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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섬 Mar 30. 2022

참으로 따분하여 좋았다

비정제 에세이





가장 저렴한 티켓이 나올 때가 있었다.

왕복 비행기 값이 10만원 남짓하다는 것은

바람처럼 다니는 여인네에게는 기회였다.




해는 지고 있고, 나는 해가 지는 풍경이 좋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지방으로 다니기를 좋아했다.

지나치게 다듬어지지 않은 소박한 멋이 있어 좋았다.


데파-토(department store)가 아닌,

햑카텐(百貨店)이란 예스런 표현을 하는 어르신들이

전차 안에서 신기한 외국인을 붙잡고

동네의 소박한 쇼핑 스팟을 홍보해 주시는 것도 좋았다.


배를 타고 왔냐고 묻는 질문에는 웃곤 했다.

손에 간식이라도 하나 쥐어 주신다.

시큼한 풋자두를 얻은 날이 있었다.

딸기도 자두도 우리의 것만큼 달지 않다.


조금 시죠? 자두라는 거예요. 한국에는 없죠?




나에게는 이국적 정취, 그들에게는 동네 일상.



산길을 굽이굽이 오르고 굽이굽이 내려간다.


한 시간 이상을 작은 버스로 덜컹거리며 이동을 해야

겨우 닿을 수 있는 산골 마을도 있었다.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게 동네 아낙들의 핫한 취미라 했다.

프론트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한국어 한 마디라도 더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실루엣은 바로 포착되어 30분을 붙잡혀 있기도 했다.

드라마 수다는 어디 가나 옴팡진 법이다.

그리고 끝이란 게 없다.




나는 조식을 먹을 수 없다. 제때에 일어나 본 적이 없다.
커피와 음악만 있으면, 그곳이 곧 천국이 되는 마법.



아침에 느릿느릿 숙소를 나와서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발길이 닿는대로 다녔다.


카페인 중독자에게는 커피만 있으면 된다.

음악이란 건, 상시 준비되어 있는 거니까.


마음이 조급하지 않아야 걸음이 밭지 않다.

걸음이 느릿거려야 많이 담아갈 수 있다.

소박한 햇살도, 평범한 일상도, 길가의 작은 풀꽃도,

정취도, 봄 내음도, 그 순간의 감성도.




조오리를 모으는 취미가 있다. 여름 슬리퍼로 딱이다.
미니 우동도 좋아한다.



진열된 튀김이 소담한 동네 식당의 노렌을 들추고 들어가

내 몸 남짓한, 창가의 오래된 테이블에 앉아서

온소바에 치쿠와나 튀김을 얹어 먹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흔하디 흔한 작은 식당을 좋아했다.

의외로 현지인들이 찾는 맛집일 수 있었다.

게다가 단돈 몇 백 엔에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고.

맛은 물론,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습니다.  ^^

왠지... 집밥 같으니까.


인생도, 일상도, 여행도

굳이 화려할 필요가 있을까.


소박한 정취가,

오히려 더 멋스러울 수도 있다.


소박하고 평온하고 잔잔한 정취는,

마음도 소박하고 평온하고 잔잔하게 만든다.




지역 특산품인 밤으로 만든 아이스크림이다.



그러나 아이스크림만큼은 사치를 부렸다.

난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지역 특산품인 아이스크림을 구입해서

그 순간의 풍경도, 달달하고 부드러운 감각도,

내 귀에 솜사탕 같은 제임스 모리슨도 함께 즐겼다.

모달리티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시간은 늘 느리게 흘렀고

마음에서는 조급함이 사라져 좋았다.

느린 시간을 즐기기 위해 일탈을 하곤 했다.


그리고 느린 시간 안에서도 일탈을 했다.

아이스크림이라는 달콤하고 짜릿한 일탈 말이다.




목가적이다. 난 이 풍경의 일부로 흡수되었고.



지독하게 조급한 일정으로 관광지를 돌든

한 두 시간을 내가 마음에 드는 곳에서 여유를 부리든,


소비하는 물리적 시간은 같다.

똑같은 시간을 보냈고, 똑같이 이국을 즐겼다.

그리고 나는 조급함 대신 소박한 정취와 감성을 담았다.

매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나는 모든 시간이 행복하고 평온했다.


그래서 때때로 생각해 보곤 한다.


인생이란 여행도,

그와 다를 것이 있을까?





#한섬집, 눈부시게 아늠다웠던 나의 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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