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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n 25. 2021

온 마음을 다해 사람을 미워하는 일


온 마음을 다해 미워하는 사람이 생겼다. 내게 이런 추한 모습이 있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미움을 받는 것보다 미워하는 게 훨씬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도. 내내 참다가 집에 와서 울기도, 자다가 새벽에 잠깐 깼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비집고 나오기도. 그러나 무엇보다 누군가를 그렇게 미워하는 나의 모습을 사랑하기가 어려워서, 그게 가장 힘들다.



미운 사람의 모든 면면이 밉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났다. 약자를 미워할 때 대하는 태도가 사람의 품격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했던 내 신입 시절이. 내게는 누구든 막 대해도 되니, 소리지르고 폭언하는 사람에서부터 어르고 달래고 위로해주는 사람까지 각양각색이었고, 그래서 엄청나게 상처받았으면서, 그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그래도 되기 때문에' 헐거워진다면 그건 내 문제라는 걸 인정해야겠다.



어제도 퇴근한 후에 가족에게 내 괴로움을 털어놓았다. 그 사람이 옆에 있음으로 인해서 너무 힘들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미워하는 마음을 놓을 수 없음, 미워해서 내가 원하는 만큼 이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할 수 없는 것, 이것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한다.



답답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또 공원에 운동을 하러 갔다. 비 온 뒤 선선하고 습한 공기, 맑은 하늘, 운동하는 사람들과 강아지들을 보니 머리가 조금 시원해졌다. 적당한 때에 환기하는 것, 마음의 풍경을 돌리는 것, 역시 최고의 특효약이다. 덕분에 내가 괴로워하는 이유가 선명히 보였다. 미워하는 마음을 꼭 움켜잡고 놓지 않기 때문에 괴로웠다.



 왜 나는 스스로를 구렁텅이에 몰아놓고 괴로워하는가, 편안한 마음을 품기란 이렇게 어려운 일일까. 진정한 내 마음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타인의 환부로부터 나의 숨기고 싶은 모습들을 발견하고 감싸안아주고 싶다. 다른 사람의 태도와 품격과 상관 없이 늘 내면의 기쁨을 지니고 다니며, 사랑으로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니까, 이것은 타인이 아니라 내가 해결해야 할 나만의 문제이다. 부족한 이들끼리 어울려 사는 이 사랑스러운 세상에서, 결국 이 모든 것은 내 내면에서 비롯된 것임을 잊지 않는 것, 나는 내가 불을 비춘 스크린에서 나오는 영화를 보게 될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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