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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May 27. 2021

기다림은 즐거워


 내가 제일 못하는 것 중 하나는 기다리는 일이다. 어렸을 때는, 하교하는 길에 신발끈을 고쳐 묶는 친구를 두고 집에 먼저 가버린 적도 있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 다음날까지 잔뜩 화나있는 친구를 골리는 재미도 물론 있었지만, 지금 갈 수 있다면 혼자서라도 지체하지 않고 당장 가는 것, 그게 내 인생 전체를 꼴짓는 성향이었다.




 기다리는 내내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기 어렵다. 마치 버스가 시간에 맞게 올 것을 알지만 오지 않을까봐, 아니면 오더라도 사고가 나거나 차가 밀려 예정 시간에 도착하지 못할까봐 아예 훨씬 일찍 길을 나서거나 가능한 다른 선택지들을 여럿 만들어놓아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진정되는 것이다. 미래는 알지 못하니까, 어떤 것이 튀어나올까 늘 두려웠다.




 이 불안은, 애초에 찬란한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작되며, 내 의사와 관계없이 내 운명이 판가름되기만을 기다릴 시기에 더욱 극대화된다. 수험생일 때는 내가 불합격했어도 좋으니 다만 미래만 알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결정되지 않은 것들, 무한에 가까운 가능성, 내 앞에 수없이 뻗어있을 갈랫길, 그 모든 끝을 나는 미리 알고 싶었다. 결국 내가 원하는 무엇을 갖게 될지, 내가 마침내 무엇을 이루는 어떤 사람이 될지를 떠나서, 하나의 선택이 잃어버릴 수많은 가능성이 오히려 나를 더 괴롭게 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고 취직을 하니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숨막히는 적막, 길의 막다른 끝이었다.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끝에서 발견한 것이 절벽이나 막다른 골이었으므로 꽤 오래 우울했다. 결국 내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불안하지 않는 것도, 모든(그리고 아무) 선택지의 끝을 미리 알 수 있는 능력도 아니고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내가 원해서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용기였음을 뒤늦게 알았다. 원치 않는 길의 끝을 본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우물에 비친 내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그렇게 바란 적도 없던 첫 직장을 떠나고, 마침내 지금 직장에 안정을 찾을 무렵, 기다림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기다릴 대상이, 일정이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이 있다는 것을. 설레는 마음을 붙잡고 기다릴 수 있는 대상을 일상 속에 많이 배치해놓을 수록, 삶은 다채로워진다.




 긴 기다림 끝에는 막상 별 게 없을 수도, 기대보다 더욱 멋진 것이 있을 수도 있다. 배달음식이나, 요일별 찜해놓은 웹툰,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처럼 소소하고도 기다림의 끝과 행복의 최대치가 어느 정도 정해져있는 기다림도 있거니와, 일상으로의 복귀, 꿈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만들어주는 합격 발표처럼 막연하고도 멀게 보이는, 그래서 더 간절한 기다림도 있다. 그렇게 막막하게 기다리는 일이 마침내 끝이 날 때,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한 건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딱 그만큼 더 큰 즐거움이 우릴 기다릴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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