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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Aug 19. 2021

영영 부치지 않을 편지


이제 조금도 그립지도 궁금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한동안 생각을 잠시라도 떨치기가 어려웠는데,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맞았어요. 딱 한번이라도 어떻게 마주치고 싶었는데, 정말 그거 하나면 괜찮다고 생각했다가도, 전하지 못한 말과 마음이 많아서 혼자 시름시름 앓았었거든요. 그런데 그 마음이 흔적도 없이 흘러가버렸다는 게 서운하고 허전하기도 하고 그래요. 예전에는 정말 끝이 안 보일 것 같은, 내 생이 다할 때까지 변치않을 것 같은 애정도 이제, 언젠가 지나가버릴 감정이라는 걸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어요. 지금도 믿기 어려울 때가 있지만.




일부러 모른 체하고 선을 그은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때의 저는 살기 위해서 아무도 넘어오지 못할 공간이 꼭 필요했으니까. 마음을 알게 된 건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난 다음이에요. 언제나처럼 저를 보는 그 눈이 어느날 꿈에 나왔거든요.




눈치 챘겠지만, 조금 내려놓고 홀가분해지려고 쓰는 편지이고, 끝까지 저만 생각하는 것도 맞아요. 실은, 이전과 정반대인 상황, 관계에 놓여있어요. 다 처음이고 서툴 게 분명한 저를 보던 눈도 딱 지금 저와 같았을까, 생각해요. 미숙하든, 뭘 잘못했든 그걸로 상처만 받지 않았으면, 하고 응원하는 마음. 마음이 너무 커져서 혼자 감당하기가 어렵고, 몸까지 아팠어요. 그래서 분리수거라도 좀 하고 싶다고 생각을 했다가, 사랑니 뽑듯 아예 뿌리채 도려낼 생각도 하고 있어요. 변한 게 하나도 없다고요?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아직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것저것 계산하고 무게를 달지도 않고, 다칠 것도 염려되지 않을 정도의 인연, 그 정도의 마음은 아닌 모양이라고. 그래서 흘러가게 둘 생각이라고.




만나게 되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저는 사는 게 너무 숨이 차고 버거웠거든요. 그럴 때는 자기 자신조차,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 멀어지기 마련이잖아요. 끝도 없이 파고 들어가는 우울에는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니까. 그런데 그런 저조차 가장 좋게만 봐주었던 마음을 제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모든 생명은 관찰자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들었어요. 제가 계속 살 수 있었던 건 그 시선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목숨을 빚진 거라고. 그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원래는 행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선하고 밝은 사람이니 언제나 행복할 거라고 믿어요.



만나지 않아도 전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너무 힘들지 않게, 제가 틈틈히 이 멀리서 힘을 실어 보낼게요. 이건 아주 옅고 꼬리는 길어서 영영 변치 않을 딱 그 정도의 마음이에요.



한번도 표현한 적 없고 앞으로도 영영 그럴테지만, 여전히 고맙고 미안하고, 너무너무 좋아했어요. 그 지옥 속에서 계속 버티고 싶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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