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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옥 Feb 17. 2022

김치전을 구웠다

들레의 그림에세이

다른 날 같으면 운동나간 아들에게 막걸리 한병 사오라 카톡을 날릴 법했지만 내일 밤, 한잔할 생각으로 카톡문자는 이미 고여버린 침과 함께 삼킨다. 

다이어트 중인 아들과의 저녁을 위해 닭가슴살을 삶고 브루콜리, 적양파, 고구마와 보름 부럼으로 까먹던 땅콩 서너알을 넣고 샐러드를 만들었다. 김치전은 2장만 구웠다. 

영하 10도까지 내려가니, 관리실에서는 연방 아래층 하수구가 얼어 막히니 빨래 자제를 요청하는 방송을 해댄다. 2,800여 가구가 사는 공동주택임을 문득문득 일깨우는 방송이다. “빨래방 가야겠네” 운동 마치고 막 들어선 아들의 혼잣말은 공동주택의 충실한 일원임을 증명한다.  

온라인 쇼핑이 손쉬울 텐데 굳이 찾으러 가야하는 흑석시장 춘포떡방앗간에 흰기피떡 반말을 맞췄다. 완두배기찰떡을 맞추려고 물어보니, 제사떡에는 노란콩고물떡이나 흰기피떡을 올려야 한다는 주인언니의 핀잔에 얼른 떡 종류를 바꿨다. 제사상에 올릴 떡은 아니어서 먹고 싶은 떡을 주문해도 됐었는데 여자는 마치 시어머니에게 혼이라도 난 듯 서둘러 제사떡이라는 하얀기피떡으로 주문한다. 

사무실이 흑석동일 때 단골이 된 춘포떡방앗간은 용산으로 이사를 한 뒤에도 매년 한번씩 떡을 공수해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10년째 단골이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주구장창 그 집을 이용하는 여자는 게으른 천성탓으로 돌린다. 다른 곳 알아보기가 ‘귀찮아서’ '번거로움'을 택한다. 벌이가 시원찮아도 한번 들은 보험을 한번도 깨지 못한 것도 여자는 게으름을 이유로 댔다. 덕분에 작은 연금이라도 들어둘 수 있었다. 

원불교 교당에서 지내는 제사는 음식을 준비하지 않으니 단촐하고 정갈하다. 떡과 과일을 준비해 온정성으로 기도 해준 교무님들과 제사에 참여한 형제자매들과 나누는 것이 여자가 서울로 올라온 뒤 10년째 해 온 제사준비다.  

아직 둥그런 보름달이 휘엉청 밝은 겨울 끄트머리 누나와 동생들, 그리고 제수씨와 매제, 조카들이 하나둘 낮선 교당의 법당으로 모여든다. 그렇게 여자는 스물다섯해 제사를 준비한다. 

여자의 새해맞이는 제사뒤끝에 자리한다.

쩌렁한 겨울추위를 어제의 보름달이 환히 비춘다. 

아직 주방엔 김치전의 고소함이 가득하다. 

막걸리는 제사 음복으로 미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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