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바람 Feb 04. 2022

[쿠바 #12] 대박 사건이 터지다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게 되다.

  [쿠바 #11]을 꼭 먼저 보고 오세요~


아...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공예품 시장 구경을 마치고 시장 입구에 일행들이 모여 다시 길을 잡고 다음 일정지로 가려는 순간~!! 총무님의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엇, 내 카메라가방~!!”

   없었다! 그의 어깨에 메여 있어야 할 카메라 가방이 없었다. 좀전에 벤치에서 정리를 하더니 그걸 그곳에 그냥 놓고 나온 것이 분명했다. 다시 바다 벤치쪽으로 함께 뛰었다. 하지만 이미 그곳엔 휑한 바닷바람만 가득할 뿐.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카메라가방도 없고, 악단도 없고... 아무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곳저곳을 누비며 찾아보려 했지만 언어가 제일 큰 문제였다. 아까 쇼핑할 때 친절하게 다가와 영어로 야구 얘기하면서 이대호를 언급하기도 했던 청년이 우리를 도와주었다. 관리소로 안내해주었고 그곳에서 관리원과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보기도 했고, 시장 내에 안내방송도 몇 차례 했다. 아무 소득도 없었다. 현지 가이드인 필리페에게 전화를 해서 시장 관리소 직원과도 통화를 하게 해 보았지만 결국 관리소 직원은 현재 상태에서는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답만 할 뿐이었다. 관리소에서 CCTV도 보았지만 우리가 앉았던 그곳을 정확히 비추는 화면은 하필이면 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관리소의 도움을 받아 경찰에 신고했다.

   잠시 후 경찰이 관리소로 왔다. 경찰관은 관리원에게서 대략적인 설명을 듣더니 지금 상황에서 찾기는 어려울 듯하다는 말을 했고 함께 경찰서로 가 보자고 했다. 이제 상황 상 경찰서에 가서 여행자보험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는 수밖에는 없어 보였다. 영어를 하는 그 청년은 경찰과 우리 사이에서 통역을 열심히 해주었다. 그 청년이 통역해준 내용에 의하면 사건 당사자인 총무님만 경찰차를 탈 수 있고 나머지는 경찰서까지 알아서 가야 한다고 했다. 경찰서까지는 20블럭쯤 가야 하며 걸어갈 수도 있고 택시를 타고 갈 수도 있다고 했다. 사건의 시급함에 우리는 마음이 쫓겼고 두 팀으로 나누어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역시 그 청년이 주변에 있는 택시 두 대를 섭외해주었고 1대당 5쿡씩 하기로 하고 택시를 탔다. 택시는 순식간에 길을 달려 경찰서에 도착했다. 그런데 뒤에 온 택시는 6쿡을 받았다고 대박님이 또 분노(?)하셨다. 사람이 바쁘고 급한 심리를 이용해서 그렇게 사기를 치나 싶어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참 빠른 시간 안에 총무님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은 아바나 중앙 경찰서 앞에 도착했다.

아바나 중앙 경찰서 입구의 모습. 이 단단해 보이는 성 앞에 경찰서를 알리는 표지판이 작게 서 있었다.

   그런데 그 경찰서.... 앞서 중앙역으로 택시를 타고 가다가 보았던 그 성(?)이 바로 그 경찰서였다. 진입금지 표지판이 딱 보였던 바로 그 곳~!([쿠바 #10] 참고하세요)그 곳이 경찰서 건물로 쓰이고 있는지도 몰랐지만 그 곳에 이렇게 다시 오게 될 줄이야...!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진입금지 표지판은 그야말로 이곳으로 진입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다시금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더욱이 스페인어를 거의 할 줄 모르는 여행자에게 이곳은 진입해서는 안되는 곳이었다.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기어이 가고야 마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오래지 않은 시간이 흐른 후에 경찰차 하나가 성(?) 입구에 도착을 했다. 우리 일행은 총무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순간 모두 일어나 몇 발자국을 내딛었다. 그런데 경찰차 뒷문에서는 수갑을 뒤로 채운 다른 피의자가 경찰관에 의해 일으켜져 내리고 있었다. 총무님을 태운 경찰차가 아니었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경찰차는 오갔지만 총무님은 보이질 않았다. 1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고..... 그래도 안 오길래 로밍이 되는 폰을 쥐어 주고 온 총무님에게 문자를 보내 보았다. 그런데 답이 오기를 그냥 여전히 그 시장 앞에서 마냥 기다리고만 있다고 했다. 언제 출발할지 가늠이 안 된다고 일단 기다리고 있으라고만 한다고 했다. 이미 경찰서 앞에서 30분 넘게 모기와 싸우며 우리는 기다리고 있는데 정작 와야할 사람은 오지도 못하고 그러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경찰차가 휘익휙 하고 날아다녔을텐데... 역시 이곳은 서두르지 않는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결국 한 시간쯤 지나서야 총무님은 경찰서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슴푸레 져가는 저녁 하늘 빛이 있을 때 도착한 우리는 그 해가 다 지고 세상이 까맣게 바뀌고 경찰서 너머 말레꽁 긴 도로에 가로등이 다 켜져서야 총무님을 만날 수 있었다.

