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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May 25. 2021

애정을 유보하는 일


 이심전심이라는 사자성어를 끔찍하게 싫어하면서도(사실보다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 소통하지 않으면 알 수 없으며,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뼈저리게 느낀다) 내 마음을 입 밖에 꺼내는 순간, 어쩐지 바람빠진 풍선처럼 그 마음의 부피, 밀도 따위를 잃어버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고마움이나 애정을 투명하게 내비치는 사람이나 특히 강아지를 불편해하는 건, 내가 진심을 전달받는 순간 금세 휘발되어버릴까봐, 또 내게 표현하는 양만큼 잃어버리는 마음의 크기가 있을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창시절에 겪는 일이란 걸 알지만, 어렸을 때 단짝 친구로부터 크게 데인 후로 충격이 컸던 나는, 아무에게나 마음 문을 활짝 열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했다. 쉽게 정 들고, 그만큼 혼자 들뜨고 멋대로 남김없이 몽땅 믿었다가 혼자만 상처받는 게 억울했기 때문에, 내 마음에 아주 크고 무시무시한 울타리를 두르고 꼼꼼하게 검증된 사람만 들이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게 성숙하고 현명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고, 나를, 그리고 실은 별 잘못 없는(내가 좋아하는 만큼 날 좋아하지 않는 게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상대방을 보호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내가 사람의 마음이 갖는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마음이란 꾹꾹 누르면 자취를 감추기도 하는 것, 시간이 지나면 눈 녹듯 흔적만 간신히 찾아볼 수 있어지는 것, 사람이 불을 지피고 꺼뜨리기도 하듯 너무 늦지 않으면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하기도 한 것이라고 믿었다. 옷뭉치를 마구 넣어버리고 닫은 옷장 문이 언젠가는 열릴 수밖에 없듯이 오랫동안 억지로 눌러왔던 마음이 우르르 쏟아져내릴거라고는 미처 몰랐다.




 인생의 한 때에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식물과 동물에게 끌리는 건 그들의 영혼이 얼만큼 닮아있기 때문이고, 그 시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이고 위로가, 버팀목이자 안전망이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제든 아무렇지도 않게 거둬들일 수 있는 딱 그만큼의 마음만 주고 받으면 예전처럼 혼자 아프고 부끄럽고 자존심 상해서 허우적거릴 일도 없다고 믿었는데, 내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유보한 그 마음의 깊이만큼 혼자 오래오래 힘들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인생은 내가 예상했던 만큼 무겁고 진지해서 오만 장비를 다 갖춘 채 날 방어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사그라지는 마음을 있는 대로 표현했더라면 지금껏 내가 겪어왔을 고통과 행복의 총량이 어떻게 달랐을까.




  애정을 유보하고, 내 마음을 꽁꽁 감춰두고, 서로 너무 힘들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사는 일, 이 모든 것은 견고하고 매우 높고 험악한 성에서 홀로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보는 눈이 어떤 삶이 펼쳐질지 결정짓게 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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