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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옥 Mar 26. 2020

여자가 여자에게

코로나19 시국에 호주에서 해산간하기 3.

“손으로 짚지 말아라, 손목 나간다. 젖 물리며 아기 내려다보지 말아라 목 아프다. 양말 신어라 뼈마디 시린다, 아기 안아주지 마라 손타면 힘들다"

sister에게 끝없이 잔소리를 해댄다. 해산간 한다고 산후조리에 좋은 음식이나 신생아 목욕시키기, 산모케어 등 그 어떤 자료도 찾아보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알찬 잔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1호와 5살 터울로 2호를 낳고 친정엄마, 할머니로부터 충분한 케어를 받으며, 몸이 익혔던 산후조리법들이 기억으로 소환되고 있었다. 

미역국은 할머니 담당이었고 신생아 목욕과 산모 수발은 엄마 몫이었다. 아버지는 산모에게 좋다는 것들을 사다 나르셨다. 불린 미역 빠락빠락 씻어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물을 부어 끓인 뒤 마늘과 집간장으로 간을 맞춘 할머니표 미역국은 '삼시 다섯끼'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미역국을 훌훌 마시는 내게 할머니는 “잘한다. 그렇게 땀을 내야 몸에서 독이 빠져나가서 개운해진다”며 양푼에 흘러넘치도록 미역국을 담아주셨다. 그 덕분인지 4.2kg 우량아 1호 배가 빵빵해지도록 건강한 모유를 먹일 수 있었다.  

친정엄마는 젖만 먹으면 아이를 내려놓게 했다. 예쁘다고 자꾸 안아주면 손 타서 애엄마가 힘들다며 첫 손자를 잘 안아주지 않으셨다. 손타지 않는 덕분인지 1호는 순동 순둥 했고 첫 육아는 그렇게 수월스럽게 지나갔다. 

팔십 중반의 sister 엄마, 시어머니는 지난해 암수술로 고생하셨다. 호주는커녕 한국에서 출산을 해도 해산 간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부모와 가장 짧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늦둥이들의 비애다.


호주의 3월은 늦여름에서 가을로 연결되는 좋은 계절이다. 산후조리하기에도 맞춤하다. 서양 여성들은 아기 낳고 찬물로 샤워를 한다는데 기준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모르겠다. 복중에 낳은 2호 산후조리 때는 보일러에 솜이불까지 덮어줘서 틈만 나면 차내기 일쑤였고 선풍기는 구경도 못했었다. 땀띠가 나기 시작하자 친정엄마는 겨우 솜이불 걷어내고, 긴팔과 긴바지, 양말로 타협했다. 

전라도 토속 입맛인 sisiter는 외국살이의 외로움을 한식 먹는 즐거움으로 푸는가 싶을 정도로 한식 마니아다.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한다. 산후조리기간 동안 미역국만으로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할머니 미역국을 흉내 낸 참치, 닭고기, 소고기 미역국을 번갈아 끓이고, 김치는 씻어서 내놓았다. 엄마는 이 상한다고 딱딱한 것을 일절 못 먹게 했지만 잔멸치를 살짝 얹어 김, 계란찜 등을 밑반찬으로 내놓았다. 하루 이틀 미역국 밥상이 물릴즈음 요리를 잘하는 sisiter 남편표 햄버거, 인도커리와 짜이가 해결사 역할을 했다.    

호텔 매니저인 sister남편은 강제휴가 중이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호텔업계는 비상이다. 아이 출산일에 맞춰 5일 휴가를 냈는데, 손님이 없어 그동안 쌓아놓은 휴가를 이참에 다 사용하라고 했다. 덕분에 한 달 휴가를 얻은 sisiter남편 하쉬는 청소와 목욕물 대령, 기저귀 갈기, 특식을 담당했다. 아기 보러 놀러 온 sister 친구들도 코로나 여파로 직장에서 3일만 나오라고 하기도 하고, 비정규직들은 이미 다 잘린 상태여서 하루하루 불안하다는 이야기들을 나눈다. 며칠 만에 고기, 빵, 야채 등 매대가 비어버렸다고 근심 어린 말들이 오간다. 


며칠 만에 동주안젤리 몸무게는 3.99kg으로 빠져있었다. 미드와이프는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란다. 살이 더 빠지면 안 되니 모유수유 열심히 하라고 산모를 격려한다. 

천사가 따로 없다.

하룻만에 집에 왔을 때 핏덩이라는 느낌보다 두세 주 정도 바깥세상을 겪은 아이 같았다. 목에 힘도 제법 있어 배고프다고 젖을 찾을 때는 제맘대로 목을 이리저리 가누기도 한다. 기저귀 갈라치면 다리를 뻗는 힘도 느껴진다. 

'먹고, 자고, 싸고, 울고'가 신생아들의 하루 일과인데 황금똥도 하루 2번 정도 적당히, 오줌도 적절히 배출한다. 기저귀를 가는데 배꼽이 툭 털어진다. 5일여 만인가 보다. 목욕할 때나 기저귀 갈 때 마지막 탯줄과 연결된 배꼽이 덜렁거리고 목욕 후 소독하는 것이 꽤나 신경 쓰였었는데, 미드와이프는 소독하라는 이야기가 없다. 목욕시키고 면봉으로 세밀히 닦아주면 그만이다. 호주에서의 육아는 면역력을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때가 되면, 저절로 인 것 같다. 

