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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l 18. 2021

음악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소설 추천

<뮤직숍>, 레이첼 조이스 저

재즈는 음표 사이의 공백이 중요한 음악이다.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음악이다. 
재즈는 간극과 틈이 포인트다. 
추락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만이 진정한 삶이 펼쳐지듯이.




새로운 음악과 사랑에 빠지는 일은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고 그 속을 마음껏 유영하게 되는 것과 같다. 어제는 정리운동을 하다가 유투브뮤직이 추천해준, 볼빨간 사춘기의 <행복은 늘 가까이에 있어>라는 곡을 발견하고 한참 즐겨 듣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내 취향에 맞는 음악을 알고리즘이 데려다줬을까. 그러나, 아직도 나는 나의 상황과 정서를 잘 아는 사람이 추천해주는 음악에 마음이 더 기우는 걸 보면 옛날 사람이긴 한 것 같다.





표지를 보고 운명처럼 이끌린 소설을 읽고 있다. 제목은 <뮤직 숍>, 내가 언제나 읽고 싶고 쓰고 싶었던 그런 책이다. 음반 가게를 하는 주인공 프랭크가 어느날 가게를 찾아온 미스테리한 여자 일사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인데, 챕터마다 프랭크가 손님들에게 추천해주는 음악이 소개된다. 쇼팽만 듣는 남자에게 아레사 프랭클린의 음악을 추천해준다거나, 듣고 싶은 음악을 기억해내지 못해서 답답해하는 루소 부인을 돕는다거나, 슬럼프에 빠진 부부관계를 적절한 노래 추천으로 해결해준다거나 등등, 그에게는 손님의 이야기에 정성을 다해 귀를 기울이고 그에게 꼭 필요했던 음악을 추천해주는 재주가 있다.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과 친밀했고, 지금도 음악을 가슴 깊이 사랑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음악에 대한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있다. 프랭크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음악들을 "뿌리와 정서"가 같다는 이유로 함께 묶어 곧잘 권하는데, 겉보기에 전혀 다른 사람들도 서로에게 이끌리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다.





책을 읽으면서도 틈틈히 하나의 완결된 감상을 남기고 싶다고는 늘 생각하는 바인데, 동시에 책에 대한 나의 생각 역시 이야기를 따라 지어지는 중이므로 자신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책을 절반 넘게 읽어가고 있는데, 프랭크는 일사에게 첫눈에 완전히 빠졌으면서도 또 상처받는 게 싫어서 있는 힘껏 일사를 밀어내고 있고, 일사는 아직까지 장갑을 한번도 벗은 적이 없다.





유년시절 엄마로부터 필요한 만큼의 애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또 아직은 소개되지 않은 옛 상처 때문에 프랭크는 혼자가 딱 좋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까지 LP판만 고집하고, 자기 자신을 보호한답시고 일사에게 상처만 주는 프랭크가 너무 답답하고 미련해보이지만, 내게 프랭크를 흉볼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실은 나도, 분기점 앞에 서서 너무 두려워서 지금 있는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도 힘들어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전혀 모르는 유형의 사람이어서―다른 사람들이라고 내가 "아는" 유형의 사람은 아니건만, 이 사람은 내 마음 너무 가까이에 들어와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그리고 나랑은 너무 다른 것 같아서, 현재의 나 자신에게 자신이 없어서 등등의 이유로.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프랭크가 두려워하는 이유와 똑같다. 사랑의 생로병사를 다시 반복할 자신이 없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사람과 함께 한다면, 견딜 수 없을 것만 같다. "추락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펼쳐지는 진정한 삶을 적극적으로 외면하는 그런 사람이고 싶지는 않은데. 이런 나를 위해 앤소니 신부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랑이란 많은 위험과 고난이 도사리고 있는 여정이지. 때로 사랑의 여정은 원하는 곳이 아닌 길에서 끝날 수도 있어.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있었던 시간이 허망하게 멀어져가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비한 시간보다는 훨씬 가치 있는 거야.





프랭크가 어려운 음반 가게의 경영난을 잘 극복할 수 있을지, LP판에 대한 고집을 멈추고 CD를 들여놓을지, 현재의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서 일사와 마침내 행복해질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멋진 음악이 소개될지 영 궁금하다. 사랑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혹은 늘 듣던 음악만 듣는 것이 지겨워진 이들에게, 음악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건너가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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