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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Aug 23. 2021

체중감량하는 마음


퇴사한 이후, 살이 엄청나게 쪘었다. 마지막 회사 다니는 몇 달 간에 원체 못 먹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때는 음식이 돌로 보이고, 위는 24시간 아프다 못해 자다가 너무 아파서 깬 적도 있었다. 먹으면 칼로 찌르는 듯 아픈데 어떻게 먹겠냐고, 자기 배를 찌르는 짓을 누가 하겠냐고 말하곤 했었다. 필시 위에 이상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믿고 내시경을 몇 번을 했는지. 나중에 알고 보니, 유독 한국인이 온갖 신체적 질병 검사를 다 한 이후에 정신과를 찾는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로 온다고 알고는 있었으나, 그리고 그것도 사실이지만, 요즘 몸이 너무 안 좋아서 휴가를 내면 씻은 듯 아무렇지 않은 걸 보면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내가 진작에 내 마음을 헤아려줬어야 했다. 너 지금 몸이 너무 아픈 거, 그거 마음이 아파서 그래, 신경쓰이는 게 있어서 그래, 하고 내가 알아줬어야 했는데.




살이 쪘던 건 그만큼 먹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잠을 영 못 이루기도 했다. 잠에 드는 것도, 그 잠을 지속시키는 것도 어려워서 새벽에 깨서 아침을 먹고 다시 자기도. 굉장히 불안정한 때에 나는 계속 먹었었다. 내 몸이 풍선마냥 정처없이 떠오를 것 같은 기묘한 기분이 있다. 뿌리를 내려야 할 것 같은 기분, 아무도 옆에 없는 내게 무언가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 먹는 행위는 통제 욕구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실은 괴로운 와중에 먹는 걸 멈출 수 없는 사람이 느끼는 건 내게 무엇보다도 내가 먹는 행위를, 내 몸과 의지를, 내 인생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절망이다. 참, 직장 다닐 즈음에는 팔도 다쳤어서, 열심히 하던 운동―내 인생의 유일한 버팀목이던― 마저도 할 수 없게 되면서 나는 더더욱 내 인생을 지탱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가족들, 회사 사람들로부터 살 찐 사람이라는 피드백을 수도 없이 들었다. 이제는 뼈가 안 잡힌다, 다이어트 할 생각 없냐, 집에 가서 또 라면 끓여 먹지 않냐, (장례식장에서) 여기서 제일 잘 먹는 사람이다, 등등.




내가 먹는 걸 좋아해서, 또 좋아하는 음식이 있어서 행복하게 먹고 살이 올랐다면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발목까지를 지옥에 담근 채로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거라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먹는 거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날 어떻게 할 수 없이 계속 먹는다는 걸 아무에게도 밝힐 수가 없었다. 내 감정으로부터 스스로 도망치기 위해서, 내 수치로부터 내 눈을 가리기 위해서 먹는건데, 이제는 먹는다는 것 자체가 내 가장 큰 수치가 된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동안 명상을 배우고, 코로나19 확산 전이기도 하니 회사 밖 모임도 꾸준히 가지고, 책을 읽고, 운동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하고, 일기를 쓰는 등 살기 위해서 아등바등 노력을 했다. 정말, 발버둥을 쳤다.




이제는 새벽에 깨긴 하지만 다시 잠이 드는데 예전만큼의 어려움이 없다. 적어도 5시는 넘어야 완전한 기상을 한다. 배부를 때 멈출 수 있고, 내 일상을 지탱하는 건 이제 걷잡을 수 없이 배가 불러서 아픈 위가 아닌, 격일마다 하는 달리기, 그리고 보강운동이다. 꾸준히 일상을 기록하고, 이따금씩 소설을 쓰고, 다른 무엇도 아닌 오로지 내 즐거움을 위하여 피아노 연습을 하고, 다시 소설을 읽고,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려고 노력하고. 나는 내 삶을 되찾아가고 있다. 삶을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살고 싶어서.




어렸을 때, 그러니까 10대에서 20대 초반까지는 정말 혹독한 다이어트를 했었다. 두유만 먹는다거나, 하루에 사과 한 알 바나나 한 개를 먹는다거나. 이제는 그때의 트라우마로 그렇게 배고픈 끼니를 뗴우지도 못할 뿐더러, 내 체중이 내 삶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친다고 믿지 않기 때문에 세 끼 다 건강하게 잘 챙겨먹는다. 내 몸이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내 몸을 쓸 수 있는지, 내가 내 몸을 어떻게 느끼는지에 초점을 둔 채 조금씩 살이 빠지고 있다. 뺀다기보다는, 빠지는 것. 내가 가장 편한 몸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앉을 때나 설 때의 자세가 훨씬 바르게 되고, 예전처럼 몸이 무겁지 않아서 움직이는 게 훨씬 가뿐하니 활동에 무리가 없다. 운동이 끝난 후의 보람, 배 부르게가 아니라 적당히 먹은 후의 만족감. 지금의 이 즐거움을 잊고 싶지 않아서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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