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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Sep 25. 2021

이지은 작가 개인전 <My Nyepi Day> 후기

"하루를, 나는 내게 주고 싶다. 언제가 되었든 그날은 나만의 녜피데이, 나만의 고요하고 성대한 축제, 나를 고마워하고 애틋하게 여겨도 괜찮은 하루다. 괜찮다. 괜찮을 것이다."

― 이지은 작가, <My Nyepi Day> 개인전



 언제나처럼 공원에 아침 운동을 다녀온 후에, 내가 엄청나게 피곤하고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덕분에 오전 일정은 모두 취소하고 내내 낮잠을 자야만 했다. 그와중에 오늘 안에 꼭 보고 싶었던 전시회가 2개 있었으므로, 그중 하나, 아줄레주 갤러리에서 오늘부터 오픈하는 이지은 작가의 개인전 <My Nyepi Day>를 보러 오후에 잠시 바람을 쐴 겸 다녀왔다. 





 코로나19가 시작된 2019년 여름에 가려고 마음에 장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발리는 영영 먼 꿈이 되어버린 것 같다. 끈 떨어진 연이 되어 이제는 눈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멀리 날아가버린 내 발리를 그리며 조용히 속상해하고 있던 내게 이 전시회는 비행기를 타고 멀리 나아가지 않아도 내가 찾던 평화는 내 안에 있다고 속삭여주는 듯했다. 내가 짙은 초록빛과 무성하고 빽빽한 자연, 그 속에서 흐르는 계곡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맞아, 난 늘 이런 것을 찾고 있었지.





 이번 여름, 계곡에도 산에도 갈 수 있는 기회를 모두 마다한 것은 방역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고요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나만의 초록이 필요했다. 그리고 <My Nyepi Day>의 그림들은 내가 늘 그리워하고 되찾고 싶은 초록을 되돌려주었다. 녜피 데이는 무엇일까, 이번 전시회에서 알게 된 녜피 데이는 발리에서 침묵의 날로, 사람들이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그들의 하루를 자연에게 내어주는 날이라고 한다. 사람과 자연은 둘이 아니므로 곧 하루를 자기자신에게 온전히 바치는 가장 숭고한 날이 녜피 데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이지은 작가의 이상향에 사람이 있어 좋았다. 이지은 작가의 녜피 데이에는 평화 속에 안식하는 사람이 요가하는 고양이, 선물을 든 강아지, 먼 길을 돌아 별이 되어 다시 내게로 돌아온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 평화는 멀리 있지 않고, 오로지 느슨하게 힘을 뺄 수 있는 내 마음에 달려있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늘 어떤 의식을 필요로 한다. 마치 발리의 녜피데이 같은 그런 의식을.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쉬는 날이라고 땅땅 못 박아야만 쉴 수 있게 된 우리에게는 일 년에 하루보다 더 많은 이완과 휴식이 필요하다. 내 삶에 숨을 되찾아 올 수 있도록.





 이번 추석 연휴가 내게는 꼭 그런 녜피데이였다. 홀로 있을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손을 열어놓고 가만히 흘려보내는 하루가 계속되어 행복했다. 명상같은 하루, 맨발로, 오직 자연과 함께, 자연스럽게 나로서 고요한 하루들.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순간만이 진정한 나의 힘이 된다.





 <My Nyepi Day>가 특히 좋았던 것은, 나는 나의 녜페데이를 이렇게 세세하게 그려본 적이 있는가 반성할 수 있었다는 것. 나의 녜피데이에는 이제 내가 너무 좋아한 나머지 내 평화 속에도 끌어들이고 싶은 네가, 그리고 물에 닿을 듯 말듯 산들산들 흔들리는 버드나무가, 내가 태어난 이후로 늘 내 마음에 자리하는 바다가, 평생가도 다 못 읽을 것 같이 아주 많은 책들이,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들이 있다. 그중에 가장 소중하고 꼭 필요한 게 나와 함께 있는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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