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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바람 Feb 08. 2022

[쿠바 #13] 아쉬움을 뒤로 하고 칸쿤으로

행복했던 쿠바에서의 여행을 마치며


쿠바 여행을 마무리하기 위한 준비

   어제 전쟁같은 하루를 마치고 이 날은 아침 조식 후에 충분히 여유를 부렸다. 쿠바에서의 마지막 날이었고 오전에 공항으로 떠나 멕시코 칸쿤(힘든 여행을 마치고 이틀은 우리 스스로에게 보상을 하기로 했다)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아침 조식을 먹고 잠시 쉬다가 9시에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을 털러(?) 나섰다. 엊그제 직진님이 이미 럼주 1리터짜리를 사러 갔다 오면서 보아 두었던 바로 그곳이다. 환전하고 남아있던 쿠바화폐도 다 쓸 작정으로 길을 나섰다.

쿠바의 화폐. 여행을 하며 만났던 장소와 상징물, 주요 인물이 화폐에 담겨 있다.

   숙소에서 걸어서 10분정도 가니까 슈퍼마켓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꽤나 큰 규모였다. 대형 마트 수준은 아니지만 동네 슈퍼보다는 훨씬 커서 차를 여러 대 댈 수 있는 주차장도 구비되어 있었고 매장 안을 돌아다니며 사용하는 카트도 있을 정도였다. 다만 매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물건의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았다. 같은 종류의 상품들을 대량으로 갖다놓고 팔고 있는 수준이었다. 우리 일행은 그곳에서 럼주와 커피 등을 구입했다. 시가도 구입할 작정으로 가긴 했는데 그 슈퍼에서는 팔지 않았다. 비닐 봉투에 럼주와 커피를 잔뜩 담아들고 우리는 호텔로 다시 돌아왔다.

   짐 정리를 하러 각자 숙소로 들어갔고 10시가 조금 넘어 일행들이 하나둘씩 로비로 내려왔다. 10시 반이 되자 약속대로 필리페가 나타났다. 여행 첫날 공항에서 호텔까지 픽업을 해주었고 이날 또 공항까지 버스로 우리를 데려다주기 위한 것이다. 현지 가이드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였기에 여행 중간에 그를 만날 일은 없었다. 사실 전날 카메라 도난 사건 때 만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버스에 짐을 싣고 모두들 탑승했고 우리가 이미 걸으면서 보았던 호텔 주변의 이곳저곳을 지나치며 버스는 공항으로 향했다.


쿠바 사람에게 듣는 지금의 쿠바

   창 밖으로는 이곳 사람들의 일상적인 늦은 아침의 풍경들이 지나쳐가고 있었다. 나이 든 노인들은 노구를 이끌고 천천히 동네를 걸어 다녔고 버스 정류장에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있었고(시간이 늦은 아침인지라 많지는 않았다), 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이 시간에도 무리를 지어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분명 이곳 사람들이 살림살이가 훌륭한 편은 아니지만 그들의 얼굴에 불행해 보이는 표정을 찾기는 어려웠다. 여유롭고 자유롭고 호탕하고 흥이 많은 성격을 우리의 여행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보여주었다.

  인종 차별도 거의 없다고 했다.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인종이 유입되고 뒤섞여왔기 때문에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하여 배척하거나 외지인을 경계하기보다는 오픈된 시각으로 새로이 만나는 사람들을 끌어안는 태도를 보여왔다고 한다. 그런 분위기가 여행 내내 낯선 동양인인 우리를 대하는 이곳 사람들의 태도에서도 많이 느껴졌었다.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거리낌없이 섞이고 함께 흥을 나누며 즐겁게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이 바로 쿠바의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바나의 아침 일상 풍경.
아바나 군 병원 앞의 횡단보도.

