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코프문트를 빠져나와 왈비스베이로 가는 도로가 시작되면서 멋진 풍경도 창밖 가득 펼쳐지기 시작했다. 왼쪽으로는 흰모래로 가득한 사막의 사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푸른 대서양의 바다가 사구를 향해 쉼 없이 파도를 밀어 넣고 있었다. 그 사이에 난 도로를 통해 왈비스베이로 가는 길은 이어져 있었다.
스바코프문트에서 왈비스베이로 가는 도로. 잊지말자~ 이곳은 좌측통행 도로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길은 바다를 조금은 멀리 떨어뜨리고 양쪽으로 사막이 펼쳐진 길로 접어들었고, 곧이어 잘 자란 야자수들이 도로의 양쪽에 정렬해 있는 풍경이 나타났다. 이 풍경은 누가 봐도 인공적인 것이고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같은 품종의 야자수들이었고 키도 덩치도 다들 비슷비슷한 것이 외빈을 맞이하는 군대 사열 같은 느낌이었다. 바로 이 야자수들이 왈비스베이에 거의 다 도착했음을 알려주는 표지판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마치 왈비스베이의 경계로 들어서고 있는 우리를 환영이라도 하는 듯 야자수들은 불어오는 바닷바람의 결대로 한껏 나풀거렸다. 우리는 그런 환영을 받으며 왈비스베이에 입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홍학 서식지를 향하고 있었다.
길 옆으로 심어놓은 야자수가 스바코프문트를 향해 질주해 온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구글 지도는 우리가 입력한 홍학 서식지 중 한 곳을 향해 열심히 안내를 했다. 앞선 편에서 언급했지만 이 지역에는 홍학들이 집단으로 서식한다는 곳이 몇 군데가 있었다. 그 중 하나를 골라 구글 내비게이션에 찍었다. 그런데~!! 구글 지도가 알려주는 내비게이션 신호만 믿고 열심히 찾아갔는데 그곳에는 홍학은 한 마리도 없고 어떤 공장 건물이 있었다. 내비는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하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홍학은 보이지도 않고 이상한 공장(아마도 쓰레기처리장이 아닐까 싶었다.) 건물만이 우리를 맞이했다. 당황했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단 물어보기로 했다. 공장 안으로 진입하는 우리를 빤히 쳐다보던 직원에게 더듬거리는 영어로 "플라밍고는 어디 있느냐, 여기가 아니냐, 우리는 플라밍고를 찾고 있다" 등을 말했더니, 직원은 약간 어이없는 듯한 표정으로 "여기는 아니다. 진입로를 되돌아 나가서 우회전을 한 이후 얼마를 가고......다시 우회전을 하고....."라고 친절히 길을 알려주었다. 완벽히는 알아듣지 못했으나 대략 그렇게 듣고 그 말대로 움직여보기로 하고 다시 길을 찾아 나섰다.
우리는 공장 직원이 말한 방향 쪽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출발했다. 우회전을 두 번 했더니 왕복 2차선의 시골 도로가 나왔다. 그렇게 가다 보니 도로 옆 작은 길(우리로 치면 시골의 농로 비슷한 길) 안쪽으로 차 두어 대가 서 있었고 현지인들로 보이는 몇 사람이 무언가를 찾듯 한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느낌이 왔다. 여기다 싶었다. 곧바로 차를 움직여 들어갔다. 공터에 주차를 하고 내려서 이미 와 있던 다른 여행자들이 서 있는 곳으로 갔더니... 드디어 찾았다!! 모래 언덕 사이사이로 작은 호수 같은 물 웅덩이(석호라고 한다.)가 여럿 있고 조금 먼 곳에 있는 호수에 수백수천 마리의 홍학이 보였다. 다른 모든 볼거리들을 다 제쳐두고 홍학을 찾아왔는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이 녀석들을 만난 것이었다. 일행 모두가 내려 우와~ 하는 탄성과 함께 그 홍학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경이로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려 노력했지만, 그러기에는 녀석들이 너무 멀리 있었다. 휴대폰 카메라로는 엄두가 나질 않았고 DSLR을 챙겨 온 전문 찍사님(?)들이 장비를 주섬주섬 챙겨 홍학들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사실 그래도 멀었다. 망원렌즈로 최대한 당겨서 보니 날개 사이에 숨겨둔 붉은색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래로 둘러싸인 석호의 한켠에 홍학들이 무리지어 쉬고 있었다.