아바나 중앙 경찰서의 경찰차는 이따금씩 피의자를 태우고 경찰서로 드나들었다.


아바나 중앙경찰서에서 조서 쓰기 도전~!

   이제 경찰 조사를 받고 보험을 위한 확인서도 받아야 했다. 스페인어가 잘 통하지 않는 우리는 영어로 도전하기로 했고, 그래서 총무님을 좇아 나도 같이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위압적으로 서 있는 성의 정문을 통과하니 로비에 경찰 몇이 있었고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밖에서 볼 때 참 멋지고 단단해보이는 이 성(?)의 내부까지 이렇게 와 앉아 있을 수가 있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으로 와서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이런 일로 여기까지 오게 되다니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절로 났다.

   로비 안내소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상황에 대한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얼마 뒤 한 경찰이 오더니 스페인어가 되냐고 물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는 못한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저희들끼리 뭐라뭐라 자꾸 얘기를 하는데 아마도 서로 미루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역시 이들은 느긋했다. 빨리빨리는 우리만의 문화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가장 젊어 보이는 경찰관이 우리에게 왔다. 아마도 서로 미루다가 제일 말단에 있는 녀석이 어쩔 수 없이 걸려든 게 아닌가 싶었다.

중앙 경찰서 로비에서 경찰을 기다리는 우리 모습. 멋드러진 성 안에 이런 일로 들어가게 될 줄이야~

   그 경찰은 우리를 조사실로 데려갔다. 사실 제일 젊은 경찰이라 그나마 얘가 영어가 되는 애라서 우리를 맡긴 게 아닐까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금세 무너졌다. 그 젊은 경찰은 느긋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에다가 무언가를 투닥투닥 치더니 구글 번역기를 실행시켰다. 엇~! 이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영어와 스페인어 번역이다. 그나마 한국어 번역은 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말은 별로 안 하고 컴퓨터를 앞에 놓고 경찰이 한 번 쓰고 영어로 번역하고 일어서면 그 자리에 총무님이 앉아 영어로 번역된 것을 보고 영어로 쓰고 일어서면 그 경찰이 다시 스페인어로 번역하여 알아듣는 식이었다. 세상 참 좋아졌다 싶기도 했지만 이렇게 대화를 하자니 답답증도 같이 밀려왔다. 서로 잘 안되는 영어로 몇 번 대화도 했지만 정확히 기록해야하는 조서는 어쩔 수 없이 번역기가 동원될 수밖에 없었다. 사건 시간과 장소(처음부터 시장 이름을 몰라 의사소통이 무척 어려웠다.ㅠㅠ) 등 개요를 대충 작성을 하니까 경찰이 하는 말이(정확하게는 번역기에 영어로 찍힌 말이) 카메라는 찾기 어려우니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여행자보험용 확인서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랬더니 잠시 고민을 하더니 그걸 위해서는 현장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다시 그곳에 가야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그럴 거면 아까 오기 전에 미리 보고 오면 될 것을 얘들은 왜 이제서야 거길 또 간다는 건지... 항의하고 싶었지만 말이 안 통하니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조사실 내부. 구형 에어컨과 도트프린터가 있었고, 컴퓨터로는 번역기를 돌렸다.

   결국 경찰차에 다시 타고 현장에 갔다. 잃어버린 장소를 확인하고 시간을 다시 확인하고 다시 경찰서로 왔다. 다시 조사실로 들어갔고 이번에는 직진님도 함께 조사실로 들어왔다. 젊은 경찰은 열심히 조서를 꾸미기 시작했고 보험확인서가 필요하다는 우리 말이 생각이 났는지 대충 가격이 얼마인지를 물었다. 3,500USD! 그랬더니 젊은 경찰은 무척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프로페셔널 카메라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그 내용까지 다 확인서 작성에 포함을 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내용을 다 썼고 경찰은 다시 얘기했다. 이 서류가 확인 결재를 다 받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며 언제까지 쿠바에 있을 거냐? 숙소가 어디냐? 서류가 나오면 가져다 주겠다는 것이었다. 내일 아침 우리는 떠난다고 했더니 또 한 번 놀랐다. 잠시 고민을 하더니 바깥으로 잠시 나갔다 왔다. 그러더니 완성된 확인서 양식을 가져왔고 거기에다 출력(찌지직 소리를 내는 도트 프린터였다. 종이 한 장 인쇄하는 데 한참 걸렸다. 집에서 노는 잉크젯이라도 하나 기증하고 싶었다.)을 하고 사인을 하고는 확인서를 마무리해주었다. 말은 잘 안 통했지만 끝까지 친절하게 그 젊은 경찰은 우리를 대해 주었다. 사례를 하긴 그렇고 옆에 있던 직진님이 명함을 내밀었다. 나중에 한국에 여행을 오게 되면 꼭 연락하라고 했다. 반갑게 미소를 지으며 그 경찰은 꼭 이메일을 하겠다고 했다.


