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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May 22. 2021

그림책 <여우>를 읽고

<여우>, 마거릿 와일드 저


 그림책 <여우>는 날개를 다친 까치가 날고 싶다는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붉은 여우의 계략에 휘말려버린 이야기이다. 너무나 많은 논점을 품고 있는 <여우>를, 나는 결핍과 욕망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결핍을 가진 자(외로운 여우)는 또 다른 결핍을 가진 자(날지 못하는 까치)를 알아본다. 한 쪽 눈이 보이지 않아도 세상은 여전히 멋진 곳이라고 볼 수 있었던 개는 이해하지 못했던 욕망이다. 한 쪽 눈이 먼 개에게는 없는 고통을, 나는 듯 빨리 달릴 수 있는 여우는 품고 있다. 보다 쉽게 읽히는 동화, <어린왕자>에서 보다 행복한 여우가 말했듯,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고통과 분노는 여전히 '냄새'로 감각된다. 어떤 종류의 마음은 숨길 수가 없다.          



 외롭고 분노에 차 있는 여우는 까치를 사막에 떨어뜨려 놓고는 말한다. 이제 외로움이 무엇인지 알게 될 거라고. 그러나, 내 생각에 까치도 개도 외롭지 않을 것 같다. 까치는 비록 멀고 먼 길이지만, 개를 찾을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지만, 어딘가에 자신의 날개가 기꺼이 되어주었던 개를 향해 '폴짝폴짝'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으므로 외롭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다. 개는, 눈을 떠보면 까치도 여우도 없어서 놀라겠으나, 절망하리라고 단정할 수가 없다. 그에게는 여전히 멋진 곳인 이 세상에는 그가 먼저 친구를 청할 수많은 생명체가 있을 것이니까.          



 나는 까치가 안쓰러웠다. 그에게 나는 것은 생의 본질과도 같은 것이었을 테다. 그가 여우와 떠난 것은 피치 못할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까치는 미숙한 선택을 했다. 그는 적어도 여우와 떠나기 전, 개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의 행방을 알지 못한 채 붉은 사막에 홀로 남겨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까치가 자신의 욕망에만 정신이 팔려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 있다. 개는 한 쪽 눈으로 여전히 볼 수 있다는 것을. 까치가 그의 눈이 되어줄 필요는 없었다. 까치는 개가 없으면 날 수 없지만, 개는 까치가 없어도 볼 수 있다.          



 그림책 <여우>는 단순하지 않은 이야기다. 작가는 인생을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까치가 떠나는 여행과 같은 것이라고 본 걸까? 잘못된 선택(신의있는 친구를 남겨두고 여우와 떠난 것)으로 붉은 사막 가운데 버려진 다음,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친구를 찾아 다친 몸을 이끌고 떠나는 끝도 없어보이는 여행같은 것이라고. 인생이 여행이라는 말에는 동감이다.          



 결국 <여우>는 결국 서로 다른 시기의 인생길을 지나고 있는 세 등장인물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 어쩌면 개가 한 쪽 눈이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긍정적일 수 있었던 것은, 날 때부터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그에게는 상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면, 한 눈으로만 봐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눈을 멀게 된 지가 꽤 오래 되어서 그로 인한 불편과 절망을 모두 회복할 수 있었을 수도 있다. 언젠가 그에게도 까치와 같이 절망에 빠진 시기가 있었는지도. 반면에, 날지 못하는 까치가 개와 같은 좋은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면 여우와 같이 변해버렸을 수도 있다. 주인공이자 강력한 존재감을 뽐냈던 여우는, 절망에 빠진 까치에게 찾아와 함께이기를 청했던 개처럼 다른 친구가 찾아오게 되면 내면의 외로움과 질투는 눈 녹듯 살아져버릴지도 모른다.          



 어린이들에게 적절한 동화책인가, 그러니까 어린이들이 이 단순한 이야기 속에 숨겨져 있는 복잡한 이야기를 독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으나, 생각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양질의 책임은 분명하다. 다만, 나는 어린이들이 처음부터 여우를 미워할 것이 우려스럽다. 그는 강렬한 붉은 빛깔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를 나쁜 존재로 만든 것은, 그가 친한 개와 까치 사이를 파고 들려고 했기 때문도 아니고, 감출 수 없는 분노와 욕망, 질투를 품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가 잘못한 것은 개를 떨어뜨려 놓고 사막에 날지 못하는 까치를 버려둔 것, 이 하나이다. 우리 마음에 수도 없이 피어나는 생각이, 채울 수 없는 결핍들과 끊어낼 수 없는 욕망들이 있지만, 그것을 최종적으로 어떻게 행동으로 옮기느냐, 이것이 우리의 존재를 결정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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