그래도 위치가 너무 멀었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고 있는 찰나, 마침 현지인들로 보이는 가족들이 얕은 물을 건너 홍학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뒤이어 선비님이 체통(?)을 다 버리고 바지를 걷어올리고 물을 건넜다. 인기척에 놀란 홍학들이 단체로 하늘로 비상하였다.
물이 얕은 곳을 찾아 더 가까이 가보는 현지인 가족과 그 뒤를 따르는 선비님.
흰모래와 초록의 수초들 사이에서 떠오른 붉은 새들이 파란 하늘에 자신들의 빛을 새기는 모습은 아름다운 비상 그 자체였다. 아름답기도 하고 역동적이기도 한 모습에 카메라 셔터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휴대폰이든, DSLR 카메라든 날아오른 홍학들을 담아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야트막하게 펼쳐진 모래언덕들과 간간이 보이는 초록의 수초, 그리고 그 사이의 그리 크지 않은 호수를 배경으로 붉고 흰 홍학들이 파란 하늘로 올라 군무를 펼쳐 보여 주었다. 쉼 없는 셔터 소리와 탄성이 홍학의 날갯짓 소리와 어울려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홍학의 비행 동선에 맞추어 카메라들이 따라 움직였다.
얕은 호수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홍학의 모습.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비행하는 홍학들과 그 아래에서 여전히 고요히 먹이활동을 하는 홍학의 모습이 대비된다.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인 나미비아에서 이런 풍경을 만나는 것은 무척이나 설레고 신비로운 일이었다. 아무리 열사의 땅이라지만 녀석들이 살아갈 만한 공간은 어디엔가 이렇게 있었고 오히려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곳이어서 녀석들은 더 편하게 이곳을 자신들만의 서식지로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도 찾으면 분명히 어디엔가는 있기 마련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일정 중에 다른 많은 장소를 포기하고 이곳을 선택한 것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이 홍학들이 증명해주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곳을 보지 않았다면 오히려 후회를 했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였다.
이제는 나미브 사막에 있는 오늘의 우리 숙소 Moon Mountain Lodge로 가야 했다. 시간은 이미 오후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가야 할 거리는 약 300km. 서둘러 출발했다. 길은 다시 왼쪽으로는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이, 오른쪽으로는 거센 파도가 치는 바다가 있는 도로로 연결되었고, 이 도로는 오래지 않아 내륙 쪽으로 향하면서 바다는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도로도 아스팔트 포장에서 단단한 흙길 비포장으로 바뀌었다. 차바퀴를 통해 울퉁불퉁한 바닥의 요철이 그대로 진동으로 전해졌다. 사전 공부를 통해 비포장 고속도로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겪는 그 도로는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더욱 놀라운 점은 비포장도로임에도 불구하고 규정속도가 시속 100km였다는 점이다. 앞에 가는 차가 흩날리는 모래먼지가 꽤 오랜 시간 공중에 떠 있어 멀리 떨어져 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뿌옇게 만들었다.
놀랍게도 비포장 도로임에도 불구하고 제한속도는 시속 100km이다.
