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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Oct 03. 2021

쓰고 싶지만 손 끝에 망설임이 묻은 그대에게 추천

<쓰는 기분>, 박연준 시인 저

 사랑한다는 것은 순진함이요,
 모든 순진함은 생각하지 않는 것……


  ― 페르난두 페소아,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쓰는 기분>은 단박에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쓰는 것에 대해 늘 생각하는 내게 지나치지 못할 책이었고, 읽다보니 중도에 멈추기는 더 어려운 책이었다. 박연준 시인은 '쓰는 기분'을 독자와 나누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나도 그의 '쓰는 기분'이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쓰는 기분>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연보랏빛 표지에 유순한 양 힘과 열정을 숨기고 있는 이 책은, 쓰고 싶지만 억눌러왔던 당신의 마음을 휘저어 놓을 것이다. 켜켜이 먼지 쌓인 진심을 모두 토해내도 괜찮다고 격려할 것이다. 아무 소용 없는, 이 '쓰는' 일은 곧 인생을 갑으로 사는 것이며, 매일 새로운 우주를 발견하는 것이고, 당신의 언어를 되찾는 일임을 알게 되므로, 당신은 더욱 쓰고 싶어질 것이다. 





 또한, <쓰는 기분>은 시와 친해지는 법을 알려줄 것이다. 시는 음악과 그림처럼 감각하는 것이며, 일상의 언어와 다르게 쓰이는 것이므로 머리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소리내어 읽어보라고 시인은 말한다. 책을 읽는 동안 시는 당신의 방심한 마음 한 켠에 스며들 것이다. 어느 순간, 당신은 인정하게 된다. 시와 사랑에 빠졌다고, 이제 시는 당신 삶의 일부가 되었다고. 시집 코너를 서성이다가 여러 권 펼쳐보았다가,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어서 낙심한 채 역시 나는 시와 안 맞다고 발길을 끊은 사람이라도, 어쩌면 시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와 눈 마주쳤던 순간, 시간이 멈추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 그 순간, 그러니까 말하자면 내 삶 속에도 시적인 순간들이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삶 속에서 시적인 순간들을 발견하는 것, 시를 쓰지 않아도 그런 순간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그 또한 시인이다.





 어떤 시들은 나를 휘몰아치는 그만의 세계로 깊숙히 끌고 들어간다. 그 깊이를 감당할 수가 없을 때, 혹은 그의 세계가 그가 사는 동안 쌓아올린 고통으로 가득한 것을 발견할 때, 혹은 사회적 가면을 쓴 사람과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시기에 타인의 적나라한 내면을 맞닦뜨릴 때 나는 당황하고 압도되어 멀리 도망간다. 그럴 때는 남이 쓴 시를 읽는 거시 괴롭다. 나도 나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운데, 다른 사람이 눌러 쓴 삶의 무게를 어떻게 마주하겠는가. 그러나 '고양이의 눈빛에 기대'어 밤새 글을 끄적이고 싶은 때, 혹은 그래야만 살 것 같은 시기에는 오히려 시가 나를 찾아온다. 조용한 목소리로 부른다. 우리 둘만 함께 있자고.





 박연준 시인은 <쓰는 기분>에서 시는 누구나 쓸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책을 다 읽은 후에 그가 시인으로 태어났음을 알게 되었다. 그가 끝없이 기울인 노력, 시를 순진하게 사랑해온 세월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 다른 사람을 보는 시선, 삶을 사랑하는 태도, 그 모든 것이 시적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쓰는 것, 쓰는 기분, 쓰는 나 자신만이 아니라 시와 박연준 시인마저 사랑하게 되는 <쓰는 기분>을 가을의 초입에 만나게 되어 행복했다.





 읽는 내내 꽤 반성했는데, 내가 한동안 순수한 마음으로 쓰기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주 쉬운 길로만 가려고 했구나, 누울 자리를 보려고 재보고 있었구나 싶어서. 쓰는 것을 사랑해서 쓰고 싶다. 페소아의 문장을 빌려 시인이 말했듯이, "그걸 사랑해서, 그래서 사랑하는 것.", 이렇게 사랑하고 싶다. 내 이름으로 나온 책이 없어도, 독자가 없어도, 나는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무엇보다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그의 말이 있다. '자기 목소리를 자기답게 내는 것'. 나만의 목소리를 나답게 내는 것, 나도 이런 삶을 살고 싶다. 남의 귀에 맞추거나, 듣기 좋은 목소리를 내려고 하지 않고, 나의 높낮이와 톤, 억양을 그대로 살려서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건 그저 쉽게 나오는 게 아닐 테다. 무수히 많은 습작을 통해서, 나를 미워하고 밀어냈다가 사랑하는 하루가 모여서, 그래서 비로소 찾게 되는 나만의 목소리……





 필요한 것은 '말하고 싶은 욕구'다. 쓴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욕구의 대체 행동, 능동적인 말하기다. (생략) 그땐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누가(대체로 편집자가) 내 방문 앞에서 문을 두드리며 기다리고 있다고 상상한다.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고, 조르고, 조른다고 상상한다. 그가 문 밖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눈을 맞으며, 비를 맞으며 앉아있다고 상상한다. '좋아, 정 그렇다면……' 나는 할 수 없이 시작한다. 상상! 이것은 내가 어릴 때부터 줄기차게 해온 운동이다. 영혼의 줄넘기랄까. 믿어야 한다. 당신이 내 이야기를 몹시 듣고 싶어 한다고, 내겐 중요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믿어야 한다.


― <쓰는 기분>, 박연준 시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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