얼마 전 집에서 물건을 정리하다가 1호 것인지, 2호 것인지 모를 깡마른 배꼽이 튀어나와 “30여 년 견뎌낸 배꼽도 고맙고 이걸 간직해온 나도 대견했었다. 

"동주안젤리 배꼽 잘 간직했다가 크면 보여줘. 신비로울 거야"라고 sisiter에게 이르고 보니 탯줄 끝 배꼽이  세대를 잇는 연대의 상징인 듯싶다. 

할머니부터 동주안젤리까지 여자들의 연대는 해산간을 통해 이렇게 이뤄지고 있었다. 


집 앞 coles에 다녀온 sister는 매대가 텅텅 비었다며 야채 몇 가지를 사 왔다. 고기도 빵도 싹쓸이란다. 도대체 사람들이 왜 사재기를 하는지 알 수 없다면서도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다음날 좀 더 일찍 장을 보러 간다고 했지만 밤잠을 설쳐야 하니 온 식구가 매일 늦잠이라 사실 불가한 일이다. 휴지 사는 일은 더욱 요원하다.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니  24일 이후 티켓 가격이 올라있었다. 30일 이후 직항 티켓이 눈에 띄어 잠시 고민하다가 한국에서의 일정도 있고 해서 22일 출발해 덴파사르 발리 경유하는 콴타스+대한항공 티켓을 끊었다. 해산간 기간은 5일 남짓밖에 안 남았다. siste 몸은 회복되려면 최소 한 달 정도 있어야 하는데 시절이 하 수상하니 큰소리친 것에 비하면 초라한 해산 간이 되고 말았다. 

호주, 인도 배냇저고리는 원피스다. 입고 벗기기가 어려웠다. 

동주안젤리는 하루하루 짱짱해지고, 자주 배고파하고, 깊은 잠을 안 잔다. ㅋ

산모 잠 좀 더 자라고 하룻밤 데리고 자면 나도 거의 반수면 상태다. 두어 번 토닥이고 안아 재우다가 배고파 우는 아이는 할 수 없이 sisiter 품에 넘겨야 했다. 

호주로 날아올 때만 해도 돌아갈 때쯤이면 한국도 세계도 코로나가 잠잠해질 거라는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한국은 체계 잡힌 방역으로 외려 가장 안전한 곳이 됐고 유럽과 미국, 이제 오세아니아 대륙도 하루하루 위험도가 높아져간다. 

"무사히 갈 수 있을까? 못 가면 어쩌지?" 

"에라 모르겠다. 올 때처럼 극적으로 들어가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잊기에는 동주안젤리 돌보는 것이 최고다. 아이는 잠자면서 웃기도 찡그리기도, 힘쓰기도 배냇짓에 한창이다. 동주안제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이렇게 개판되도록 만든 어른으로서 참 미안하다. 

아이를 안고 재우면서 참회문도 외우고 일원상서원문, 청정주 염불에 마음을 모으며 다독일밖에...

'코로나 이후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 모두의 화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돌아가서 할 일이 많다. 


* 덧글

23일 아침, 한국에 도착했다. 

극구 나오지 나오지 말라해도 동주안젤리 안고 문 앞까지 나와 "언니 와줘서 고마워"라는 sisiter 말에 그예 둘 다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공항까지 오는 내내 훌쩍거려야 했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을 때 나도 경황이 없었지만 고3이었던 sisiter의 정신적 충격이 컸었나 보다. 누구보다 믿고 의지했던 큰오빠이다 보니, 내 감정 추스리기도 바빴던 나는 그런 sisiter의 마음을 알 길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 9살이었던 sisiter가 30대 후반의 산모가 되자 나는  '오랜 약속'을 어떻게든 지키고 싶었다. 

코로나 19는 '오랜 약속'을 위한 나의 출국과 귀국을 극적으로 만들어 버렸지만 해산간을 응원해준 사람들 덕에 꿈결처럼 다녀올 수 있었다. 

경유지인 덴파사르 발리에서 만난 호주 유학생들 이야기를 들으니 경유 국가 비자가 문제 될 경우를 대비해 모든 짐을 택배로 부치고 온 친구도 있고, 멜버른-시드니-덴파사르 발리-한국으로 복잡한 경유지 때문에 짐 문제로 덴파사르 발리 공항직원이 난감해하기도 했다. 도착한 23일 이후 경유지 국가들이 문을 닫아 비행기 티켓 구하기가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생후7일차 동주안젤리의 자궁포즈

갈아탄 대한항공에는 한 좌 석도 여유가 없을 정도로 꽉 차 있었다. 전날 비행기가 결항되면서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 티켓 끊어두고 룰루랄라 지냈던 것이 외려 미안해졌다. 


3회에 걸친 해산간 기록을 보니 오히려 나의 해산 일기 같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미역국도 생각나고 내 나이 즈음이었던 친정엄마의 알찬 잔소리도 새삼 그립다. 

할머니, 친정엄마에서 sister와 동주안젤리로 이어진 여성들 간의 연대, 이어갈 수 있어서 참 좋았다. 


sisiter와 동주안젤리의 건강과 평화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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