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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n 24. 2021

꿈같은 저녁, 달리기 일지


어제 저녁에도 30분 달리기를 하러 공원을 나갔다. 비가 온 뒤에 선선한 바람, 풀과 나무들이 숲을 머금어 짙어진 숲 내음, 그리고 분홍빛 커다란 구름들이 그림같은 하늘 위를 떠다녔다. 이런 환상적인 저녁을 만끽하면서, 이렇게 밖에 나오지 않았다면 이 행복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며, 그동안 내가 놓쳤을 수많은 저녁들을 놓쳤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 지나가는 시간을 지금이라도 붙잡고 싶어졌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퇴근하면 꼭 집에만 머물렀고, 그래야만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나를 보고, 새장―실은 그런 새장같은 것은 없는데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그러니까 스스로 만든 새장에 갇힌 새 같다고 했다. 그때는 조금 화도 났고, 완전히 공감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달리기는 내가 견고하게 지은 벽을 조금이나마 허물도록 도와준 셈이다.



이제 평일에는 30분을 안 쉬고 달리고 있다. 요즘 비가 시도 때도 없이 내리기 때문에, 비가 안 오는 평일 이틀을 연속되지 않게 잡아채서 얼른 달리러 나가야 한다. 낮 시간 동안 쌓인 스트레스, 날 사랑할 수 없던 마음, 날 너무 힘들게 했던 일들 등등을 모조리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 생각이 많아도 너무 많은 나는 어느 순간부터 숨이 찰 만큼의 운동이 내 머릿속을 깨끗이 지워주는 건강한 취미라는 걸 알아챘다. 이건 요가도, 스트레칭도 대신할 수 없는 활동의 순기능이다.



이제 곧 장마철이고, 나가서 뛰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슬슬 고민하고 있다. 달리기에는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왜 뛰냐고 묻는다면, 마라톤을 나가고 싶고, 뛰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이고, 체지방도 빼야 하고 등등의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이제는 다른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나는 오로지 달리기 위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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