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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l 14. 2020

어렸던 나날들에 대한 달콤쌉쌀한 회상

<잠옷을 입으렴>을 읽고

한 때 내 것이었다가 나를 떠난 것도 있고, 내가 버리고 외면한 것도, 한 번도 내 것이 아니었던 것도 있다. 다만 한때 몹시 아름다웠던 것들을 나는 기억한다. 그것들은 지금 어디로 달아나서 금빛 먼처럼 카를거리며 웃고 있을까. 무엇이 그 아름다운 시절을 데려갔는지 알 수가 없다.





  오랫동안 야금야금 야껴 읽던 이도우 작가님의 <잠옷을 입으렴>을 어제야 다 읽었다. 참 내 마음 같은 책이어서 아껴 읽은 것도 있거니와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에 사무쳐서 한 구절씩 꼭꼭 소화시켜가며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다행스럽게도 책의 만듦새가 이렇게 저렇게 엎어놓기 좋았다. 이도우 작가님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와는 조금 다른 느낌, 내게는 훨씬 공감할 수 있었던 여자아이들의 이야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잠옷을 입으렴>을 이도우 작가님의 저서 중 최고로 꼽아서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은 지금은 나도 이 책이 가장 좋다, 어쩌면 근래에 읽은 것 중 가장 내 마음을 건드린 책이다.


 



 작가님 책을 읽으면 늘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 사람은 참 마음이 연부두 같겠다, 감성이 깊고 여려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홀로 눈물 짓겠구나, 싶다. 그래서 어떤 문장도 쉽게 지나치기가 어렵다. 모든 진심으로 꼭꼭 눌러썼을 것만 같아서.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온전히 둘녕이에게 이입했다. 과거에도 지금도 나는 둘녕이와 닮아있기 떄문이다. 너무 닮아있어서 한 점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본 둘녕이는 서툴어도 마음이 모난 곳 없이 말랑말랑한 아이, 그래서 세상 서러울 일도 마음 다칠 일도 많은 아이, 걸음걸음마다 발이 다치지 않게 내 손으로 가만 감싸쥐어주고 싶은 아이. 그래서 수안이에게 공감하며 읽은 사람들과 이야기나누고 싶다. 수안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저에게는 다소 차갑고 쌀쌀맞은 구석이 있는 아이처럼 느껴졌어요, 하고도 묻고 싶다. 수안이와 둘녕이가 억지로 맞잡았던 손을 수안이가 툭 놓아버렸을 때, 홀러 멀리멀리 사라져버렸을 때, 작은 순간마다 나는 조금씩 마음에 생채기가 났었다. 수안이와 둘녕이는 서로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을까.






 내가 둘녕이에게 이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수안이와 같은 친구를 두었었기 때문이다. 이름도, 성격도 수안이와 닮았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그 아이의 나에 대한 마음이 훨씬 더 컸던 것 같다. 우리는 서로 너무 달라서, 어쩌면 네가 다른 나라로 먼저 떠나버렸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관계를 회복할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우리는 친구라기보다는 어딘가 쌍둥이보다, 자매보다도 더 서로 이어져있던 것만 같다. 두 개의 다른 몸과 성격과 생김새를 가진 하나의 사람 같달까. 서로 그렇게 다르기 때문에 함께 있을 때에서야 완성이 된달까. 그 어린 시절에는 그저 친한 친구도 아닌 단짝 내지는 베프와 꼭 그런 마음이었다. 떨어져지내는 일을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그 때. <잠옷을 입으렴>은 그래서 이도우 작가님 소설 중 가장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 시절의 우정은 사랑이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것 같다. 네가 곧 나의 일부고, 어쩌면 나 자신보다 더 큰 무엇이니까. 





 아주 어렸을 때 친구와 멀어지는 것은 우리가 점점 머리가 커져가며 서로 달라져서가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비로소 확인하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꼭 붙어있었던 우리가 각자 숨 쉴 수 있을만한 거리를 비로소 확보하는데 그 과정이 왜 그렇게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걸까. 자연스러운 성장과정이 우리를 너무 크게 상처입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린 둘녕이의 삶은 녹록치가 않다. 그런데 읽는 내내 자꾸만 마음이 푹 찐 찹쌀떡마냥 말랑말랑 녹고 만다. 자꾸 달콤하게, 그립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때 우리에겐 수안이와 같은 친구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든든한 관계가 나를 더 아프지 않게 보호해주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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