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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Aug 24. 2020

 HBO 드라마 <올리브 키터리지>를 보고

우리의 인생과 나이듦에 대하여

 믿을만한 사람들의 강력한 추천으로 보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쓴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가 원작이며, 1시간짜리 에피소드 4개로 구성되어 있어 한가한 주말이라면 가뿐하게(!) 끝낼 수 있다. 나는 원작 소설을 읽지는 않았고, 몇 해 전 김영하 작가님의 팟캐스트를 통해서 잠깐 접해봤을 뿐이었다. 아직 안 들으신 분이 있다면 숙면을 불러오는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을 들어보시길 추천한다.





 왓챠피디아를 통해서 평가한 내 별점은 5점 만점에 4점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특히 왓챠 이용쟈들에게는) 추천하고 싶기 때문에 무엇이 그렇게 좋았는지에 대하여 기록을 남긴다.





  나는 이 작품이 충분히 복잡해서 좋았다.

  첫 에피소드를 보는 내내 나는 계속 화가 났다. 남편인 헨리 키터리지는 젊은 약국 직원에게 홀딱 빠져서 가정을 소홀히 하고 있었고, 주인공인 올리브는 아주 고약한 언행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경멸하도록 만들고 있었으며, 그의 아들인 크리스토퍼는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 건강한 관계라고는 눈에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분명 닮고 싶은 삶의 모습도, 어린이에게 교본으로 보여줄만한 세계도 아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고 계속 보고 있자니, 이 인물들이 나와 내 주변 사람들과 무척 닮아있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그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도. 그러자 미워하기가 몹시 어려웠다. 내 인생을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어도 이 인물들보다 더 호감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할 것임을 인정해야 했으니까.




 인간은 복잡하고 그래서 더욱 경이로운 존재이므로 이런 인간을 제대로 담아내려면 작품 역시 충분히 복잡해야 한다고 믿는다. 아름다운 것만 쏙쏙 뽑아서 평평한 인물을 만들기는 쉽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인물이 가진 모든 결함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그를 이해하고 사랑하도록 만든다.





 이 작품이 좋았던 또 한 가지 이유란,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 때문이다. 

 모든 독자와 시청자가 가슴에 그린 작품의 주제는 저마다 달랐겠지만, 내게 이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삶을 붙잡아야만 하는 이유"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나는 십대 때까지는 수능 이후의 내 인생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그려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더욱 특별했다. 올리브 키터리지 인생의 25년이 드라마가 전개되는 4시간 안에 순식간에 흘러가버린다. 한때 사랑의 도피까지 꿈꿀 정도로 젊고 열정에 차있던 올리브 키터리지는 어느새 나이가 아주 많이 들어서 배우자도 떠나보낸 후, 아침에 눈떠야만 하는 이유는 오직 늙고 착한 개뿐이라고 말하는 날이 온다. 올리브 키터리지를 매우 닮은 할아버지를 만나서 심장박동을 확인하며 서로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날이.




 


 이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관계, 그리고 들꽃과 같은 일상에서 작은 기쁨을 찾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부부와 관계, 나이듦, 그리고 부모와 자식에 대하여 말하는 드라마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오프닝 씬이었다. 흐르는 음악과 어울리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을 언제까지나 보고 싶었다.





 나는 책을 안 읽은 채로 이 드라마를 봤고, 이 자체로도 충분히 잘 만들어졌으며 완결성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원작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을 위해 제작된 드라마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만약에 이미 소설을 읽었다면, 결코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이 드라마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처럼 소설을 읽은 적 없고 읽을 생각도 없는 당신께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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