   버스가 열심히 공항으로 가던 중 한 병원 앞을 여러 명의 군인 복장을 한 사람들이 길을 건너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군 병원이 아닌가 싶었다. 어느 하나 힘들거나 불행해보이는 표정이 아니라 다들 밝고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불현듯 지금의 쿠바 군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군 생활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독립 투쟁과 쿠바 혁명을 시대를 살아 왔고, 현대사에는 거의 고립되다시피 한 국제 정세 속에서 힘겹게 자주성을 지켜온 나라의 군인들. 이들에게 조국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졌다. 그간 보았던 학교, 공원, 광장, 심지어는 관광 명소까지도 그 어디에든 혁명 투사들의 형상과 쿠바 국기가 있었던 것을 보면 외세에 맞서 나라를 지켜나가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었는데, 지금의 쿠바 군인들은 그런 국민 의식을 더욱 강하게 갖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 필리페는 공항으로 가는 약 30분 정도 쿠바의 현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야구에 열광하는 쿠바는 이미 옛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으며 점점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고 했다. 이유는 야구 실력이 좀 뛰어난 선수들이 미국의 메이저리그 등으로 자꾸 빠져나가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정식으로 스카우트 되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밀입국을 한다는 것이었다. 류현진과 함께 뛰었던 푸이그 역시 그런 케이스라고 했다. 야구뿐만 아니라 별반 특별난 재능이 없어도 젊은 청년들이 특히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연간 평균 3만명이나 되는 인구가 국경을 넘어갔고 작년(2015년)에는 무려 8만명이나 쿠바를 탈출해 나갔다고 했다. 그렇게 밀항을 하는 가장 큰 이유가 경제가 나빠서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멕시코 등 중남미 주변 국가를 통해 미국 등으로 빠져나가게 되면 그곳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쿠바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몇 배는 높아서 젊은이들이 남아 있으려 하지를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난 해 미국과 국교 회복을 한 이후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합법화하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참으로 걱정스러운 상황이었다. 합법화된다 하더라도 보다 나은 수입을 위한 젊은이들의 해외 러시는 막을 길이 있어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더욱이 미국과 수교를 한 이상 이곳에도 자본주의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거세게 닥쳐올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나라 전체가 지켜온 쿠바만의 자존심과 정신마저 자본의 힘에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물론 경제가 발전하고 먹고사는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이 먼저이기는 할 것이고 지금보다는 조금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겠다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급격한 자본주의 물결에 인성과 전통, 문화를 너무도 쉽게 버리거나 잃어버리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기에 이른바 ‘쿠바다움’이 사라질까 걱정스러웠다. 겉만 대충 보고 하는 교만한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경제적으로는 나아지겠지만, 행복지수도 같이 좋아질까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물론 외부인이 단편적으로 본 것만으로 그들의 내밀한 삶의 영역까지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서 경제적 풍요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내부인이 아니면서 남의 삶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지 말라고 핀잔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과도한 자본주의의 물결이 경쟁을 마치 종교처럼 숭앙하게 되면서 사람들 간의 공동체 의식을 파괴하고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로 흘러가 결국엔 천박한 자본주의로 만들어버리는 모습을 익히 다른 곳에서 보고 알고 있어 이곳 쿠바가 그렇게 되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을 거둘 수가 없었다. 함께 어울리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쿠바 사람들의 모습이 사라져가는 게 아닐까, 돈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잘못된 믿음이 퍼져 오히려 행복지수가 떨어지지 않을까... 필리페의 말을 들을수록 그런 걱정들이 끊임없이 생겨났다. 필리페의 말을 다 옮길 수는 없지만 필리페 역시 그런 점은 안타까워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아바나 공항에서... 쿠바를 떠나다

   11시가 조금 넘자 호세 마르 아바나 공항에 도착했다. 필리페는 우리가 티케팅을 하는 데까지 도와주고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호세 마르띠 아바나 국제공항의 외관

   발권을 하고 보안수속을 밟고 출국장 게이트 앞으로 갔다. 공항 내부는 그리 큰 규모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붉은 색이 강렬해 보이는 색채의 중앙 홀이 크게 자리잡고 그 홀의 3면으로 탑승 게이트들이 몇 개 있었다. 중앙 홀 가운데에는 간단한 스낵을 먹을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보안수속장과 게이트까지는 걸어서 1분 정도면 갈 만큼 가까웠고 그 사이에는 면세점이라고 하기엔 좀 무색한 수준의 상점들이 있었다. 몇 가지의 기념품과 시가 등을 살 수 있었다. 환전하고 남은 쿠바 화폐들을 이곳에서 쓰기로 하고 조그마한 장식품들과 기념품, 시가 등을 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앙의 스낵바에서 커피도 사 마셨다.

