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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l 13. 2021

내가 퇴사한 이유


퇴사를 결정한 건 치열한 고민 끝이었다. 한번도 도중에 그만둬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철봉 매달리기 같은 단순한 것 말고, 이렇게 커다란 인생의 행로를 휙 바꾸어본 적이 없어서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이상한 게, 나는 꼭 부모님께 온전한 허락을 받아야만 퇴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꼭 부모님이 투자한, 말하자면 황금알 아니고 평범한 오리알을 낳는 오리 정도 되는 기분이었다. 투자한 것만큼 나오지 않으면 내가 미안해서 어떡해요, 같은 생각.




남들은 좋다고 말하는 그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복합적이어서, 100번을 물어보면 100번 다 다른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정도다. 직장이 지방에 있는 게 힘들어서요, 혼자 살기 싫어서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요, 멀미가 심해서요, 일이 저랑 맞지 않아서요, 오래 다닐 수 없는 직장이어서요 등등. 그러나 가장 진실한 내 내면의 답은, '살고 싶어서요'일 것이다.




나는 살고 싶었다. 이제는 전 직장을 다녔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도 종종 생각이 난다. 상사에게 심하게 혼나 마음이 다 상해서 울고 있는 내게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던 것이나,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몸무게 이야기를 꺼내던 것 등등. 나도 상처받을 수 있는 감정과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고 한번쯤은 말하고 싶었다.




처음 회사를 들어간 나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언제 어디서나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는 게 있다고 생각해온 사람으로서 사람의 가치와 그가 받아도 되는 대우가 직급에 따라 정해진다는 게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참 이상하다, 신입사원의 어리고 미숙한 언행은, 그가 살아온 역사를 통째로 부정한다. 그가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고 혼자 헤매고 마침내 살아서 그 자리까지 왔든지,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몸과 마음, 영혼이 모두 상해버린 채로 지금 다니는 직장에 들어와서, 조금씩 회복하고 있지만, 여기서도 그만두고 싶은 건 마찬가지다. 더 공부하고 싶어서, 나와 꼭 맞는 직장이 아닌 것 같아서, 내 적성을 찾아서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 그러니까 내 영혼과 좀더 연결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 돈을 더 벌고 싶어서 등등.




어떤 결정을 내리든 미래는 불투명하고, 나는 결국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하루라도 더 일찍 퇴사하지 않은 걸 후회하면서도 동시에, 결국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환경 자체보다 중요한 건 내 마음가짐이라는 것. 내가 일을 대하는 태도로 내가 하는 일을 빛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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