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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으로 바위치기

김민정의 일상다반사(8)

by 김민정

일이 많으면 사람은 막막해진다. 나는 항상 바빴다. 그건 중학생 때부터 시작되었다. 학원에 다녀서 바빴던 게 아니다. 선생님들의 요구에 부응하느라 바빴다. 국어 선생님은 백일장만 있으면 나에게 부탁을 했고. 하다못해 과학 선생님은 과학 독후감을 써오라고 했다. 교내 영어 말하기 대회, 국어 말하기 대회에도 나가야 했다. 아마 내가 학원에 다니지 않아 다른 학생들보다 덜 바빴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수업 시간에 거의 유일하게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 학생이라 기억에 남았고 글자를 예쁘게 써서 항상 칭찬받는 학생이었던 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바쁜 생활은 일본으로 건너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계속되었다. 연극부 활동을 하며, 매년 희곡을 썼다. 점심 시간엔 도서실에서 책 대여 반납을 맡았고 공부도 했지만 틈틈이 책을 읽었다. 게오르규의 <25시>를 읽고 깜짝 놀라 다시 한 번 읽었다. 그리고 얼마전 그 책을 구입하려다 일본어 번역본이 이미 절판되어 고서점에서 비싼 가격에 취급된다는 소식을 듣고 또 한 번 놀랐다. 이 정도 수준의 책은 항시 읽을 수 있도록 어느 서점이든 비축해둬야 하는 것 아닐까. 한국에선 이북으로도 구할 수 있다고 한다.막막한 날엔 오래된 책들을 꺼내본다. 데라야마 슈지(1935-1983)의 시도 그렇다. 데라야마 슈지가 시인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만이 번역되어 나와있다. 그 책 또한 난해함으로 가득하다.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면 쉽게 번역에 도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단편 소설 수백 편을 쓴 아베 고보인데도 여전히 장편만 번역했다는 점도 좀 아쉽다. 너, 알고 있니?바다의 기원은 한 방울 여자 아이의 눈물이었단다어느 달밤에양철지붕 위 한 마리의 사랑을 보게 된 후나는 홀딱당신에게 고양이해 버렸다소년은 생각한다말로 자신의 날개를 만드는 것을계단1단에 여름2단에 내자신3단에 미즈에가4단째에 걸터앉아5단에 첫사랑이었다6단에서 무엇을 했는지7단에서 하느님이 보셨다8단에서 미즈에가 일어서자9단에서 나는 문득 외로워졌다10단에서 철학해 자성해 슬퍼해11단에서는 찾아오는 가을을 맞자12단에서 날개처럼 두 팔을 벌리고13단님 인생님 여러분 모두 사요나라

하트의 추억

미즈에한 그루 느릎나무 모차르트를 들었던 여름 사랑안해, 사랑못해, 사랑안 해 사랑 못 해 사랑 안 해? 나는 휘파람을 잘 불지 못했다. 한 마리 나비도 철학을 할까? 해 사랑 못 해 사랑 안 해? 사랑안해, 사랑못해, 사랑안로랑생을 읽었던 여름연애서 연애서 연애서한 그루 느릎나무미즈에 이런 데라야마 슈지의 시들을 다시 읽어보곤 한다. 그게 뭐라고 또 금세 막막한 마음이 풀린다. 요즘은 한국 현대문학상 수상집 2022년판을 읽고 있다. 정소현 작가의 <그때 그 마음>을 읽으며 여자들의 이야기에 입맛을 다셨다. 친구란 서먹서먹하면서도 기댈 수밖에 없는 존재며, 누가 먼저 누가 더 많이 기대던, 기댈 수 있는 용기가 이어진다면 그 관계는 계속될 것이다. 주말에 막내가 코로나 밀접접촉자 판정을 받았고, 오늘 소아과에서 항원검사를 하고 음성 판정이 내려졌지만, 이번주 내내 아이들과 집안에서만 생활할 예정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초등학교에서 일부 학급이 이번주 내내 문을 닫는다는 소식, 어린이집 선생님이 확진을 받았다는 소식이 메일로 날아왔다. 코로나가 어떻게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정부가 어떤 식으로 이 코로나를 해결할지도 알 수 없다. 일본은 처음부터 검사자를 줄이려고 했고,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지만 검사를 못 받는 사람이 적지 않으며, 지난 1월에도 사망한 후에 코로나 검사에서 양성을 받은 사람들이 91명이나 된다.

애 셋을 데리고 내가 이번주를 잘 견디어 낼 수 있을까. 이럴 때는 인터넷에서 점을 찾아보기도 한다.

-황소자리처럼 ‘자기평가를 어려워하는 별자리’도 없다. 당신은 남들이 봤을 떄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아수라장도 여러 번 겪었고, 신뢰도 받고 있는데, 자신을 “아직 아니”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느긋하게 지내지 못하고 자신의 취향과 자신의 이상만을 향해 달려드는 성격이라 쉴 틈이 없다. 자기 평가가 어려우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이번주 당신은 자기 자신을 날카롭게 관찰하고 너무 멀리만 내다보게 되겠지만, 당신은 매우 치밀하게 아주 잘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라. 그러니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격려하고 일부러라도 멍한 상태로 일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보그의 점괘는 이러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다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나는 사실 매일 벽에 부딪힌다. 벽은 어마어마해서 결코 넘을 수가 없다. 나를 들쳐 안아 넘겨줄 사람도 없다. 그렇다고 체력이 짱짱해서 내 스스로 벽을 타고 올라가지도 못하겠다. 나는 달걀을 몇 개 오늘도 벽에 던졌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면 그 바위가 깨질지도 모른다? 아니다, 벽은 그냥 더러워질 뿐이고 나는 그 벽을 닦게 될 것이다. 도대체 나의 벽은 무엇인가. 따져보면 써야 하는 글을 다 못 쓴 부담감이다. 일본에 사는 여자의 에세이도 가사 에세이도 이미 마감이 지났는데 아직 다 쓰지 못했다. 다 썼다고 생각했는데 들춰보니 부끄러워 못 보내고 있다.


もどかしい(모도카시이). 답답하고 애가 탄다. 목이 마른다. 아베 고보의 <모래 여자>처럼 모래 밭 저 아래에 집이 있고 그 집이 모래에 잠기지 않도록 매일 모래를 퍼나르는 사람의 기분이 된다. 고교시절에 대입을 준비하면서 매일매일이 시시포스가 된 기분이었다. 돌을 나르고 또 날라도 대체 공부할 범위는 왜 그리 넓던지. 나도 쉰 쯤 되면 더 많이 포기하고 더 많이 타협하게 될까. 그러면 나에게 남는 것은 글일까. 그냥 숨만 쉬어도 행복하다는 감정일까. 후우,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렇다고 어디 도망간다고 누가 대신해 주는 것도 아니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면 된다. 벽이 있으면 벽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한숨이 나올 때는 홀로 조용히 한숨을 쉬면 그만이다. 사는 게 그런 것이라는 것을 또 모르는 것도 아니다.

생각은 돌고 돈다. 머리속은 항상 복잡하다. 그래서 또 시집을 꺼낸다. 게오르규의 <25시>는 이북으로 사야겠다. 데라야먀 슈지의 ‘15세’라는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느날 아침/나는 생각했다/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그런데/어느날 아침/나는 생각했다/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사람이 이렇게 변덕스럽다. 아니 늘 불안하다. 그래서 또 돌고 도는 생각들을 정리하려고 시집을 읽는다. 그렇게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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