공항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만나게 되는 공항 내부의 모습. 발권 카운터가 있고 중앙의 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양쪽 옆으로 이동하면 된다.

   이것저것을 사고 마시고 하던 중에 우리 일행과 조금 멀리 있는 곳에서 큰 소리들이 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고함을 치며 뭐라고 하고 있었고 얼마 오래지 않아 보안대에서 사람들이 나와 그에게 수갑을 채워 데리고 나갔다. 이곳 공항경찰대만큼은 지나치게 느긋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소란을 피운지 불과 5분여만에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우리 일행 중 일부는 그런 사태가 일어났는지도 몰랐으니 꽤 빠른 시간에 일처리를 끝낸 것이었다. 공항이라 하기에는 바빠 보이지도 않고 참 여유로운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공항이 맞다 싶기도 했다. 아마 공항 내부를 날아다니며 이곳저곳에 앉아 쉬던 새들도 놀랐지 않았을까 싶다.

아바나 공항의 대합실. 탑승구가 이 홀의 3면에 걸쳐 있다. 이게 대합실의 전부이다.

   그러나 이내 공항은 다시 여유로운 모습으로 돌아갔고 우리보다 앞선 시간에 뜨는 비행기가 뜨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조용히 탑승하고 조용히 비행기들이 떠났다. 그런데 그런 느긋함과 여유로움은 끝까지 우리를 따라다녔다. 1시 45분 출발인 비행기가 그 1시 45분이 되어도 탑승방송이 나오질 않았다. 누구도 줄을 서지도 않았다. 탑승구가 8번에서 7번으로 바뀌는 방송이 나왔고 연착이 된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런데 그 시간에도 7번 게이트 앞에 있는 우리가 타야할 비행기는 수하물을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었다. 우리의 짐들은 아직 비행기 근처로도 가지 못한 것이었다. 기다림의 시간동안 카메라를 잃어버린 총무님은 주인(?)을 잃어버린 렌즈들만 꺼내어 안타까워했고 도사님과 나는 그 렌즈들을 자신들의 카메라에 끼워 일행들 사진을 찍으며 “오~ 이 렌즈 좋네.”하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총무님은 얼마나 속이 쓰렸을꼬~? ㅋㅋ 그렇게 얼마의 시간의 더 지나 드디어 탑승방송이 나왔고 비행기에 오르기 시작했다. CU152편 쿠바 아바나 발 멕시코 칸쿤 행 비행기~! 드디어 비행기 좌석에 앉아 시계를 보니 2시 10분이 넘어간 시간이었다. 이제 정말 즐겁고 다이나믹했던 쿠바에서의 여행이 끝이 나고 있었고 새로운 곳 멕시코에서의 일정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공항 내부 시설 위에 새가 앉아있다.(왼쪽) 가끔 날아다니기도 한다. 탑승 스케줄을 알리는 전광판.(오른쪽) 국제공항이지만 비행 편수는 많지 않다.
우리 일행이 탈 비행기. 저 비행기를 타며 쿠바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쿠바 여행이 남긴 것들..

   처음으로 시도한 자유 여행이었다. 물론 엄밀하게 따지면 완벽한 자유 여행은 아니었지만 쿠바에 체류하고 있던 내내 모든 일정을 우리가 짜고 우리의 선택대로 움직이는 여행이었던 만큼 이런 여행을 처음 시도해본 우리에게는 대단한 도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우리의 스페인어 수준은 너댓살 수준이었으니... 출발하기 전에 가졌던 설렘과 두려움은 이제 넘치는 행복감과 뿌듯함으로 바뀌었다. 이 곳에 머문 시간이 고작 일주일 남짓이지만 여행의 참 맛을 느끼기에는 충분히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왜 그리 빨리 가는 줄 모를 만큼 떠나는 마음을 아쉽게 했다. 여권에 남긴 쿠바의 흔적을 지금 다시 보아도 뿌듯할 만큼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

