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옥 May 01. 2020

너 이름이 모니?

수수꽃다리와 친구들

연분홍꽃 잔뜩 달고 있던 사과나무에 하얀꽃이 작렬이다. 

길가를 수놓던 오밀조밀 꼬리가 긴 조팝꽃이 지고나니 키 큰 나무들이 하얀꽃으로 키재기를 한다. 

4월 30일 부처님 오신날을 시작으로 5월 5일 어린이날로 이어지는  황금연휴와 사회적거리두기 사이에서 '정은경 질본 본부장님의 신신당부'에 동네 산책으로 길을 잡았다.  반려견들과 동행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 동네공원도 거리두기가 쉽지 않았지만 세계적인 선진시민인 우리모두의 얼굴엔 웬만하면 마스크가 덮혀있다.  

연분홍이거나 하얗거나, 노랗거나 연보라거나 연초록의 색들이 산책길을 가득 채운다.  

꽃이름을 알지못하는 '꽃알못'이지만 산책길에 만나는 꽃과 나무이름이 너무 궁금해 매번 멈춰서서 "너 이름이 모니?" 묻곤한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들으려 낀 이어폰은 일찌감치 벗어버리고 몇걸음 못가 다음창 꽃검색에 사진을 올려확인하고는 기쁨에 겨운 희열에 들고만다. 그러나 기억은 찰라의 순간이 되고 돌아 오는길엔 노란꽃 앞을 다시 서성이며 묻는다. "너 이름이 모니?" 

3~4월 내내 황홀지경에  이르게한 노란색은 죽단화다.  겹황매화로 불린 탓에 황매화와 헷갈렸는데 부지런히 산책을 다니며 눈 맞춘덕에 드디어 입에 붙었다. 조팝은 꽃이 떨어져도 잎만으로도 존재를 알아볼 수 있게되었다. 꽃알못의 폭풍성장이다. 머리보다 몸이 아는 것이 오래가는 법이다. 

이래뵈도 젊은 시절 7년정도 농사꾼으로 살았는데, 고추와 콩잎을 구분하는데 수년이 걸렸었다. 그때는 내가 서울출신임을 핑계로 무식함의 탈출을 시도하곤 했지만 속으로는 시골출신 친구들을 한없이 시기(?)했었다. 

어렸을때 온몸으로 느낀 촉을 이길 수는 없지만 산책길에 만난 아이들과 부지런히 눈맞춤 하노라면 내년 이맘때쯤엔  죽단화에게 이름을 묻지는 않겠지...

몽글몽글 노란색의 죽단화의 꽃말은 숭고함. 기다림

어디서 나는 향기일까?

허리정도 오는 키에 세모꼴에 가까운 보랏빛 꽃에 다가가자 향내가 짙어진다.  

흠~하, 코를 갖다대니 보랏빛 향기가 온몸에 퍼진다. 

"너 이름이 모니?"라고 물어보지만 더 짙은 향내만 품어낼 뿐 당최 이름을 알 수가 없다. 나무이름표를 찾아두리번 거려보지만 허사여서 꽃검색엔진를 켜고 사진을 찍어보니, 라일락꽃일 가능성이 90%란다. 

"아, 라일락 향기였구나" 무릎을 쳐보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다. 라일락꽃을 닮은 듯 하지만 라일락꽃에 비해 키가작고, 꽃들이 조밀하지 않고 허성성하게 피어있는것이 야생화에 가까워보였다. 

그래도 문명이 알려주는 대로 라일락이라 굳게 믿고 며칠동안 산책길 향기를 맘껏 들이마셨다. 

엊그제 아침엔 오랜만에 1시간 코스의 황룡산으로 산책길을 잡았다. 황룡산 초입에 조성된 작은 공원에는 돌나물이며, 산딸나무, 회양목들이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연보랏빛 라일락 또한 향내를 뽐내며 봄 햇살을 잔뜩 받은채 이름표를 달고 있다.  눈은 이름표로 향했고 몸은 알아차림으로 응수했다.  이름팻말을 읽는순간 왜 기쁨이 차올랐는지 모르겠다. 

수수꽃다리 

이 아이 이름이 '수수꽃다리'여야만 했던것 처럼 꽃과 이름이 찰떡같이 느껴졌다. 라일락에서 수수꽃다리로 갈아입으니 이제사 딱 맞는 옷을 입은듯 하다.  "그래 너는 수수꽃다리 였구나, 반가워"

집에와 찾아보니 황해도 등 북한에서 자라는 수수꽃다리와 서양에서 들어온 라일락은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며칠전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오늘 산책길에 만난 수수꽃다리는 색이 살짝 날아간 채 지고 있었고 대신 꽃분홍의 진수를 보여주듯 박태기나무꽃이 자태를 뽐낸다. 분홍 티셔츠,  분홍 바바리, 분홍 신발을 입고 신을 정도로 꽃핑크 매니아 였지만 지난 4.15 총선때 나와 정치적 지향이 정반대인 당이 핑크색을 입는 바람에 봄맞이 핑크삘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터에 마추친 찐분홍 박태기나무앞을 차마 지나치지 못했다. 

못생김의 대명사 모과나무 꽃이 이렇게 청초한 줄 미처 몰랐다.

밥을 튀겨놓은 것같아서 박태기꽃이라는 이름처럼 찐분홍, 자분홍색의 밥풀떼기만한 꽃잎 10여개가 오밀조밀 가지에 매달려있다.  꽃봉오리가 구슬을 닮았다 하여 북한에서는 구슬꽃나무라고 불린다는 박태기는 꽃자루가 없어 진분홍꽃이 가지를 감싸 안듯 치장을 하지만 꽃에는 독이있단다. 아름다움엔 독이 서리는 법인가보다. 사랑스러운 박태기나무꽃의 자태덕에 산책길의 유혹은 더해진다. 

눈에 닿는 곳마다 모과나무꽃이, 사과나무꽃이, 산딸나무꽃이, 감나무잎이, 산수유잎이 피어댄다. 허리께에는 하얗고 붉은 철쭉과 자산홍들로 물들고, 발밑에는 노랗고 하얀 선씀바귀와 민들레들이 아우성이다.

이보다 더 좋은 봄일수 있을까?

코를 벌렁이고, 연초록에 가슴을 열어 코로나의 시름을 잊어본다. 

아직 봄이다.








작가의 이전글 여자가 여자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