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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옥 Jun 23. 2020

와, 마늘이다

초여름에 거둔 겨울작물

지난해 11월 초 의정부 수락 마음숲밭에 마을과 양파를 심었다. 

겨울작목반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20여명은 수락산 자락에 작은 텃밭을 허락받았다. 밤과 은행나무 사이라 탁암작용으로 작물이 잘 자랄지 걱정이었지만 그저 파머컬쳐 농사를 배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더 이상 따질일이 아니었다. 농촌살때 종종 구멍 뚫린 비닐에 마늘을 박아넣는 마늘심기는 해보았지만 비닐과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자연에 기댄 농사인지라 배움의 열정이 가득찼다. 

먼저 유기농 양계로 유명한 산안마을 닭똥 퇴비를 뿌려 박토에 영양분을 넣어줬다.  

영구(permanent)와 농업(agriculture, 혹은 문화 culture)의 합성어인 퍼머컬쳐는 영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농사와 토지 이용에 대한 윤리가 뒷받침되지 않는 문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전제한다. 

무경운과 볏짚멀칭으로 라인업을 완성하는 퍼머컬쳐 농사에서 삽질은 매우 중요하고 힘든 노동이다. 포크레인이나 트랙터로 땅을 한번 갈아주면 농부들은 지혜를 끌어모아 땅을 디자인한다. 가급적 곡선으로 가장자리를 많이 만들고 햇빛을 많이 받는 모양으로 땅에 밀가루로 그림을 그리고 삽질로 고랑과 이랑을 판다. 

20여명의 농부들은 두어시간 폭풍삽질로 마늘과 양파밭을 만들었다. 

퍼머컬쳐 농부들은 자연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익힌다. 기꺼이 즐겁게~

퍼머컬쳐 선생님, 소란 농장에서 씨받은 강화마늘과 영동마늘, 양파를  겨울작목반 공동체텃밭에 심었다. 

소란은 씨를 받고 대는 멀칭재로 쓸 요량으로 호밀과 보리를 곳곳에 뿌렸다. 축산농가에서 사온 공룡알볏짚을 트자 숙성된 효소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질어질 술한잔 한것같은 기분으로 볏짚을 날라 밭두둑과 고랑에 덮었다. 퍼머컬처농사의 시작과 끝은 멀칭이다. 멀칭은 햇빛을 막고 수분을 머금어 땅밑에 미생물과 지렁이 서식처를 만든다.  멀칭아래에서는 박토였던 땅이 작물 키우기 좋은  흙으로 변신한다.  1년차 삽질과 멀칭을 잘 해놓으면 2, 3년차 좋은흙이 만들어지고 수확량은 관행농을 넘어서는 역전이 일어난다. 

밭만들고 심는 날을 포함 총5번을 만나 공동농사를 지었다. 오줌으로 액비를 만들고, 음식물찌꺼기 퇴비간을 만들어 덮어두었다. 풀을 메고, 간간이 밭에서 명상과 춤을 추었다. 

6월 21일 드디어 마늘과 양파를 수확하는날, 아침7시부터 멀칭을 거둬내고 마늘을 캤다. 예상대로 수확은 적었지만 침엽수 그늘 아래라는 어려움을 뚫고 살찌운 마늘과 양파들이 그저 고마웠다. 살아내느라, 키워내느라 애쓴 양파 한알, 마늘 한톨이 대견하고 소중했다. 

퍼머컬쳐 농부들은 마늘쫑을 먹는대신 주아를 키웠다. 잘 말려 주아꽃이 피면 한조각, 한조각 갈라 심어 통마늘을 얻는다. 그 통마늘을 심으면 다음해 육쪽마늘이 된다고 한다. 마늘과 마늘쫑, 마늘주아까지 챙기니 마늘 부자가 된듯하다. 

요즘 양파는 봄에 심어 6월에 캐내어 쉽게 무르지만, 겨울을 이겨낸 수락 양파는 작지만 단단하고 맛도 차올랐을것이다. 양파맛에 기대가 만땅이다. 

작물은 키우고 캐는 일도 크지만 수확후 갈무리에 잔손이 많이 간다. 마늘 주아를 자르고 대를 잘라 1접씩 묶어 원두막 지붕에 널어 말린다. 멀칭재로 사용하기 위해 뿌린 호밀과 보리도 키를 맞춰 잘라 또다른 원두막 지붕에 매달아 두었다. 

생전 처음 만져본 호밀대는 반짝반짝, 단단했다. 

"딸애는 공부시키지 않던 어린시절, 우는 동생 업고 마당에 나와 달빛에 비친 밀대 빛에 기대어 책을 봤다"는 1세대 여성농민운동가 임봉재 선생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달빛과 밀대덕에 글을 깨우치고 셈을 할 수 있었지만 시력을 빨리 잃은 임봉재선생님은 어린시절부터 안경을 써야했단다. 가슴아픈 여성사가 투영된 호밀대와 보릿대, 마늘대는 봄작물인 고추밭 멀칭재로 옮겨져 순환적 생애주기를 이어갈 것이다.  

파머컬쳐 선생님 소란은 고향 강화에 7년된 멋진 파머컬쳐 밭을 갖고 있는 부농이다.

공동작업을 마친 17명의 농부들은 작은 수확물을 더없이 공평하게 나눴다. 밭가에 떨어진 마늘한쪽, 보리와 호밀 이삭들을 주워 내년 씨앗으로 남겼다. 

이로써 6개월여의 겨울작목반이 끝났다. 

내년 이곳 수락텃밭에는 또다시 마늘, 양파, 보리와 호밀들이 넘실댈 것이다. 

자연에 기대어 지구와 함께 살아 내기 위한 농사를 짓는 파머컬쳐 농부들은 겨울작물 수확을 마친뒤 자신들이 일구는 밭으로 가 바랭이와 단풍돼지감자풀들을 뽑아내고, 고라니가 뜯어먹은 모종들을 다시 갈무리한다.  나도 배추, 당근, 고추, 방울토마토, 가지들이 자라는 밭가 풀들을 정리하고 질소고정식물인 콩 스무알을 더 심었다. 

자연은 순환하고, 우리의 삶도 영속적으로 순환되면 좋겠다. 

돈이 되는 인간중심의 농사가 아닌 자족하고 자급하는 농사가 보편화되면 더욱 좋겠다. 

그나 저나 수확은 기쁨이다. 얏호! 마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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