비포장 도로에 진입했고 질주했다. 울퉁불퉁한 바닥이 차 바퀴를 통해 그대로 전해졌다. (타임랩스 영상)
처음에는 심한 요철 때문에 바퀴에서부터의 진동이 너무 심해 도저히 속도를 제대로 낼 수가 없었다. 겨우 시속 30~40km만 넘어가도 마치 바퀴가 빠져서 날아가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와중에 간혹 우리를 앞질러 가는 차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대형 차량이거나 우리 같은 SUV이긴 한데 바퀴가 오프로드용으로 개조된 차량들이었다.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어느 정도나 달렸을까? 비포장 도로 바닥의 요철도 많이 사라졌고 비교적 부드럽게 잘 다져져 있었다. 잘게 부서진 모래흙이 흩날릴 만큼 우리 차들도 속도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그제서야 이 도로의 규정속도가 시속 100km인 것이 이해가 갔다. 그렇게 질주하다 보니 무슨 자동차 광고에 나오는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도 들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사막을 질주하는 자동차, 그리고 그 뒤로 피어오르는 모래 먼지~! 멋진 장면이라고 생각했던 사막의 질주를 내가 직접 하고 있다는 생각에 무언가 뿌듯하고 벅찬 느낌이 있었다.사막을 가로질러 도시를 연결하는 철도에 때마침 화물열차 하나가 나타나 우리와 함께 달려 주어 그 맛을 더욱 배가시켜주었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나미비아 철도 위를 화물열차 한 대가 우리 일행과 함께 달리고 있다.
빠른 속도로 덜컹이며 달리다 보니 길 옆으로는 이제 거의 아무것도 없이 오직 모래와 약간의 돌과 얕은 돌산, 모래언덕이 보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해변 도로를 달릴 때 그렇게 많던 차량 숫자가 점점 줄어들더니 급기야 거의 우리만 달리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차량 숫자도 많이 줄었다. 꽤 빠른 속도로 달린다고 달려왔지만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속도를 더욱 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괜히 무리하다가 고장이 날 것 같아 정규 속도보다 약간 느린 속도로 운전을 했다. 그래도 불안했는지 2호차에서는 좀 천천히 가자고도 했다. 운전을 시작한 지 두 시간쯤 되자 주변은 완벽한 백사의 땅이 되었다. 잠깐 쉬기로 했다. 갓길(그냥 도로 옆이라고 하는 게 맞다. 차선도 없고 경계석도 없으니 말이다.)에 나란히 차를 세웠다.
도로 옆에 차를 세우고 잠깐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오른쪽부터 순서대로 1, 2, 3호차.
미리 사둔 음료로 목을 축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흰모래와 오랜 풍화작용을 견뎌낸 바위 언덕들뿐이었다. 나무는 듬성듬성 뾰족한 가시만 단단히 달려있는 것들이 띄엄띄엄 있었다. 봉우리 비슷한 것만 보여도 일단 올라가야 하는 직진님은 여지없이 바위 언덕을 향했다. 그 사이 다른 일행들은 사막에서의 점프샷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직진님이 걸어가고 있는 바위산(?)을 배경으로 놓고 수십 차례 뛰기를 반복하며 베스트 샷을 남기기 위해 애를 썼다. 훌륭한 작품부터 일부러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한 작품까지... 우와~하다가 깔깔깔~하다가를 반복하며 잠깐의 휴식을 즐겼다. 직진님도 꽤 먼 거리처럼 보이던 그 바위 언덕을 10여 분 만에 갔다 왔다. 시간은 점점 지체되고 있었지만 늦어지는 시간이야 무슨 소용이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이 여행을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원래 우리의 이번 여행 콘셉트가 "자유를 찾아 떠나는 아프리카 자유여행"이 아니던가. 평생 한 번 체험할까 말까 하는 사막 드라이브와 사막 한가운데에서의 휴식. 다시 못 할 경험이라면 찌~인하게 하는 것이 후회가 남지 않을 테니까~
휴게소는 쉼과 즐김이 공존해야 한다는 확고한 인식 아래, 재미난 점프샷들을 찍었다. (반전님과 유쾌님-왼쪽, 감독님-오른쪽)
바위 언덕을 향하는 직진님(왼쪽), 그 언덕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는 총무님(오른쪽)
달콤한 휴식을 마치고 다시 우리의 사막 숙소를 향해 운전을 시작했다. 얼마를 갔을까? 하얀 모래 평원 멀리로 야트막한 산악 지형 비슷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간의 초목들도 함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마 전날 비행기에서 본 바로 그곳을 지나는 게 아닐까 싶었다. 흰모래와 붉은 모래의 경계선~! 우기에는 강이 흘러 하늘에서 보면 띠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곳이라고 생각되었다.
