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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l 12. 2021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나는 마음 둘 곳 없이 고독하고 힘겨운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말하는 어른을 알고 있다. 가까운 가족으로서, 그는 애정을 표현하고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에 미숙하다. 내가 아는 또다른 어른은, 이제 손자손녀를 볼 나이가 되었는데도 부모에 대한 미움을 그득 품고 있다. 그가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애정과 보호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걸음이 어려운 자신의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는 그의 의사와 관계 없이 멋대로 멀리멀리 끌고 가서, 불만을 터뜨리고 옛날옛적 일을 따지느라 위험에 빠뜨릴 뻔했다.



미움과 원한이 얼마나 질긴지 깨달을 때마다 섬뜩해진다. 그렇게 오랜 시간 증오를 품고 있자면, 증기를 뿜어내는 압력솥처럼 반드시 일상 속에서 때때로 그 감정이 새어나오기 마련이다. 사람은 본인이 지닌 것만을 표현해낼 수 있고, 자신의 인생에서 발견해낼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진실이 어떠했느냐보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마음에 간직한 채 살게 되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선택하거나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 또한 본인의 몫이고 책임이라는 것도.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이해하는 폭도 조금씩 넓어진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냐고 하면, 별로 자랑할 만한 것 못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썩 진실에 가까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알겠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눈이 잘 안 보이면서 남들도 다 그렇게 아는 줄 알고는 인상을 찌푸린 채 세상을 보던 아이고, 어쩐지 사람들과의 관계가 불편해서 늘 스스로를 숨기고 최대한 작게 웅크리느라 마음이 괴로운 아이였다. 여기저기 맡겨져서 큰 탓인지 내 존재 자체가 늘 민폐인 것 같고, 없는 듯 있어야 할 것 같고, 아주 작은 잘못으로도 오래오래 자책하느라 바빴던 아이.



최근에 내가 발견한 그때의 일기장, 엄마아빠가 간직해온 내 어렸을 적 사진, 내가 기억 바깥으로 밀어내놓고 모른척했던 단편적인 일화들을 종합해보자면, 난 평범하고 서툴지만 선한 부모님들 밑에서 모든 상처와 사랑을 다 받아내며 자란 아이였다. 외동인데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언제나 친절했던 부모님 덕에 별 것 하지 않아도 돌봄을 한 몸에 받았으며, 나를 늘 든든히 지켜줬떤 책과 피아노, 산과 바다가 있어 심심하지 않게 아예 무너지지 않게 자랐던 아이. 날 사랑할 수 없어 있는 힘껏 온 세상을 다 미워할 때에도 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부모님과 내 곁의 오래된 친구들 덕에 외로울 틈이 없었던 아이.



내가 지닌 이야기에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것은, 비로소 어른으로 자랐다는 말과 같다. 나는 좀 더 진실한 이야기를 품은 사람이고 싶다. 나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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