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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Nov 03. 2021

가을날의 석파정, 그리고 샌드위치

내년을 기약하는 올해의 산책 기록

 그래서 이런 질문이 남는다. 우리의 사랑 이야기에 무엇이 빠져 있는가? 우리의 사랑에 무엇이 없어서는 안 되는가? 너를 위한 나의 변신이다. 나는 너를 위해 나를 바꿀 것이다!
 이 어려운 것을 해내는 것이 사랑의 놀라운 힘이다,

  ― <앞으로 올 사랑>, 정혜윤 저




 드디어 석파정을 갔다. 작년부터 올해 단풍이 최고조인 날에 가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실은 10월 어느 토요일에 가려다가 휴관이어서 석파정은 입장권만 받고, 미술관을 구경하고 나왔었다. 그때는 단풍이 초절정에 이를 때는 아니었어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었는데, 이제는 단풍이 너무 들다 못해 바닥에도 꽤 쌓여있었다. 하지만, 바스락바스락 낙엽을 밟는 것도, 떨어진 낙엽을 감상하는 것도 기쁜 일이다. 내년에는 더욱 제때 와야지. 낙엽이 너무 떨어지기 전에. 다른 사람과 함께 와서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었으면.



 


 처음 방문한 석파정은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인가, 감탄의 연속이었다. 둘러보는데 4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그동안 나는 버스를 15분 정도 탔다고 멀미가 가라앉지 않아서 꽤나 혼미한 정신상태로 여기저기 열심히도 구경다녔다. 이 각도로, 여기저기에서 보는 석파정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궁금해서. 혹여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이 있으면 너무나도 억울하지, 하는 심정으로.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 일행들을 이끌고 석파정에 대해 설명해주는 분, 바위 틈새에 동전을 끼워넣으며 소원을 비는 무리들―소원이 이뤄진다는 건 이만큼 힘든 거야, 라고 말하고 있었다―, 데이트하는 연인들 등.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하지만 주말에는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다.





 석파정은 11시부터 입장이라, 그전에는 서울공예박물관을 들렀었다. 예약을 미리 해야 하고, 10시에 예약한 나는 11시 20분까지 볼 수 있었는데 그 시간 안에 3개의 전시동을 모두 보는 것은 무리였다. 관람 안내해주시는 모든 분들이 너무나 친절하고, 전시도 알찼던 반면 오늘의 날씨는 너무 좋았고, 가을은 어느새 뒷모습을 보이고 총총 사라져가는데 어서 석파정으로 향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직 다 못 본 전시 1,2동을 뒤로 하고 석파정으로 향했던 것이었다.





 오늘 내 산책길을 함께한 것은 오디오 매거진 <조용한 생활>의 JTBC 뉴스룸 한민용 앵커 인터뷰, 그리고 요즘 특히나 빠져있는 정혜윤 작가의 책 <앞으로 올 사랑>이었다. 한민용 앵커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어른, 그러니까 나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고 프로페셔널한 그런 사람인데, 그가 했던 직업적인 고민들, 그가 겪었던 역경들 같은 것을 듣자니 신기하기도 하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이정표로 남는 직장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나는 꽤 사람보는 눈이 있지, 나이는 나보다 서른살 정도 많지만 순둥이인 우리 엄마아빠보다야, 라고 자신했던 내가, 엄마가 그런 사람이랑 살 거라면 평생 혼자 사는 게 낫다, 넌 그 사람이랑 안 된 것에 대하여 평생 감사해야 한다, 고까지 말한 사람에게 빠져서 허우적대다가 올해가 거의 다 갔다, 고 말하면 조금 과장이고 어쨌든 올해의 반 정도는 홀라당 갔다. 그래서 요즘은 휴일이면 내 마음 정리를 하느라, 또 가을도 만끽할 겸 이곳 저곳을 쏘다니고 있다. 길다면 길게 끌었고, 짧다면 정말 짧은 시간 동안 마음 고생도 꽤나 했는데, 이렇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고 이제야 정신을 차린 건데, 아직도 마음이 쓰리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지 내가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어땠을지 자꾸만 생각한다. 그중 가장 안 좋은 것은 내가 '충분하지 않아서'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아닐까 자꾸 나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게 된다는 것. 내가 부족한 것은 아닐까, 내가 그 사람 눈에 차지 않아서…





 그래도 휴가 하루의 가치는 크다. 휴가를 하루 쓸 때마다 마음이 아주 많이 평온해지고 있다. 가지고 다니며 틈틈히 읽는 마음의 양식, 푸르고 높은 가을 하늘, 단풍은 반짝이고, 주말에는 웨이팅이 심해서 엄두가 안 나는 카페에 가서 먹고 싶던 샌드위치를 먹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결국은 가장 좋은 길로 걷게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모든 것이 내게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시간이 잘 맞지 않은 데다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와서 빨래도 개고 글도 쓰고 마음도 쉬게 하고 싶어서 영화 <아네트>를 보지 못했다. 다음주 안에는 꼭 볼 수 있기를. 연차는 많이 남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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