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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n 18. 2021

민낯을 내보이는 일


어른이 된다는 건 좀처럼 민낯을 내보이기를 꺼리게 되는 일 같다. 사회적 가면을 단단히 쓰고, 내 진짜 마음이 불쑥 그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늘 철저히 방어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 그 가면을 조금 놓쳤다. 이런 일이 생겼을 때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철갑으로 나를 꽁꽁 두르고 며칠간은 잠자코 있어야 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양 행동하면 진짜 그렇게 될 것처럼. 아무도 못 본 척 해주길 바라면서.



요즘 직장에서 불쑥불쑥 화 낼 일이 많아졌다. 나는 늘 표정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흉으로 많이 들어온 사람인데, 그런 나도 평정을 잃게 된다. 이 모든 것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고 싶지만, 나도 알고 있다. 피해자 역할에 심취되어 남을 헐뜯기 즐겨하는 내 민낯을.



그래, 실은 내 민낯을 남들에게 가리는 것이 곧 나로부터 내 진짜 모습을 못 보이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결국 내게도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더 좋은 사람인 것처럼, 누구보다도 나 자신에게 행세하고 싶었다.



이것도 분명 내 모습이 맞는데, 가면 속 내 얼굴인데 잠깐 엿보엿다는 것 때문에 발가벗은 기분이 든다. 이 수치스러움과 숨고 싶은 마음, 문제가 있는 걸까.



긴장을 풀고, 나를 좀 더 내보여도 된다고 말하지만, 분명 사회적 관계 속에서 진짜 나를 보기 싫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적당한 거리를 사수하는 일에 나는 아직 목숨을 걸고 있고, 그래서 때때로 많이 지친다. 혼자 먼저 나가떨어진다.



그러니까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아무에게나 꺼내보이는 건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철이 없고 처신 못한다는 욕이나 먹을 용기, 여린 마음을 함부로 나누어준 죄로 혼자 서운하고 상처받을 용기. 내게는 아직 그런 용기가 없다고 변명하지만, 그런 용기는 누구나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몰라. 스스로 강해재기로 마음 먹음으로써만 가능한 것, 연습으로만 가능한 그런 일을 혼자 나는 안 된다며 지레 겁 먹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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