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없다.

혈액투석준비

by 칠오이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진 J였지만,

투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주 많이 힘들어했다.

첫째로는 신세한탄을 끊임없이 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난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20대 초반에 군입대 검사를 통해 알게 된 그때 좀 더 관리를 잘할걸..

지난 8년의 세월을 끝없이 후회했다.


신장기능이 20% 미만 남았다는 처음 만난 1년 반전부터

우리는 J의 투석을 최대한 미뤄보기 위해 다 같이 참 많은 노력을 했다.

신장환자식 식단을 혼자 하기 힘들까 봐 가게 전체에서 같은 음식을 먹기도 했고,

마감 후 다 같이 동네 하천을 따라 7km씩 걷고 뛰기도 8개월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인한 장기 신장은 좋아지지 않았고,

회복은커녕 점차 악화되어 8%의 기능이 남았다.


주치의 선생님은 의사로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했고,

J의 몸은 시한폭탄의 상태로서 어디서 어떻게 문제가 일어날지 모른다고 했다.

오히려 카테터를 주입해 응급투석을 하면 더 위험하고 괴로울 수 있으니 투석을 준비하자고 하셨다.

( 당시 상황도 사실 응급이라고 하셨다. )

그렇게 J는 선생님이 소개해주신 옆동네 혈관병원에 가서 혈관투석에 필수인 ' 동정맥루 ' 수술을 했다.

동정맥루 수술을 하고 바로 혈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투석으로 인해 빠른 혈류양을 견딜 수 있게 자리를 잡으려면 최소 6개월은 걸린다고 했다.

그때까지 8% 남은 J의 신장과 몸이 과연 버틸 수 있을까..


J의 정신적인 멘탈의 붕괴가 극에 달했다.

컨디션도 최악이었겠지만,

거기다 J 표현 ' 맛대가리 ' 없는 투석환자 식단..

점점 무거워지는 몸과 투석을 앞뒀다는 절망감.

혈관이 자리잡지 못해서 카테터를 꼽아야 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왜 투석을 빨리 시작 못하게 했냐는 나를 향한 원망.


살고 싶어 졌다고 했던 J는 다시 말했다.

' 이렇게 먹느니 차라리 굶어 죽는 게 낫겠어요.'

화가 났다. 모두가 저를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걱정하고 있는데..

' J야. 너 그렇게 말하지 마라. 오늘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서 피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네가 지금 그 딴 소리를 지껄여? '

' 내가 아니면 지금 내 마음 아무도 모르니까, 상관하지 마세요! '

...

서로 날이 선 말을 주고받기를 몇 날 며칠..

돌이켜 보면 그 2-3달이 우리가 함께한 시간 중에 가장 우울했던 시간들이었다.

J는 어떤 희망적인 말로도 올라오지 못할

저 밑 지하 300층 원망과 절망. 우울 속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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