   다 마무리를 하고 나오는데 과연 이런 여행이 또 있을까 싶었다. 세상 어느 한국 사람이 쿠바에 여행을 와서 중앙경찰서 내부까지 들어가서 경찰관과 함께 조서를 꾸미고 이메일을 교환할 수 있었을까? 카메라를 잃어버린 총무님은 마음이 너무 아팠겠지만, 그래도 나에게 빌린 렌즈 탓에 어쩌지 못해 경찰서까지 오게 된 마음도 다 이해는 하지만, 잃어버린 카메라도 그렇지만 애써 찍어놓은 그 사진들마저 다 잃어버려 허탈했겠지만... 그래도 그런 총무님 덕분(?)에 우리는 결코 경험해보지 못할 자유여행의 최대 대박 사건을 몸소 경험을 한 셈이다.


기다려준 일행들과 랍스터 요리, 살사 음악이 함께 하는 파티~

   경찰서 밖을 나왔더니 나머지 일행 모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밤 9시가 살짝 넘은 시간이었다. 대박님과 나는 경찰서 안에서 진땀을 흘리느라 배고픈 줄도 몰랐지만 밖에서 3시간이 넘게 모기들에게 헌혈까지 해가면서 기다린 일행들은 얼마나 지루하고 힘들고 배가 고팠을까 싶었다. 그런데도 모두들 고생했다며 격려를 해주는데 그 마음이 어찌나 또 고맙던지.... 하여튼 모두 저녁도 거르고 기다린 터라 얼른 숙소로 들어가서 컵라면이라도 먹어야 했다.

   도사님이 앞장을 서서 길을 나섰다. 택시를 잡으러 가는 길인줄 알았는데 자꾸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웬 식당으로 쓰윽 들어가는 것이었다. 뒤쪽에서 묵묵히 걸어가던 나와 총무님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분명히 얘기를 듣기에 이 곳은 저녁 6~7시 정도만 되면 대부분은 가게가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문을 연 식당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어찌 단 한번에 이렇게 식당을 찾아 들어올 수 있나 싶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갔더니 흥겨운 살사 악단이 연주를 하고 노래를 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 말고는 한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었지만 악단의 연주는 공연장을 꽉 채운 관객 앞에서 하는 연주와 다를 바가 없었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았고 얘기를 들어보니 경찰서 안에서 조사를 받는 사이에 도사님은 우리 일행이 오늘 목표로 세웠던 그 랍스터를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그걸 파는 식당을 찾아내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조사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바로 이 식당으로 온 것이었다. 주문은 당연히 랍스터였다. 거기에는 두 잔의 칵테일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랍스터와 함께 맥주, 모히또 등을 주문했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동안 악단의 단장으로 보이는 가수는 음악에 맞추며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고 Korea에서 왔다는 얘기를 듣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춰보라고 자꾸 유도를 했다. 모든 가사를 빼고 ‘코리아 살사’를 계속해서 외치면서~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 가수는 끝까지 ‘코리아 살사’를 외쳤고 우리에게 음악으로 말을 걸었고 결국 공연모습을 사진으로 담던 나까지 일으켜 세웠다. 대박님에게도 적극 관심을 보이며 흥을 북돋았다.

   때마침 음식이 나왔고 덕분에 우리는 춤을 춰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약간 짜기는 했지만 채소와 밥에 곁들여 먹는 랍스터는 무척 맛이 있었다. 우리 돈으로 만원이 안 되는 가격에 이만한 대접을 받고 공연까지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음악이 잠시 멈춘 사이에 대박님은 만물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공연팀에게 선물을 주었다. 그 중에는 치실 세트가 들어있었는데 공연팀은 그것을 보더니 ‘이게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하는 표정을 지었다. 대박님이 동작으로 설명해주니까 푸하하 하고 웃으면서 공연팀과 식당 종업원 몇몇이 당장 그걸 써보기도 했다. 공연은 계속 이어졌고 메인 보컬을 맡은 가수 아저씨는 정말 노련한 프로처럼 손님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흥을 높여갔다. 카메라 앞까지 와서 포즈를 취해주는 여유까지 보였다. 흥겨운 음악과 맛난 음식들로 카메라 분실의 쓰라린 아픔을 조금은 위로를 했다.

   식사를 다 마치고 우리는 택시를 타기로 했다. 숙소까지 잘 왔는데 문제는 그 택시기사 둘 다 처음에 얘기했던 것보다 두 배의 택시요금을 요구했다. 우리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얘들이 밤이고 하니까 바가지를 씌우는 것 같았다. 잔돈을 준비하지 못한 게 흠이었다. 잔돈을 당연히 거슬러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원래 택시비가 그만큼이라며 그걸 홀랑 주머니에 넣고는 유쾌하게 바이바이를 외치고 기사는 떠나버렸다. 허망하게도 요금 정산이 그렇게 끝나버렸다. 이날 하루... 끝까지 대박 사건으로 이어진 하루였다.

 



이전 11화 [쿠바 #11] 소소하게 즐기는 아바나 시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