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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May 26. 2021

그리움을 품고 사는 일

 지나간 것을 지나간 대로 남겨두는 일에는 생각보다 상당한 용기와 마음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놓치 못하는 과거만큼이나 멋진 미래가 아직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용기와, 자꾸만 과거로 향하는 내 모든 정신과 마음을 현재로 단단히 붙들어놓을 수 있는 힘이. 


 그리움을 품고서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게 삶이란 그저 앞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조차 꼭 물 속을 걷는 것마냥 벅차기 마련이다. 그리워하는 이유도 수만가지다. 미안해서, 그때는 소중함을 몰랐어서,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아니면 그저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보고싶어서. 심지어는, 이미 보고 있음에도 그리워하기도 한다. 내 마음 속 너무 커져버린 대상에게 더 가까이 닿고 싶어서. 그것조차 아니라면, 단순히 


 내가 그리워하는 것들은 너무나 많은데, 내가 당시에도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하고 간절하게 바랐던 것들도 있지만, 내가 그때에는 끔찍하게 싫어하거나 견디기 힘들어했던 것들, 주로 과거의 나, 너무나 떠나고 싶던 내 고향, 그리고 그때에는 날 너무 힘들게했지만, 그들로서는 최선이었던 친절과 애정을 베풀었던 사람들도 포함된다는 것은 뜻밖의 일이다. 


 아직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그리움의 대상을 미화하기란 얼마나 쉬운지. 곱씹을 수록 온갖 생채로 새롭게, 혹은 더 생생하다 못해 황홀하게 되살아나는 것이 추억말고 더 있겠는가. 그러니까 뒤를 돌아봤다가 영영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전설 속 인물들을 함부로 미련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전에는, 내가 아직 미련을 놓지 못하는 건 아직 풀지 못한 매듭이 있어서라고, 돌고 돌아 언젠가는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아니면 과거가 살아있는 양 나를 소환해내기 때문이라고 내 멋대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빈도와 강도에 따라서는 추억하는 행위도 나를 갉아먹는 중독과 같이 작용할 수 있다는 걸 결국에는 인정해야 했다. 변해가는 것과 영영 잃게 되는 것들에게 작별하는 건 늘 새롭고 익숙해지지 않는 일, 그래서 연습이 필요한 일인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미련한 탓인지, 내가 가지지 못할 것이라면 남의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내 것이어도 그저 더 좋아보이는 반면, 지금 내가 누리는 것들을 하찮게 여기기 십상이다. 결국 그리움의 고리를 끊는 건 마침내 그토록 그리던 사람을, 장소와 대상을 다시 찾음으로써가 아니라, 온전히 현재에 머물러있음으로 인해서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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