야트막한 산악지형이 몇몇 초목들과 함께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산악 지형에 접어들자 길은 이전에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쭉 뻗은 직선에서 산의 능선에 맞춰 꼬불꼬불해지는 곡선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속도를 다시 조금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앞뒤 간의 간격을 줄여야 했다. 무전기의 삐릭 소리가 들리면 조금 속도를 늦춰 다시 무전 범위 안에 들어오도록 해야 했다. 시야 확보가 잘 안 되었고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길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속도를 늦추고 여전히 비포장 도로로 되어 있는, 사막 가운데에 있는 이 산악 지형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흙먼지를 휘날리며 1, 2호차가 앞서고 있고 3호차가 바로 뒤에 따라붙어 이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보니 시간은 점점 늦어져 사막 한가운데서 일몰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것 또한 예상에 없던 일이었지만 사막 너머로 해가 떨어지는 풍경을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을까? 나름 나무 몇 그루가 힘겹게 서있는 지역에서 차를 세워 일몰을 맞이하기로 했다.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공기와 하늘이 만나 숨 막히게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도무지 비를 내릴 것 같지 않은 구름까지 하늘을 채워주어 그 풍경을 절대 잊지 못할 가장 빼어난 기억으로 만들어주었다.
해는 어김없이 서쪽 하늘을 향했고 사막 한가운데서 듬성듬성 서있는 나무들을 배경으로 일몰 포인트를 잡았다.
사진은 그 감동을 다 담아낼 수 없음을 또 한 번 느낀다.
작가님은 우두커니 서서 타임랩스로 일몰을 담으며 풍경에 빠져들었다.
해가 늘어진 나뭇가지 끝에 걸릴 때부터 시작해서 완전히 모래언덕을 넘어갈 때까지 우리는 그곳에서 일몰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늦어지는 것 따위야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나미브 사막 한복판에서 이런 풍경을 만난다는 것은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 아닌가.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고...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우리의 두 눈으로 보는 것에 미치지 못했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가 있다고 해도 사막의 일몰을 두 눈으로, 아니 온몸으로 보고 있다는 감동을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공간이 갖고 있는 특별함은 인간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이지 카메라에 기억되는 것이 아니다.
사막에서의 일몰(작가님이 직접 촬영한 타임랩스 영상이다.)
사막에 밤이 찾아왔다. 이런 비포장 도로에 가로등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사막의 밤은 그야말로 새카맣다. 앞서 가는 차의 붉은 후미등과 구글 지도만이 길잡이가 되었다. 솔리테어가 나타났다. 원래 이곳을 휴게소로 이용할 작정이었다. 이곳에서 파는 커피와 파이가 맛있다는 사전 정보도 있었고, 원래 일정대로라면 저녁 무렵에 이곳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출출함을 달래며 잠깐 쉬어가기로 예정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되었다. 솔리테어에서 숙소까지는 대략 30~40분을 달려야 하는 거리였다. 어차피 이곳은 빈트후크로 되돌아가는 길에 또 만나게 될 것이니 일단 패스하기로 했다. 솔리테어 삼거리에서 미련 없이 우회전해서 숙소 방향으로 계속해서 달렸다. 길은 다시 굵은 자갈도 포함된 울퉁불퉁한 길로 바뀌었고 그 덕분에 요철로 인해 차가 또 요동치기 시작했다.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시간이 많이 늦어 우당탕탕하면서 계속 질주했다. 숙소 체크인도 문제였고 배도 고팠기 때문이다. 다시 못 볼 사막의 풍경들을 감상하며 가다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결국 숙소에는 밤 9시가 훌쩍 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비포장 도로에서 좌회전을 하자 숙소로 들어가는 마지막 안내가 내비에서 나왔다. 차 하나 겨우 지나갈 시골길 200여 미터쯤 들어가니 불 켜진 작은 집이 하나 보였다. 