   되돌아보면 여행 내내 불편하고 행복했다~! 다른 여행과 달리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바로바로 찾아야 할 정보를 찾을 수 없었고, 번역기를 사용할 수 없어 통역이 무척 힘들었으며, 비상 상황 발생 시에 적절한 대처를 빠르게 할 수 없어 불편했다. 그런데 행복했다! 오히려 그것이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런 일들이 생길 때마다 일행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어 해결하고, 일행들에게 때로는 의지하고, 그들과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휴대폰이 없어지니 사람이 보였다. 우리 일행에게서 해결되지 않는 일들은 동네동네를 걸으며 현지 사람들에게 손발을 다 동원해가며 물었고 그들은 스스럼없이 웃으며 우리를 도와주었으며, 때로는 먼저 다가와 아는 척을 하며 함께 어울렸다. 혼자 오롯이 조용하게 하는 여행이라면 모를까 여럿이 함께 하는 여행에서 휴대폰이 없다시피 한 것은 불편하고 두려운 일이 아니라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 현지에 있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게 하는 정말 유쾌하고 행복한 일이었다. 순간 순간에 나타나는 위기 앞에서 함께 고민하고 결정하고 즐기며 여행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그리고 행복했다. 모두 사람들 덕분이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쿠바 여행을 계기로 몇 년 뒤 또다른 엄청난(?) 여행을 꿈꾸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2021년의 쿠바

   쿠바 여행을 다녀온 뒤 TV나 인터넷 등에서 쿠바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면 자연스레 시선이 머물렀다. 그 때의 행복한 기억을 되새기다보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흐르곤 했다. 이 글을 쓰게 되면서 인터넷을 통해 쿠바와 관련한 것들을 검색하다보니 2016년 초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흘러 넘쳤다. 여행을 다녀온 사람도 이제 제법 많아졌고 우리가 갔던 당시와 달라진 모습도 꽤나 많이 보였다. 정보도 훨씬 정교하고 정확해졌다. 쿠바를 떠나오며 걱정했던 모습도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까움도 느껴졌다. 그 사이 쿠바도 많이 바뀌었으리라... 싶었다.

    작년(2021년) 8월쯤이었다. 국내 프로야구를 보다가 한 쿠바 출신 야구선수의 모자가 눈에 띠었다. "SOS CUBA"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아리엘 미란다'라는 쿠바 출신의 투수인데 이 선수가 모자에 SOS CUBA를 새긴 사연을 국내 유명 프로야구 중계 캐스터 중 한 사람이 자신의 SNS를 통해 공개했다. 

사진 출처 : MK스포츠

   사연의 내용은 이렇다. "카스트로 가문의 60년 장기 집권이 끝난 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라나19)가 닥쳐왔고 미국의 경제 제재까지 겹치며 쿠바의 민생과 경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현재 쿠바에서는 자유를 외치는 반정부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돋보이면 국가의 위기를 더 널리 알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저 문구를 새겼을 미란다의 마음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한다."

   이런 저런 뉴스와 정보들을 검색할수록 마음이 아파왔다. 2018년부터 쿠바에서도 모바일 인터넷 접속이 되면서 올해 시위는 SOS CUBA 문구를 해시태그로 달면서 쿠바뿐만 아니라 서구 국가들에도 동조하는 시위가 번져나가고 있다고 했다.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이 국교 정상화를 하며 소통을 시작했으나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의해 다시 경제 봉쇄 정책이 시작되었고 동시에 동맹국 베네수엘라의 원조 급감과 수출 감소로 달러 사용과 무역 거래에 어려움을 겪고 거기에 화폐 개혁(CUC와 CUP의 이중 화폐 제도를 폐지했다고 한다)과 함께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고 관광 산업이 제한되면서 식량 문제를 포함한 경제 문제가 심각해졌고 점차 일상 유지가 힘들어졌던 것 같다. 1994년 우방국이었던 소련의 붕괴로 인한 경제난으로 한 차례의 위기도 있었지만 나름의 변화를 꾀하며 버텨나가고 있던 쿠바 사람들이 더이상 견디기 힘든 수준까지 간 것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함께 어우러지며 흥을 나누던 그들의 모습이 다시금 생생히 떠오른다.

   그리고... 아리엘 미란다 선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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