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은 Aug 17. 2021

가을의 발소리가 들려


<야생의 위로>를 읽고, 계절이 바뀌기 전 보내오는 신호를 나도 미리 알아채고 싶었다. 날마다 공원 산책을 하니 이제는 어렵지 않게 가을의 발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예전에는 너무 더워서 되도록 아침 일찍 기상 후 준비해서 나가야 했다면, 이제는 팔에 와닿는 썰렁하기까지 하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 얇은 잠바 하나를 걸쳤었는데 이제 다시 긴팔 외투가 필요해졌다.




여름이어도 꽃이 모두 지는 게 아니라는 걸, 오히려 푸른 잎사귀들이 창궐할 때 피어나는 꽃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강아지들은 제 주인을 신기하리만치 빼닮았다는 것도―이제는 이 일이 미스테리로 여겨지지 않는다. 닮은 영혼을 서로를 끌어들인다. 그들은 다른 세계에서 만났더라도 함께했을 것이다―, 우리 동네 공원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내가 이 새로운 영역으로 발 디딘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계절이 추워지면, 신입생일 때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본 후 캠퍼스에 돌아가며 맞던 찬바람이 생각난다. 왜 유독 그 때가 기억에 남을까, 동아리 친구들과 헤어지고 돌아가는 밤 길이 유독 쓸쓸했나, 홀로 남은 것 같았나. 아니면 그 순간 내가 완벽하리만치 행복던 걸까?




가을, 겨울을, 그 분위기와 그 속의 나를 애타게 그리워했으면서도 막상 가을이 성큼 다가올 것 같으니까 약간 겁이 났다. 나는 아직 가을을 만끽할 준비가 안 된 것 같고,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흘러버렸다는 것을 믿기가 어렵고. 마스크를 쓴 이후로 시간이 두 배속으로 가는 것 같다. 나는 아직 따라잡지 못했는데,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거든.




어제는 그렇게 보고 싶던 사람, 딱 한번이라도 좋으니 꿈속에 나타나달라고 바라고 또 바랐던 사람, 얼굴 한번 보기 힘들어서 야속하기까지 했던 사람이 꿈에 나왔다. 이제는 하나도 안 보고 싶어진지 오래고, 잘 지내든 말든 관심도 없어졌으니. 그리고, 매일 아주 잠깐이라도 보고 싶은 사람도 함께 꿈에 나왔다. 그리움의 계절, 가을이 곧이라도 올 건가봐. 벌써 꿈에서도 가을 냄새가 나잖아.

매거진의 이전글 감사로 일상을 가득 채우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