라 내 존재가 뿌리채로 흔들리고 부정하다는 느낌에 온통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것도 모두 과거 얘기다. 운동을 충분히 즐기는 정도를 넘어서 운동을 하루라도 하지 않고 못 배기는 걸 보면, 나도 아빠 딸이 맞긴 하다는 걸 오히려 확인하게 되었으니까.





 달리기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냐고 하면, 코로나19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원래 기구 필라테스를 꼬박꼬박 다녔던 나는, 마스크 끼고 운동하는 건 할 짓이 못 된다, 게다가 기구 필라테스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결론을 신속히 내리고 홈트로 전향했다. 마침 퇴사하면서 스마트티비를 들여놓은 뒤라 유투브를 큰 화면으로 보며 따라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아침에는 어깨를 펴는 짧은 스트레칭으로 시작, 퇴근 후에는 그 유명한 다리운동과 복근 운동, 혹은 20분 정도의 유산소와 복근운동을 한 뒤 기력이 남으면 집에 있는 작은 기구로 트위스트 운동을 했다. 집에서만 운동하다 보니 스스로 마음가짐이 나태해지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 내게는 새로운 모멘텀이 필요했다. 야외에서 하는 운동이면서, 내게 활력을 주는. 그리고 생동감이 있는! 바로, 달리기다.






 달리기는 시작하기에 앞서 영 걱정이 많았다. 나는 오만 관절이 다 안 좋은데, 괜히 부상만 입고 관두는 거 아닌가 싶은 걱정에서부터, 그냥 무작정 나가서 뛰면 되는 건지, 달리기도 어디서 배워야 하는 건 아닌지 등등. 그렇다고 내가 한 번도 달려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대학교 1학년, 기숙사 생활을 한 학기 했었는데 그때 꽤나 열심히 뛰었었지. 이상하게 뛰기 시작하면 기분이 너무 좋고 보람차서, 나를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에 중독되어서 꾸준히 뛰었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고, 역시 달리기에 대한 별 생각은 없었다. 





 얼떨결에 다시 시작한 달리기를 몇 회 하지는 않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뛰기 시작한지 한 달이 어느새 훌쩍 넘었다. 나의 소감은 이렇다. 마스크 쓰고 달리는 것도 적응이 되는구나. 그리고 처음보다는 확연히 많이 늘었다는 것. 뛰고 난 후의 기분이 너무 좋은데, 뛰는 순간에도 이렇게 영원히 뛰고 싶고, 또 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의 환희가 있다. 그걸 다시 느끼고 싶어서 계속 하는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내게 남겨진 시간이 영원하지 않고, 생각보다 짧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슬슬 든다. 꼭 어린아이가 절대 안 다칠 것 같고, 어디에서 뛰어내려도 날 붙잡아줄 안전망이 있을 것 같은 그런 착각에서 조금씩 깨어나는 그런 시기가 찾아온 걸까. 그래서 지금 언젠가는 해야지 머릿속으로 구상만 해왔던 일들을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 또, 3년 뒤, 5년 뒤의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떻게 살고 있을까 계속 그려보게 되는데, 꾸준한 달리기로 지금보다 훨씬 건강한 모습의 내가 되길 바라며 계속 뛰고 있다. 인생에서 이렇게 통제 가능한 변수들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게 좋다. 



 


 초보자의 페이스로 천천히 뛰다 보면 쉬지 않고 계속해서 뛰는 사람들을 보면 언젠가 초보였을 그들의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질문을 던져본다, 나도 언젠가는, 언젠가는 저렇게 뛰는 날이 올까, 하고. 이제는 일주일에 2회 이상씩은 꼭 뛰려고 한다. 그래, 내가 원래 해오던 대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해보는 거라고.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으면 돼. 지금은 어리숙하지만, 언젠가 지금을 추억할 날이 있을까, 그때 엄청난 동기도 없이 시작한 이 달리기를 그만두지 않는 나 자신을 몹시 칭찬하게 될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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