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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n 08. 2021

함께 사는 일의 기쁨과 슬픔


일찍 일어나도 시간에 맞춰 나오는 게 때때로 힘든 건, 막 문고리를 잡아당기려는 나를 부르는 엄마 때문이다. 그 옷은 어제 입은 옷이다, 오늘은 추운 날이다, 우산이 너무 작다 등등. 엄마 말을 들어서 손해보는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아예 무시할 수 있을만큼 틀린 말은 아니라 신경쓰다보면 내가 챙겨야 할 것을 오히려 까먹은 채로 급하게 나오는 날도 있다.



혼자 살다가 다시 본가로 들어오니,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택배가 매일같이 도착하면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고, 몰래 뭘 사오려고 해도 어떻게든 표시가 난다. 부모님은 모르고 나만 알아야 할 것들, 서로의 공동 생활과 나만의 생활의 경계, 이 사이를 사수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생채기가 나기도.



한번은 꿈을 꾼 적이 있다. 집에 들어온 지 1년쯤 됐을 때였는데, 나의 최소한의 경계선을 존중하지 않는 가족 때문에 숨이 막혀서 믿을 만한 사람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편―물리적인 위해를 동반하는 것이라도―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음번에 온갖 물건을 깨부수며 소리를 마구 질렀더니, 오히려 내가 다칠까봐 걱정하며 나를 울면서 감싸안았고, 나도 울었다.



함께 살기에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은 많고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간 혼자서도, 함께도 살아본 나는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엄마가 나를 가만가만 보더니, 정수리 부근에 점이 있다고 했다. 내가 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지켜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든든한 일이다. 일상에 무슨 문제가 생겨도 아예 무너지지는 않도록 단단히 지탱해주는 존재라고 할까.



오늘 하루를 견딜 수 있는 건 내가 혼자가 아니라 둘이기 때문이다. 엄마와 내가 모두 퇴근해서 만나면, 서로 보고싶었다고, 잘 지냈냐고 안부를 묻는다. 서로 직장에서 일어났던 이야기―속상했던 일,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아 혼자 분했던 일, 엄마가 아니라면 관심없을 그런 소소한 일들까지도―를 한 보따리씩 마치면, 하루의 노고를 인정해주는 시간이다. 얼마나 바쁘고 힘들었는지, 집에 오고 싶지는 않았는지, 힘들면 언제든 그만두고 집에서 같이 놀자는 말도 꼭 덧붙인다.



누군가와 함께 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그 이상으로 동거인과의 관계가 곧 내 뿌리가 된다. 함께하는 데 수반되는 온갖 괴로움,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내 맘같지 않은 사람과 산다는 건 인생을 부어 헌신할 가치가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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