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도 성적도 재능도 어느 하나 눈에 띄는 것 없던 아이는 자라서 내가 되었다.
평균, 아니 어쩌면 평균 이하로 누군가를 받쳐주는 존재라고 불렸다. 무언가를 잘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잘해야 하는 이유가 없었기에 개의치 않았다. 가끔 제주도로 대학가라는(남들 서울로 올라갈 때 반대로 아래쪽을 노려보라는) 농담 섞인 엄마의 말에 심통 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안일한 마음이 있었는지 모른다. 대학도 취업도 자신 없던 나는 친구들처럼 빠르게 진로를 선택하지 못했다. 다들 가야 할 길을 아는데 나만 그 자리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모르는 채 대학을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당장 취업을 해서 사회로 나갈 용기는 없었다.
나에게는 스무 살이라는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 것처럼 눈앞만 보며 살았을 뿐이다. 그런 나에게도 수능이 왔다 가더니 어느덧 졸업을 앞둔 예비 백수가 되어있었다. 폭풍처럼 지나간 시험을 보내고 정신 차리기도 전에 연말이 다가왔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밤, 자정을 알리는 카운트다운 소리와 함께 새해가 왔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앉아있던 카페에서 술집으로 썰물처럼 쏟아져나가던 그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렇게 나는 얼렁뚱땅 성인이 되었다.
허무하게 20대의 첫 발을 내딛고 어찌어찌 대학을 갔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 것은 모르겠지만 나의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차선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잘하는 것 없는 내가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대학을 선택해야 했다. 웃기게도 내가 어디를 가고 싶은지 알게 된 것은 대학생 때였다.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새로운 길을 택했다.
누구에게나 '오늘'은 처음이라고 하지만 20대의 첫걸음은 서툴고 엉망이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도 여전히 어설픈 걸음을 걷고 있지만 어제보단 단단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을지 모른다.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는 것처럼, 특별할 것 없고 서툰 이 글도 누군가의 작은 희망이 되어줄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언젠가 나도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받았던 응원을 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서로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당신의 안녕을 바라는 내가 여기 있다.
우리가 딛고 있는 바닥과 나아가는 길이 평탄하지는 않더라도 좋은 날들이 조금 더 많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