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맑았단다, 구름 한 점 없더란다.

네가 세상에 태어나던 그날말이야. / 라디오 타임이 준 선물#2

이른 아침의 선선했던 공기도 잠깐,

어느새 시간은 흐르고 흘러 점심시간이 되었다.

배고픈 정오를 지나, 뜨끈한 공기가 채워지는 게 아마 한 시 반 즈음 됐을까.

언제나처럼 틀어두었던 라디오에서는 노래자랑이라는 코너가 시작되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고 싶은 청취자들이 사연을 보내면 디제이가 그중에 고르고 골라 전화를 걸고,

연결된 청취자가 자기소개 후 노래도 부르고, 보낸 사연에 대한 이야기도 하는 그런 코너였다.



처음 전화를 건 사람은 어느 남성분이셨다.

곧 회사에서 연례행사를 하는데 거기에 노래자랑이 있다고.

노래를 잘 부르면 상금을 주는데 밝은 곡과 비교적 고음을 사용하는 곡 중에서 어느 쪽을 고르는 게 좋을지 고민이라고 하셨다.

두 곡 다 불러보라고 한 디제이는 청취자들의 의견도 참고하며 조언을 해 주었고,

밝은 곡 쪽으로 몰린 의견 덕에 선곡은 어렵지 않게 정해졌다.

상금 꼭 탔으면 좋겠다며, 마무리하려는 디제이의 말에 그분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실 결혼한 지 14년이 지났는데, 이제 드디어 아이가 생겨서...'


살짝 수줍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디제이는 물론 메시지 창에는 축하 물결이 일었다.

이전에 유산 경험이 있어 사실은 아직 주변에 알리기도 조심스럽지만,

너무 기뻐 어딘가에는 자랑하고 싶었다고. 혹시 태명을 지어주면 소중하게 쓰겠다고.

디제이는 흔쾌히 태명까지 지어주었고, 사연자분은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까지 전달하신 후 훈훈하게 끝이 났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셨을지. 지금 얼마나 기쁘실지.

감히 상상도 안되지만, 그만큼 행복하시길 바라면서 나 역시 눈물이 그렁그렁했던 상태였다.


다행히도 곧이어 그 사연자분이 행사 때 부르게 될 밝은 곡이 흘러나왔고,

덕분에 눈물이 쏙 들어가 다시 평온해지려던 찰나.

다음 사연자분이 연결되었다.



더운 여름에 너무너무 고생하며 낳은 아이의 생일이 오늘이라며 사연을 보내신 어머님.

벌써 이십몇 년이 지났지만 그때 너무 고생을 해서 그런지 이 날만 되면 몸이 아프시다고.

디제이는 그렇게 고생해서 낳으셨는데 아이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 잘 크고 있느냐 물었고,

어머님은 감사하게도 아이는 잘 자라주고 있다며, 아침에는 전화가 왔었다고 했다.


'오늘 내 생일이야 엄마. 날 낳아주어서 고마워. 엄마 딸로 태어나서 너무 좋아.'


라고 했다던가.

아이를 낳았던 그때는 70년 만의 폭염이 왔던 여름이었는데,

에어컨도 잘 없었고 심지어 아이가 4킬로대여서 더 힘드셨다고.

어머님 얼마나 힘드셨냐며,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더운 날씨에 고생하셨다 디제이가 이야기하자,

아우 정말 힘들었어요, 라며 맞장구를 치면서도,

그래도 아이가 건강히 잘 자라주어 벌써 스물몇 번째의 생일을 맞게 된 것이 그저 기쁘다 이야기하셨다.

오늘이 그 아이의 생일인데, 어떤 노래를 불러주고 싶냐는 디제이의 말에 어머님은 노래를 시작하셨다.



온 동네 떠나갈 듯 울어제치는 소리,

내가 세상에 천 선을 보이던 바로 그날이란다.

두리둥실 귀여운 아기 하얀 그 얼굴이

내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이던, 바로 그 모습이란다.

하늘은 맑았단다. 구름 한 점 없었단다.

나의 첫 울음소리는 너무너무 컸더란다. 하하하.

꿈속에 용이 보이고 하늘은 맑더니만

내가 세상에 태어났단다. 바로 오늘이란다.

...

-가람과 뫼, 생일 중




노래를 들으며 청취자들도 디제이도,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자신의 어머니, 혹은 아이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곡 자체는 밝은 곡이었는데,

이미 한 번 그렁그렁했었던 내 눈물샘은 터져버렸고 나도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다.

가사로는 '내'가 이렇게 태어났다, 고 부르는 노래인데

들으면서 나는 꼭, '너'가 이렇게 태어났다며 부모님이 이야기해 주는 것만 같았다.


어머님 사연이 끝난 후 디제이는 지금 이 사연과 노래 들으시고 어머니 생각나는 분들 계실 텐데

전화 한 번씩 꼭 하시라며, 전화가 좀 부끄러우면 문자라도 보내라며 사연을 마무리지었다.


어머님. 어머니. 엄마.

듣기만 해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단어.

아마 몇 살이 되어도 절대 알 수 없을 어머니의 마음.



요즘 나는, 나 바쁜 것만 생각해서 휴가가 생겨도 본가를 찾아가기보다 쉴 생각만 했었다.

그때마다 언제 올 거냐 물어봐주시면서도

애써 꼭 오지 않아도 된다며 오히려 날 걱정해 주시던 부모님.

항상 가기 전에는 고민하다가도, 막상 가면 돌아오기 싫어서 꿈틀대면서 왜 자꾸 안 가려고 하는지.

이번 휴가에는 찾아뵈어야지.

어머니가 끓여 주시는 김치찌개를 배부르게 먹고 와야지.



보고 싶은 부모님 만나 뵐 수 있을 때 자주자주 얼굴 좀 보여주라는,

아니 만나 뵐 수 있을 때 부지런히 만나둬야지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

라디오 타임이 준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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