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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n 05. 2021

가능성의 문을 하나씩 닫는 일


요즘 아이들을 보면 너무 예뻐서 눈물이 날 것 같다. 내가 오래전 잃어버린, 마음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깨끗한 눈이나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꾸밈없는 즉각적인 반응같은 것들. 그리고 아이의 크고 작은 선택에 따라 열리고 닫힐 셀 수 없이 많은 가능성의 문들.



나는 어렸을 때 그 문들의 소중함을 조금도 몰랐다. 오히려, 발을 삐끗하면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질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웠다. 눈을 감았다 뜨면 손자손녀가 있는 머리 하얀 할머니가 되어서 호박 파이를 구워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다녔으며, 마음은 20대라는 부모님에게 내 마음은 왜 60대인지 되묻고는 했다. 정해진 건 없고, 내 앞에 멀리멀리까지 뻗쳐있는 길을 보면 마음이 막막한 나머지 사는 게 벅차게 느껴졌다.



이제는 하나하나 정해지는 게 좀 오싹하게 느껴지는 나이가 됐다. 내 끝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싫기도, 이 길의 끝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봐 두렵기도 하지만, 내가 가지 않을 길들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것이 가장 크다. 이게 내가 가야 하는 길이라고 번쩍번쩍 빛나고 손 흔들며 맞아주는 그런 선택지가 있으면 좋을텐데, 결국 모든 길은 어느 정도의 불안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을 인정하는 게 쉽지 않다.



가능성의 문을 하나씩 닫는 일이란, 서글프지만 내게 남은 문들을 다시 확인하고, 내가 선택해서 여기까지 붙들어 온 길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 그리고 씩씩하게 계속 걸어가는 일, 지금 내 곁을 지켜주는 소중한 사람들을 잘 지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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