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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생명 Jun 05. 2023

5-?=?

직면

 병원생활이 십여 일이 지나면서 담당과장님께서 추후 진료일정에 관하여 얘기할 것이 있으시다며 뵙자고 연락이 와서 남편이랑 진료실로 향했다.

 내 눈앞에는 엑스레이사진 한 장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엑스레이사진을 보고 나는 까무러칠 수밖에 없었다.


 정확하게 내 손의 상태에 대해서 얘기해 준 사람도 없었고 감히 물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던 나로서는 대략적인 감만 잡고 있었다.  손가락의 마디가 일부 손상되었다 하더라도 다섯 개의 손가락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리라.

 

 그런데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손상부위가 너무 크고 깊었다. 검지와 중지는 흔적조차 없었고 나머지 세 손가락도 손상이 심해 형체를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예전에 본 에어리언이라는 영화의 괴물 같았다.  흐물흐물하게 제대로 된 형체도 없는 것이 초가 녹아 흘러내리는 촛농의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사고 당시 때보다 더 큰 충격에 절망을 넘어 참담함이 느껴졌고 속수무책으로 눈물이 흐르고 또 흘렀다.


 담당과장님이 조용히 얘길 이어가셨다. 너무 심하게 다친 상태라 엄지와 검지가 기능을 해야 하는데 검지가 없으니 엄지발가락을  손에 이식하는 수술을 받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원래 이식수술비는 따로 청구해야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엔 손상부위가 넓어서 산재처리로 가능하다고.


 그러면서 발가락하나 없다고 불편할 거 하나도 없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일단 생각을  해보기로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남편도 나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얼마간의 침묵이 흐르고 남편이 말을 건넸다. 그래도 손은 써야 하니 발가락을 이식하는 게 나을 것 같지 않겠냐고.

 나는 일단 친정식구와 아이들 얘기를 들어보자고 했고 나도 생각을  해보겠다고 했다.


 잠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올리 없었고 이런저런 생각에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먼저 오신 환자분들과도 얘길 해보고 교통사고로 오랫동안 병원생활을 해오신 분의 얘기도 들어봤는데 결론은 이식수술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이식수술을  했을 때 조직이 맞지 않으면 피부가 괴사 되는 일이 더러 있는데 그러면 원래보다 더 많은 부분을 절단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친정식구랑 아이들은 내 생각이 젤 중요하니 내 뜻대로 하라고 했고 남편도 다시 생각해 보니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살더라도 이식수술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도 이식수술은 반대였다. 손이 다친 건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사고였지만 멀쩡한 발가락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엄지발가락이 없는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엄지발가락이 없으면 균형 잡기가 어려울 텐데 그리하면 제대로 걷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발가락 하나 없어도 불편한 건 하나 없다는 담당과장님의 말은 100% 틀린 말이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도 발에게 미안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왼손잡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의 왼손은 많은 시련을 겪었다. 생각 없이 한 장난이 습관으로 굳어 손등에 눈에 띌 만큼 굳은살이 박혔고 식당에 출근 한 첫날  새 칼에 적응이 되지 않아 손톱 1/4이 날아가는 사고를 겪은 것도 왼손이었다.


 주인을 잘 못 만나면 손발이 고생이라는데 고생시키는 건 왼손하나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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