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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옥 Aug 22. 2020

슬기로운
퍼머컬쳐Permaculture 생활

기후위기를 사는 지혜, 멸종저항

햇살은 그리 따갑지 않았다. 

오랜 장마 중, 아니 일상적인 기후변화 중이지만 잠시 구름이 걷힌 수락산은 향기로운 바람마저 내어준다. 지난 주말 누가 얼마나 아침부터 왔을까 의심품고 수락텃밭으로 내달렸다. 

‘멸종저항 찍어줄게’와 ‘헤나 타투’ 주인장이 수락텃밭 4개 원두막중 센터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는다. ‘멸종저항’은 지난해 영국에서 시작해 유럽을 달구었던 단체이름으로 기후위기에 꼼짝없이 당할 멸종종인 인간의 저항을 담았다. 지하철을 막고, 국회대로를 점거하고, 공항과 철도를 마비시키기 위해 매일 수천 명이 거리에 모였고 또다시 수천 명이 경찰에 연행되어도 멸종저항은 멈추지 않았다.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언하라’는 선명한 요구를 받아 들여 영국의회가 세계최초로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고 이 운동은 유럽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멸종저항 퍼포먼스에는 늘 빨간페인트가 흥건하게 흐르고 붉은 정령들이 3초에 한 종씩 사라져가는 멸종종들의 넋을 위로하듯 춤을 춘다. 붉은 색은 불타는 지구, 피 흘리는 지구를 상징한다. 영국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공룡뼈 아래 죽은 듯 쓰러지는 다잉(죽는) 퍼포머스는 묘한 울림을 준다. 

올해 영국은 2025년 탄소제로에 도전중이고 스웨덴은 마지막 석탄발전소 문을 닫았다. OECD국가들은 지난 10년간 22% 탄소배출을 줄였지만 우리나라 탄소배출은 25% 늘었다. 

기후위기를 막기위해 남은 시간은 7년반 남짓. 그동안 화석연료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안된다. 멸종에 저항해야 한다. 


한국은 온실가스배출증가율 1위 자리를 지키는 것도 부족한지 인도네시아, 칠레 등 망해가는 석탄발전소 해외투자를 멈추지 않는다. 환경운동연합 자료에 의하면 석탄발전소 투자는 27조의 경제적 손해로 이어진다. 

동그라미 안에 모래시계 형상을 담은 멸종저항 마크와 Action now를 가방과 티셔츠, 손수건에 찍어 주던 주인장의 이마에 땀이 흐른다. ‘잡초라도 충분한 풀학교’ 학생들이 차린 ‘별다방 말고 풀다방’에서 손수 만든 수제 풀차를 건넨다. 밭에서 채취한 박하, 수레국화, 민트, 메리골드를 짬뽕한 ‘코디얼’은 명치끝까지 시원하다.
 전국에서 모여든 퍼머컬쳐Permaculture 신봉자(?)들은 요리준비를 하고 원두막을 기웃거리다 행드럼과 장구자락에 맞춘 잼(두드리다)을 즐기고 일부는 ‘엄마 손은 약손 명상 힐링’에 몸과 정신을 맡긴다. 

영구(permanent)와 농업(agriculture, 혹은 문화 culture)의 합성어인 퍼머컬쳐는 영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농사와 토지 이용에 대한 윤리가 뒷받침되지 않는 문명은 지속 가능하지 않음을 전제한다. 볏짚과 풀로 멀칭을 하고, 약초와 허브 등을 심어 병과 해충을 막은 덕분인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고추가 장마에도 싱싱함을 달고 빨갛게 익어간다. 콩덩굴이 타고 오른 옥수수는 자색 수염을 잔뜩 달고 알맹이를 살찌운다. 호박과 참외잎이  땅을 덮어 멀칭을 하면 꽃은 열매를 키워낸다. 지속가능한 삶, 또는 좋은 삶으로 표현되는 퍼머컬쳐는 땅을 보살피라(care earth), 사람을 보살피라(care people), 공정하게 분배하라(fair share), 영혼을 보살피라(spirit care)는 네가지 윤리원칙으로 자연과 인간의 전일적이면서 통합적인 삶을 지향한다. 퍼머컬쳐는 농사짓는 기술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와 철학이다. 

물과 땅, 바람, 동물, 물고기, 해와 바람을 상징하는 ‘생명평화결사’와 멸종저항, 북극곰 디자인이 타투집에서 단연 인기다. 나도 팔목에 멸종저항 디자인을 새겼더니 지하철 손잡이를 잡은 손에 멸종저항이 도드라진다. 

화려한 들꽃 대신 센터피스를 차지한 장작불덕에 눅눅하고 축축해진 마음들이 되살아났는지 퍼머컬쳐 농부들은 700여평이나 되는 밭으로 달려가 가지며, 호박이며, 콩이며, 토마토와 참외 등을 땄다. “채소 구워줄게”를 준비한 소란은 길고 긴 비로 풀에 빠진 밭을 돌보며 채소들을 거둬들인다. 유기농 커피집 주인장은 어느새 솎아낸 당근으로 부침개를 만들었고 멸종저항 당근은 데코의 마침표가 됐다.

멕시코 살사요리사가 기름 냄새 풍기며 허기를 자극하고 장작불에 채소가 익어갈 즈음, 건너편 호밀을 널어둔 원두막 타로점집을 찾은 두사람의 실루엣이 사뭇 진지하다. 아직 미완의 한옥집에는 텐트가 펼쳐지고 수락텃밭 주변 원두막에는 모기장을 장착한 해먹이 걸린다. 수락숲밭에서 가장 번듯한 건물, 교육장에서는 ‘맛뵈기, 원불교 선요가’가 한창이다.


도깨비보따리 나눔장에는 쪽 염색한 양말셋트가 즐비하고, 스포츠웨어, 믹서기, 고데기, 책, 그림달력, 도마 등 탐욕을 자극하는 물건들로 예상밖의 풍성한 장이섰다. 천원부터 시작한 경매로 20여만원의 수익을 얻은 도깨비보따리 주인장은 수익금 전액을 나무심기에 내놓았다.

나눔이 순환되고, 따뜻한 온기가 피어난다. 시베리아온도 38도, 일본은 불바다, 한국은 물바다 생애처음 맛보는 기후재앙에 그래도 이곳은 기댈 희망이 된다. 지천에 널린 박하 잎 띄워 차를 마시고 달빛에 의지해 손톱, 발톱에 봉숭아물 들이며 흰 눈 내리면 첫사랑을 만날 수 있을지 설레임이 밤하늘을 가득 채운다.


지난 100년간 인간이 저질러놓은 ‘인과의 지구’를 사는 지혜, 슬기로운 퍼머컬쳐생활에 모두를 초대하고 싶다.


퍼머컬쳐사람들은 자연과 함께 살기 위해 화석연료를 덜 쓰고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으며 자족하고 자립하는 삶을 지향한다. 

이글은 한울안신문(http://www.hanulan.or.kr) 8.18일자(1182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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