우리의 숙소라고 하기에는 작은 집 하나가 있어 여기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무작정 "익스큐즈미~"를 외쳤더니 약간 나이가 있어 보이는 중년의 백인 남자 하나가 문을 열고 나왔다. "우리는 Moon Mountain Lodge를 찾아왔다."라고 얘기했더니, 그 남자는 무심한 듯이 옆으로 난 작은 길로 올라가라고 안내해 주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마도 이 숙소의 직원 혹은 사장이 아닌가 싶었다.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이 정말 무심하게 안내해주고 쿨하게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언덕을 오르는 좁은 시멘트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엑셀을 힘껏 밟아 힘겨워하는 우리 차들의 마지막 힘까지 짜내서 올라갔다. 올라가서 보니 인터넷으로 예약하면서 보았던 여러 동의 건물이 보였고 드디어 우리의 숙소가 맞구나 하는 탄성이 나왔다. 직원들이 고맙게도 그때까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짜 고마웠던 것은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임에도 우리들의 저녁 식사를 준비해 두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늦을 줄은 몰랐다며 저녁을 먹으라고 메뉴를 고르라는데 미안함과 고마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실 숙소에서의 석식은 포기했고 우리의 짐들 속에 섞여있는 비상식량으로 저녁을 때워야 하나보다 하고 있었는데... 이날의 늦은 저녁은 맛도 맛이지만 그 정성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직원들이 정성스럽게 제대로 만들어준 저녁식사를 맛나게 먹고 숙소 안내를 받아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숙소에서는 다른 손님이 없어 독채로 된 건물을 2명씩 사용하게 업그레이드를 해주었고 우리는 각자의 짝과 함께 방들을 골라 들어갔다. 뒤늦게 찾아온 배부름과 피곤함에 오래지 않아 잠에 쉽게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펼쳐질 반전의 풍경을 예상도 못한 채....
Moon Mountain Lodge 식당에서 저녁 메뉴를 고르고 있다. 고맙게도 메뉴 선택까지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렇게 제대로 된 저녁식사를 위해 늦게까지 우리를 기다려준 직원들이 무척 고마웠다.
Moon Mountain Lodge 숙소 방의 내부.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날의 계획과 우리의 실행은 어쩌면 다소 무모하기까지 한 것일 수 있었다. 하루 이동 거리가 무려 700km 내외였고, 그것도 우리가 직접 3대의 자동차를 운전하며 이동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포장된 도로인 B2 국도(거의 고속도로 급이다)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왈비스베이에서 소서스블레이 근처의 숙소까지의 도로는 비포장 도로였고 사막에 산악 지형도 있었다. 혹여라도 사고가 났거나 차가 고장이라도 났다면 사막 한가운데에서 도움의 손길을 얻기가 무척 어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더욱이 앞선 편에서 언급했지만 1호차와 2호차에 약간의 문제도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우리는 자유로운 여행에 너무 취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위험성과 무모함을 어쩌면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 그저 눈 앞에 펼쳐지는 모든 광경들에 감탄하고 우리들끼리의 즐거움에 빠져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외면했다. 다소 걱정하는 일행도 있었지만 나머지는 모두 기꺼이 그 위험을 감수하고 행복하게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사실 이런 이야기조차 여행 당시에는 누구도 하지 않았고 다 끝내고 귀국하고 한참 뒤에서야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렇더라는 식의 이야기가 있었을 뿐이다.
도전해보면 될 일이다. 무언가를 해보다가 좌절의 순간을 만나면 거기서 또 무엇인가 길이 생기고, 만약 길이 없다면 만들며 헤쳐나가면 될 일이다. 우리 일행들의 앞선 여행에서도 그랬다. 일단 여행은 낯섦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그곳이 익숙해질 때까지는 긴장과 두려움, 걱정이 없을 수가 없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곳의 느낌을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여행의 짜릿함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