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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Apr 22. 2022

남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사랑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스며든 당신에게 시선이 쏠리고 마음이 가는 건 노력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일부러 외우지 않아도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어깨를 다쳐서 왼쪽 팔로 가방을 메지 않는 것과 쉬는 날 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알고 있다. 일상 속에 문득 나타난 당신은 우산 없이 마주친 소나기 같아서 대처할 틈 없이 아주 젖어들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에 비해 나를 사랑한다는 건 모든 것을 마주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큰 사건으로 다가왔다. 이를테면 둥글게 말린 어깨, 넓은 얼굴, 도드라진 광대, 작달막한 키와 짧은 팔다리처럼 외적인 부분뿐 아니라 소리에 예민하고 사소한 일에 까다로운 성격과 타인에게 보일 수 없는 마음이나 생각까지 훤히 알면서도 애정을 갖기는 쉽지 않다. 나는 꽤 자주 스스로를 미워하고 싫어했다. 사실 '미워하다, 싫다'는 표현보단 증오했고 혐오했기에 사랑은 고사하고 마주 보는 것도 어려웠다.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나란 사람을 헐뜯고 갉아먹기 바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과 가진 것에 대한 비하로 차라리 내가 사라지길 바랐던 날이 있었다. 스스로 벼랑 끝으로 내몰면서 자기 연민과 혐오를 반복했다.

 

돌아보니 나는 타인이 주는 상처를 두려워하며 더 큰 아픔으로 방어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누군가에게 받을 평가가 무서워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다 못해 찢어 내렸다는 것이 참 이상하다.


아직 받지 않은 상처를 방어하기 위한 기제가 오히려 나에게 큰 흠집과 흉터를 남겼다. 이 말도 안 되는 고리를 끊어내기까지 몇 년이 걸렸음에도 돌아가지 않기 위해 여전히 노력이 필요하다.


 온전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누구나 부족한 면이 있다. 완벽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이유로 좋아하게 된다. 어떠한 이유로 좋고 싫음이 나뉜다면 설명할 수 없어도 사랑이 생겨난다.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에 있는 그대로 포용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긴다. 나를 사랑하는 일도 다를 것 없다. 단지 나라는 이유로 좋아할 수 있다. 모난 부분이 보여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꾸고 싶다면 조금씩 부드럽게 닦아 가면 된다. 조건을 바꿀 수 없다면 마음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마음과 생각이 달라지면 시선이 바뀌고 말과 행동에도 변화가 생긴다.     


타인을 미워하는 마음도 불편한데 나를 싫어한다면 매 순간이 지옥과 같은 삶이 계속된다. 왜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에 사로잡혀 괴로워야 할까. 이제 그만 나를 놓아주자.


내가 싫어하는 이도 누군가의 귀한 자녀이자 형제이며 사랑하는 존재다. 나도 부모님의 귀한 자녀이고, 동생에겐 형제이며, 사랑받는 존재임을 잊지 않길 바란다. 그 누구도 누군가를 판단할 권리가 없다. 그렇기에 스스로도 나를 판단할 수 없다. 어떤 이의 싫어하는 점은 다른 이가 좋아하는 부분이다.  


즐거움에 빛을 내는 눈동자와 쏟아지는 햇살보다 환한 웃음과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며 열정 쏟을 때 어떠한지 말이나 글로 담아내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순간을 알지 못한다. 4월의 풀꽃과 5월의 이파리를 보며 짓는 표정이나 더운 날의 작은 그늘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소매에 붙은 꽃잎 한 장에도 즐거워하는 모습을 본다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큰일이 아니다. 작은 표정과 몸짓 하나에도 스며들게 된다. 나를 사랑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어떤 일에 기뻐하고 슬퍼하는지 관찰해 보면 생각보다 간단하다. 다를 것 없는 일상 속에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면 서서히 스며들게 된다.


 지나가는 서점에서 눈에 띄는 책 한 권처럼 사소한 것도 좋고, 혼자 정리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도 좋다. 사랑하는 이를 기쁘게 하기 위해 했던 일을 나에게도 챙겨주길 바란다.


어쩌면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남을 사랑하는 법도 알 수 있는지 모른다. 내가 소중하고 귀하다는 사실을 알고서야 타인도 귀함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전에 나부터 온전히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면 조금 더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넓고 깊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서툴게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여전히 서툴고 부족하지만 나를 있는 그대로 마주할 용기가 조금은 생겼다.


좋아하는 이에게 마음이 가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궁금해하며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나에게 마음을 두고 작은 것부터 하나씩 알아간다면 서서히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떨 때 빛을 내는지 알아가는 일이다.


사랑하자. 더 많은 것을 품고 빛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사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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