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 Mar 18. 2022

먹고 싶은 건 없는데 배는 고픕니다.

 밥을 잘 챙겨 먹자는 다짐도 며칠이면 흐려지고 적당히 타협하는 모습을 볼 때면 의지가 얼마나 가벼운지 알게 된다. 아플 때는 건강을 챙기자고 생각하지만 조금만 살만하면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기 십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 맞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하루에 한 끼는 밥을 먹으려 하지만 바쁜 일상 가운데 챙겨도 겨우 두 끼를 먹는 날이 허다하다. 그나마도 제대로 된 끼니보다는 도시락이나 식사대용품으로 때우고 저녁을 과하게 먹는 날이 많아진다. 비교적 식사시간이 확보된 저녁에도 집밥보다 배달이나 포장음식을 먹는 일이 대부분이다. 1인 가구가 늘어가는 가운데, 혼자 집밥을 해 먹는 비용을 생각하면 사 먹는 것과 별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장보기, 만들기, 치우기를 생각하면 시간을 단축시키고 맛이 보장되어있다는 점에서 조리된 음식 사 먹는 것을 충분히 납득할만하다.


어떤 음식이라도 잘 챙겨 먹고 건강을 챙기면 좋겠는데 지내다 보면 식사를 자꾸 거르게 되는 일이 생긴다. 바쁘면 일이 많아서 못 챙기고 쉴 때는 입맛이 없다며 적당히 때우고 지나가곤 한다. 특히 한 주를 바쁘게 보내고 쉴 때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다며 밀린 집안일은 물론이고 밥 챙기기도 귀찮을 때가 많다.


 그런 날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나를 움직여서 무언가를 먹여야 한다. 그때부터는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이다. 배가 고프더라도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오르지 않는다. 먹기 위해 살기도 하지만 살기 위해 먹는 날이 오기도 한다. 허기는 지지만 식욕이 없는 상황이다. '아무거나'라는 메뉴는 없지만 그럴 때는 정말 아무 거나 먹고 싶다. 차라리 적절한 영양분과 포만감을 주는 알약 같은 것이 생기길 기다리기도 한다.


 다양한 맛을 좋아하던 나는 이제 간편한 식사대용을 찾아 적당히 끼니를 때운다. 먹는 것이 전부가 아니게 된 지금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걸까' 생각해보곤 한다.


 돈을 벌면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것을 갖고, 즐거울 줄 알았으나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지금보다 가진 것이 없던 학생 때가 더 잘 챙겨 먹고 즐거웠던 것 같다. 적은 돈을 모아 친구들과 나눠먹던 음식이 더 맛있었다. 먹고 싶은 것이 자꾸만 사라지는 지금은 돈이 있어도 전보다 덜 먹게 된다. 아직 만족할 만큼 벌지 못해서 그런 걸까, 아직 부족하다면 더 많이 벌고 모으면 행복해질까?


사람의 욕심을 채우기보다 밑 빠진 그릇을 채우는 것이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많은 것을 부어도 채워지지 않고 오히려 갈증을 느낀다. 물질을 쌓을수록 마음이 가난해지는 게 의아하다. 돈이 많아도 세끼 이상을 먹는 일은 드물고 오히려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잦아지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목적 없이 하루를 보낼 수도 있지만 한 번쯤은 어떤 것을 위해 이렇게 살아가는 건지 돌아보면 좋겠다. 불행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까? 결국은 잘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일 텐데 식사하나 챙기지 못하면 행복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바쁠 때도 입맛이 없고 귀찮을 때도 식사는 거르지 않고 챙겨 먹자. 우리의 일상은 계속되어야 하고 그 안에서 건강은 무엇보다 소중하니까. 나와 타인에게 다정하고 친절할 수 있는 힘은 건강함에서 비롯된다. 먹고 싶지 않아도 밥그릇째 들고 따라와서 한 숟가락만 먹으라며 챙겨주던 사랑처럼 스스로를 생각하고 챙겨주는 어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전 17화 울음을 삼긴 목안은 따끈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