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서리에서 읽다) 구병모의 『절창』

찢기고 베여 완성된 사랑이라는 비극

by 일상의모서리

​구병모의 소설은 친절하지 않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다 이내 날 선 문장에 베이고 만다.

시종일관 ‘자신을 읽어주길 바라는 남자’와 ‘그 읽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여자’의 팽팽한 대립.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해석의 시도는 때로 상대에게 폭력이 되며, 그 어긋남의 간극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읽는 내내 '읽기 편한 책'이 아닌, 읽어 내려가는 내내 심장 어딘가를 불편하게 찔러대는 가시 같은 기록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 그리고 잔혹한 진실의 선택


​작품을 읽으며 던지게 되는 질문은 얼마 전 보고 온 『라이프 오브 파이』의 파이의 핵심 질문과 맞닿아 있다.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시나요?" 아름답게 포장된 환상인가, 아니면 피비린내 나는 현실의 잔혹함인가.

구병모 작가는 후자를 강요한다. 진실은 결코 예쁘지 않으며, 우리가 사랑이라 믿었던 것의 실체는 때로는 피 비린내 나는 상처와 닮아 있다고.

​찢기고 베어진 사랑의 인어공주
​사랑은 온전한 상태로는 그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인어공주가 자신의 목소리를 대가로 침묵의 사랑을 완성하고 끝내 거품이 되었듯, 절창의 인물들 또한 찢기고 베어져 만신창이가 된 후에야 비로소 사랑의 본질에 다가선다.


​이 책은 사랑의 낭만을 노래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편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그 밑바닥에서 터져 나오는 선연한 핏빛 상처를 보여준다.

한줄평
구병모 작가의 서늘한 만연체 만담을 원한다면 강추

작가의 이전글사랑은 늘, 아이보다 늦게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