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사람을 만나 생긴다

우연처럼 와서 삶을 바꾸는 만남들...

by 레이트 블루머

30년이 훨씬 지난 대중가요 가운데, 지금도 종종 불리는 노래가 있다.
1989년의 히트곡, 노사연 님의 '만남'이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로 시작하는 노래다.


사람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고들 말한다.
동양 철학과 종교에서는 이를 인연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만남에는 전생이나 업보와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다고도 한다.

서양에서는 겉으로 스쳐 지나가는 만남과, 인격이 인격을 온전히 마주하는 만남으로 나누어 말하기도 한다.
실존주의 독일 철학자 야스퍼스는 인격과 인격의 만남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실존을 경험한다고 했다.

어느 쪽이든, 만남은 인간 경험의 핵심이다.
우리는 만남을 통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 간다.


인생은 참 오묘하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길이 달라진다.

중학교 3학년, 2학기 때의 일이다.
담임선생님이 진로와 관련해 학부모 상담을 하시던 날이었다.

어머니는 어디서 들으셨는지, 당시 명문으로 불리던 어느 공업고등학교 진학을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상위 3% 학생만 지원할 수 있고, 등록금도 전액 면제, 졸업 후 취업도 보장되는 학교였다.
어려웠던 시절, 많은 부모와 학생들이 진지하게 고려하던 선택지 중 하나였다.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을 너무 또렷하게 기억한다.
여선생님이셨는데, 목소리는 단호했다.

“아니 왜 이 아이를 거기로 보내시려는 거죠?

그건 아니죠. 얘는 무조건 대학으로 보내셔야 합니다.”

어머니는 그 말을 바로 받아들이셨다.
그 이후로 그 학교 이야기를 꺼내신 적이 없다.

돌아보면, 그 담임선생님은 내 인생을 바꾼 고마운 분이다.
그 선생님의 한마디가 없었다면 나는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의 조언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어머니의 마음 역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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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내 인생을 바꾼 만남은 그때만이 아니었다.

나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로 성장한 기업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그중 10여 년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며,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를 가졌다.

그런데 이 회사에 들어가게 된 시작은 참 우연했다.
적어도 그때의 내 인생 계획 안에는, 자동차 회사라는 선택지는 없었다.

이미 다른 대기업에 합격해 수습 기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학교에 잠깐 들렀다가 우연히 박사과정 선배를 만났다.
그 선배와는 특별히 친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불쑥 내게 원서를 한 장 쥐여주었다.
“야, 이거 한번 써봐.”
거의 강권에 가깝게 건네는 바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받아왔다.

그 한 장의 원서가, 내 인생을 평생 자동차맨으로 이끄는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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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속의 만남만 그런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인생도, 만남 하나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곤 한다.

얼마 전 월드비전 회장, 조명환 박사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어렵고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 늘 이렇게 불만을 품었다고 한다.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학교 성적도 늘 바닥이었다.
“꼴찌였다”는 것이 그의 표현이다.
대학에 갈 실력도, 자신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을 통해 한 건국대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 교수님은 그에게 미생물공학을 전공해 보라며 멘토링을 해주셨다.
그 만남 덕분에 그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이후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유학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성적이 미달되어 학교에서 쫓겨나는, 말 그대로 실패의 길로 접어드는 듯했다.

바로 귀국할 수도 없던 그는, 수십 개의 대학원에 다시 지원서를 넣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학교에서 거절당했다.
딱 한 학교를 제외하고는.

그를 받아준 곳은, 그가 관심조차 없던 애리조나 대학의 에이즈(AIDS) 랩이었다.
선택지는 사실상 거기 하나뿐이었다.
그는 그곳으로 향했다.

거기서 그는 초기 에이즈 연구의 권위자인 찰스 스털링 박사를 만났다.
그 만남을 통해 그는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AIDS 연구자로 성장했다.

마침 그 시기에는 에이즈가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면서, 그의 연구도 주목을 받았다.
한국에서 귀한 교수 자리 제안도 들어왔다.

교수 생활을 하던 중, 그는 학교 행사로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바루크 블룸버그 박사를 만나게 된다.
그 인연을 따라 스탠퍼드로 건너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에이즈 연구의 대가인 메리건 교수를 만났다.

그리고 그를 통해 세계적인 과학자, 정치인, 경영인들을 연이어 만나게 된다.
그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연구실 밖의 세계, 경영과 리더십, 가난한 나라 아이들의 삶이 함께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 인생에서 만남은 나의 여정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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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어떤 만남은 우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다.
전혀 계획하지도, 예상하지도 않았던 길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그래서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나는 누구를 만나고 있는가?
혹시, 내 인생에 중요한 만남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이다.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관념과 편견 때문에,
나를 바꿀 수 있는 소중한 만남을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요즘 나는 청년 학생들을 자주 만난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혹시 내가, 이들의 삶의 길을 바꾸는 멘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게, 그러나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려고 한다.
주어진 환경에 그냥 순응하는 결정보다는,
마음속 깊은 데서부터 하고 싶은 일을 그려보도록 돕고 싶다.

짧게 보면 작은 차이처럼 보이는 선택들이
먼 훗날 뒤돌아보면, 인생의 거대한 차이를 만들기도 한다.

나는 그런 차이를 만들어 주는 조언,
그런 멘토링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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