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탄을 싣고 다녔던 소년

두 얼굴의 J

by 칠오이

신장 기능이 20% 남아있는 J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단 두 가지었다.

투석이냐 이식이냐,

투석을 선택한 J에게 다음 선택지 역시 두 개.

복막투석이냐 혈액투석이냐..

투석을 시작하기 앞서 J는 처절하게 무너졌다. 절망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그때마다 나는 대책 없는 약속들을 해댔다.

" J야, 사람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지거든. 그게 참 신기하다? "

" J야, 아침마다 물을 한잔 마시면서 니 몸의 나쁜 게 다 씻겨간다 생각하고 마셔봐."

" J야, 옛날 말들 다 꼰대소리 같지? 난 안 믿었는데 내 나이 되어 보면 너도 느낄 거야.

근데 지금부터 그렇게 해봐, 그럼 넌 내 나이가 되었을 때 나보다 더 멋진 어른이 되어있을 듯. "

투석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난 20대 후반의 남자가, 무너지는 과정에 대해 쓰고자 한다.


앞서 내가 써왔던 J, 그리고 그때까지 내가 느껴온 J는 정. 신. 건강한 젊은 청년.

이 지역은 좁디좁은 지방의 소도시라, 곳곳에서 아는 사람들을 꽤 많이 마주칠 수 있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가게로 J를 찾아왔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 예전에 일했던 가게의 사장님,

특목고 진학반 학원선생님을 비롯해 많은 형, 동생, 누나들..

친구들 사이에서는 J가 대장이었다.

그렇다고 학창 시절 일진이나 불량한 학생은 아니었다.

고 3 때는 학생회 선도지부로 활동해서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의 중개역할을 꽤 잘한 모양이었다.

학창 시절 자기 학급은 왕따 당하는 친구가 없었고,

오히려 선생님께 대드는 애는 친구들끼리 멀리했다는 일화만 보아도

J의 성격은 내가 느끼고 봐온 모습과 상통했다.



강강약약이 철저한,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손 내밀고, 용기와 정의가 있고 의리 있는 인기쟁이,

눈치 빠른 여우, 예의 바르고, 센스 있게 일하고 말하는 귀염둥이.

화가 나면 완전히 돌아버렸지만,
좋은 사람에게 한없이 친절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는 똑똑한 요즘 아이. 나에게 J는 그랬다.


당시 J는 출근길에 오토바이와 일명 구루마라고 불리던 아주 오래되고 낡은 중고차 한 대가 있었는데,

어느 날이었다.

" 사장님, 별 보러 가실래요? "

주간 별자리 운세를 오랫동안 신뢰하며 봐온 나에게 별을 보러 가자는 말은 매우 구미 돋았다.


" J, 이런 곳은 어떻게 다 알고 있어? "

J가 별을 보자고 데려간 곳은 도시에서 10-15분 정도 벗어난 근교지만,

주변에 아무것도 없이 아주 깜깜한 곳들이라 별이 쏟아질 듯 보였다.

" 저 사실, 살고 싶지 않아서 죽을 자리 찾아다닌 곳들이에요. "

이후 J가 짧은 시간 담담히 뱉어낸 몇 마디의 말들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여유 없는 집, 그렇다고 건강하지도 못한 몸.. 20대 후반에 시작해야 될 투석..

투석에 관한 인터넷의 정보는 너무나 부정적인 글들 뿐..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은 주변 모든 환경들,

J는 차에 번개탄을 싣고 다니며, 차라리 삶을 끝내자 했었고,

한적하고 어두운 곳을 찾다 보니, 늘 거기에는 별들이 많아서 혼자 가만히 별을 보다 발걸음을 돌렸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한 곳 두 곳, 별이 많은 장소들을 알게 되었고 그곳 너무나 아름다운 장소들이다.

나에게는 아름다운 곳이, J에게는 아픈 곳이었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아니 슬펐다.


늘 밝고 정신 건강해 보엿던 J가 사실은 죽으려고 했었다니..

J, 너의 힘든 마음에 어떤 내 말이 위로가 될까.. 솔직히 무슨 말도 위로되지 않을 거 같아서

난 J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하지 못했고, 하고 싶지 않았다.

내 몇 마디 말로 한 사람의 인생을 위로했다는 오만방자한 우월감을 느끼기 싫었다.

그 뒤 이어진 J의 말이 뜻밖에도 오히려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 그런데 사장님, 저 이제 오래 살고 싶어 졌어요."


" J. 그래 살아보자. 살자. 살다 보면 살아져! 내가 무조건 잘 살 수 있게 도와줄게!! "

겨울이었다. 쏟아지는 별들 아래, 남쪽으로 흐르는 강의 끝자락에서.

J는 나에게 이제는 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

난 이날 죽음 앞에 서 있던 한 사람에게 비록, 멋들어진 위로는 건네진 못했다.

하지만, 위로대신 대책 없는 약속을 했고, 그 바보 같은 약속이 그를 절망에서 희망으로 당겼다고 확신한다.

3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매우 즐겁게 살고 있음이 그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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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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