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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Mar 25. 2022

울음을 삼긴 목안은 따끈합니다.

 주변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쯤, 감정을 절제하는 법을 배웠다. 표정으로 드러나는 기분을 감추는 것이 어렵지만 상대에게 나의 마음을 다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얼굴로 보이는 나의 감정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적당히 속아 넘어가 주었다. 진실보다 감정이 앞서 본질이 왜곡되지 않도록 목안을 타고 올라오는 열기를 꾹꾹 눌어낸다. 타인에게 솔직한 나를 보이는 것이 싫어서 손톱을 세워 눈물을 집어삼켰다. 그럴 때마다 목안에 들어와 있는 뜨거운 덩어리가 불쾌하다. 그 열기를 묵직하게 삼키면 목젖을 누르며 목구멍을 타고 내려와 명치 윗부분에서 저릿하게 맴돈다. 목안으로 눌러온 눈물은 소화되어 내려오는 음식과 다르게 역류하여 왈칵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순간이 있다.


 어떤 이는 감정이 부풀어있는 풍선과 같다고 했다. 공기가 가득 찬 풍선은 물안으로 밀어 넣어도 자꾸 수면 위로 튀어 오른다. 억지로 삼켜내도 누르는 힘이 약해진 틈에 부력을 타고 올라오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풍선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예상했겠지만 해결하는 법은 단순하면서도 명확하다.

터뜨리는 것

간단한 해답에 머리를 뿅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다. 이내 '지금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하는 생각에 퍼뜩 정신이 돌아온다. 만화처럼 전구가 반짝하고 보이지는 않지만 기존의 가진 틀을 너머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느껴진 모든 것을 누르고 묻어봐도 있던 것이 없어지지 않는다. 모든 감정을 부정해 봐도 이내 마주해야 하는 때가 온다. 그때를 미루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당장 해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피하기만 한다면 어느새 눈덩이처럼 부풀어 오른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아쉽게도 여전히 눌러내고 있는 감정이 남아있다. 오랫동안 마주하지 못한 진실이다. 모든 것을 터뜨리고 나면 ‘내가 조각나서 남아있을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실은 알고 있지만 애써 모른 척 눈을 가리고 모르는 채 했다. 실은 답을 알면서도 해결할 힘과 용기가 부족하다.  


 시간이 지나서 해결되는 건 그때보다 조금 더 커진 내가 이겨내는 일이라고 했다. 나중을 믿고 미루는 동안 곪아가는 상처는 짙은 흉터를 남길뿐이다. 이제까지 견뎌온 나를 조금 용서해 줄 수 없을까.


아픔을 피해 숨차게 도망쳤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도착점 없는 트랙 위를 달리는 것과 같다. 직면하여 숨 막히게 아프더라도 충분히 앓고 나면 지나간다. 분명히, 반드시, 꼭, 결국엔 지나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아주 조금은 자라난 내가 남아있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보자. 삼켜온 감정을 뱉어 데인 곳을 살필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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